榮丸事件(료우에이마루 사건)
이것은 1927년(쇼와 2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발견된 미이라함
1927년 10월 31일, 캐나다 서해안 벤쿠버섬. 워싱턴의 시애틀로 귀항한 아메리카의 화물선[마가렛 다라]호는
행방불명되었던 일본의 소형어선 료우에이마루를 발견했다.
너덜너덜해진 함체, 미이라가 굴러다니는 갑판, 어마어마한 시체의 냄새, 백골의 시체, 다리없는 시체.
함실에는 두개골이 부서진 백골의 시체와 미이라가 있었다. 함실안의 방에는 엄청난 혈흔이 묻어있었다.
배끝의 주방실에는 바닷새의 하얀 깃털이 보이는 곳마다 퍼져있어, 오븐위에 있던 석유캔 속에는 사람의 팔뚝이
들어 있었다. 함내에는 먹을것도 음료수도 없이 엔진 기관부는 완전히 파손되어 있었다.
그런데, 함장실에서 찾은 3권의 노트에는 믿을수없는 참사가 쓰여져 있었다.
그 노트에 의하면, 료우에이마루의 정보는 이와 같다.
*중량은 19톤으로 1마스트
*함주는 와카야마현의 후지이 미요로
*함장은 미키 토키조
*기관장은 호소이 덴지로
*승무원은 12명
*카나가와현의 미사키항을 출항한 것은 1926년 12월 5일
*약 1년간 표류했었다
여기서 의문이 떠오른다. 일기 안에 쓰여진 시체는 아홉, 기록에는 12명이라 쓰여 있다.
나머지 3명은 어떻게 된것일까?
●불행한 어선
1926년 12월 5일, 카나가와현의 마사키항을 출항한 료우에이마루는 치바현 모모코완에 참치수렵을 위해 전진 하고 있었다.
날씨도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고, 엔진이 상태가 안좋은 배기음을 내고 있었기에, 다음날 12월 6일에 모모코항에 귀항했다.
그러나, 엔진에 고장은 없었고, 모모코의 완 근처에서 대량의 참치를 잡아올렸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 항행 불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12월 15일, 모모코의 동쪽완 근처 1000마일 정도 흘러갔을때, 기슈함(배의 종류)과 닮은 배가 나타났기에
신호를 보내거나 선원이 소리쳤지만 응답도 없이 지나가버렸다고 한다.
미키 함장은 표류를 결의, 기록은 "4개월간 먹을 수 있는"이라고 적혀 있었다. 12월 16일에도 [동양기함]이라 써있는 배가
근처를 지나갔으나 응답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서든 일본에 돌아가려 노력했지만, 어찌해도 반대쪽으로 흘러갔다.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어떤 노력을 해도 배는 서북쪽으로 향할 수 없어 절망. 단지 기함(증기선)을 기다릴뿐. 반대로 미국에 표착하는 것을 결정.
돛에 바람을 73으로 받아 북동쪽을 향한다. 하지만, 어선으로 미국에 도달하는 것은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보다
고난이라는 것을 숙지해야 할 터"
●공포의 기록
12월 27일, 가다랭이 10마리 잡음
1월 27일, 외국함선을 발견. 응답없음. 비가 내리면 빗물을 모아 이것을 음료수로 사용
2월 17일, 슬슬 식량이 바닥나감
3월 6일, 물고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음. 식량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의 배고픔과 사신이 천천히 다가온다
3월 7일, 최초의 희생자가 나왔다. 기관장 호소이 덴지로는,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
일본 땅을 밟고싶어"라고 중얼대며 죽어갔다. 모두가 힘을 합쳐 수장(水葬)했다.
3월 9일, 커다란 상어가 한마리 잡혔지만, 나오에 죠지는 먹을 기력조차 없어 말라죽음. 수장처리함
3월 15일, 지금까지 항해일지를 쓰고있던 이자와 히로시가 병사. 대신 마츠모토 겐노스케가 붓을 듬.
이자와의 유체를 수장하는데 안간힘을 씀. 모두 얼굴은 창백하고 바늘두더지처럼 수염이 자라,
휘청휘청 망령처럼 걸어다니는 모습은 슬픔.
3월 27일, 테라다 하츠조와 요코다 료우노스케 두명은 갑자기 말도 안되는 소리로
"어-이, 후지산이다. 미국에 붙어있어. 아아, 무지개가 보인다..." 하며 광기를 보이며,
좌현의 갑판을 바득바득 갉으면서 고통스럽게 죽는다. 슬슬 지옥의 밑바닥도 가깝다.
3월 29일, 눈다랭이 한마리를 요시다 토키치가 낚는 것을 보고 미츠야 엔키치는 갑자기 거슬러 올라가, 도끼를
들어올리는가 싶더니, 요시다의 머리를 박살낸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도 모두 일어설 기력도 없이
잠시동안 멍해짐. 남은 인원들은 야채부족으로 괴혈병 등의 증상을 보여 이빨이란 이빨에서 출혈증상을
보여 모두 요괴로 변화해가는 엄청난 광경. 아아, 부처님이여.
4월 4일, 미키 함장은 갑판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큰 새를 마치 뱀과 같은 스피드로 손으로 잡는다. 전원, 식인
개미와도 같이 몰려들어 날개를 뜯어내고 살아있는 채로 새를 뜯어먹는다. 피가 흘러넘치는 생고기를
먹는데, 이 정도로 맛있는건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것도 모두 아귀(굶어죽은 귀신) 축생(가축같은 생
, 일본어 욕인 칙쇼로도 쓰임)이라 하는 업(業)인가.
4월 6일, 츠지 토라지, 핏덩이를 뱉어내며 사망.
4월 14일, 사와야마 칸쥬로, 함실에서 갑작스럽게 광폭화하여 사체를 조각내는 모습은 지옥인가?
인육을 먹는 기력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나마 다행.
4월 19일, 토야마 카즈오, 사와야마 칸쥬로의 2명, 요리실에서 인육을 두고 싸움. 지옥의 귀신이 되는 것도
단지 단지 살아서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는 일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 밤 둘 다 피투성이인 채 뒹굴거리며 사망.
5월 6일, 미키 함장, 드디어 한발짝도 못움직이게 됨. 승무원 12명중 남은것은 함장과 일기기록 담당인 나뿐.
둘 다 각기병으로 소변, 대변이라도 못 움직이고 그대로 쌀 수밖에 없음.
5월 11일, 흐림. 북서풍이 조금 강함. 남쪽에서 서쪽으로 배는 단지 바람따라 흘러간다. 산도 보이지 않고,
육지도 보이지 않고 배의 그림자조차 없음. 단 설탕가루 한번 핥아보고 죽고싶다.
친구의 시체는 살이 끈적하게 썩고 녹아내려 혈육(血肉)에서 나는 죽음의 냄새뿐이다.
백골 치우는 것을 이 세상의 마지막으로 해야지...
일기는 여기서 끝나있다. 그러나 미키 함장은 소나무 판에 연필로 아래와 같이 가족에게 유서를 남겼다.
"아빠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만약, 어른이 되어도 [절대로 어부가 되서는 안된다...]. 나는 행복하기에
또한 죄송합니다... 두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절대로 어부만은 시키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계속 써도 똑같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소면과 찹살떡이지만, 돌아가지 못하게 되서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기묘한 사실
하지만 기록을 조사하는 동안 기묘한 사실이 떠올랐다. 수십회를 걸쳐 다른 함선과 조우하면서도 구조에 응답
하는 함선은 한척도 없었다는 것이다. 료우에이마루는 태평양 횡단 도중 단 하나의 섬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화물선 [웨스트 아이슨]호의 리쳐드 빌리 함장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26년 12월 23일. 시애틀에서 약 1000킬로 떨어진 태평양해 위에서 파도에 떠도는 목조함을 발견했으나,
구조 신호를 보내도 대답이 없기에 다가갔다. 그러나, 료우에이마루선의 창문이나 갑판에 서서 이쪽을 보고있는
10명 정도의 선원은 누구 하나 대답이 없다. 바보같다 생각하여 그냥 냅뒀다."
그러나, 료우에이마루의 기록에 이런것은 전혀 써있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기분나쁜 후일담
사실은 료우에이마루 사건은 전후에도 일어난 바 있다.
쇼와 35년 1월 12일. 코치현 토사사미즈시의 [제2의 료우에이마루]는 누마즈를 출항하여, 다음해 1월 21일밤에
조난되었다. 이 때의 승무원은 12명으로 그 중 3명이 행방불명되어 남은 9명은 자력으로 오가사와라 서도의
무인도 아네지마에 헤엄쳐서 도달했다. 9명은 90시간 뒤, 순시함 무로토에 의해 구조되었다.
같은 이름의 배, 같은 수의 승무원, 그리고 같은 수의 행방불명자. 과연 이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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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있었던 사건인건가요....??? 아니면 버뮤다삼각지대처럼 그냥 지어낸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