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내 인생의 첫 담배
게시물ID : gomin_8155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간장씨
추천 : 1
조회수 : 44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23 00:17:21
고 3이라는 나락의 시간을 헤쳐나와 입학한 대학, 그 동안 TV에서 방영된 대학 관련 드라마나 시트콤(예를 들면 "우리들의 천국", "내일은 사랑", "논스톱" 등등)에서 나왔던 즐겁고도 뜻깊은 대학 생활을 많은 이들이 꿈꾸는 것처럼 저 역시도 커다란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1학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TV와 실제는 다르더군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술, 술, 또 다시 술...그저 매일매일이 술의 연속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고등학교 만큼이나 엄격해서 차마 쳐다보기도 힘들었던 선배와의 관계, 과 학회장의 약간은 무식하리만치 행해졌던 독재(?), 학교가 멀어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던 일정들은 급기야 한 달 만에 제 안에 있던 모든 대학에의 열정을 식혀 놓고야 말았습니다. 그저 울적하고 공허했던 발걸음들만이 캠퍼스 안의 저의 동선(動線)을 가득 채워갔습니다.

그렇게 눅눅히 젖은 우울에 빠져 있던 4월의 중순 경, 저는 고 3 말엽부터 남몰래 속으로만 좋아해 오던 이에게 조심스레 제 마음을 고백했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언지하의 거절...저는 그 이유라도 들어보고 깨끗하게 돌아오고 싶어 물었습니다. 물론 지저분하게 따라다니지 않겠다. 쿨한 친구로 남겠다는 약속을 걸고 말이지요. 그 때 그 사람에게 들었던 대답이 14년이 지난 제 가슴에 아직도 커다란 흉터로 남아있습니다.

"미안한데, 내게 넌 너무 못생겼어."

사실 저는 슬램덩크의 강백호 만큼은 아니지만 꽤 화려한 거절 경력을 자랑합니다. 그 사람에게 당한 거절의 횟수까지 합쳐서 총 7번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7번의 사유는 모두 "못생겼다"였습니다. 그 대답들 중에서 유독 저이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직 저도 모릅니다만...여하튼 제 가슴에 그 사람은 그날 아주 큰 고통을 남겼습니다.

돌아서서 비틀비틀 걷던 것이 몇시간 째,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스탠드에 앉아 있더군요. 이 공허감과 슬픔을 달랠 무언가를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먹는 술에 진저리가 났던 저의 생각 끝자락에 "담배"라는 것이 와 닿았습니다. 인생에서 전혀 배우고 싶지 않았고 그때까지 한번도 입에 대 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배울 생각이 없었던 담배를 떠올리고 곧바로 그 앞 구멍가게에서 디스 한 갑과 초록색 라이터 한 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약 3시간에 걸쳐 그 한갑을 모두 피워 버렸습니다. 처음 담배를 피우는 주제에 폐부 깊숙히 연기를 들이마시는 법까지도 왜 알고있던 걸까요.

그 날 이후로 담배는 제게 더 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디스에서 오마샤리프, 켄트, 말보로 레드, 타임, 더 원, 던힐 1mg, 그리고 던힐 프로스트에서 지금의 팔리아멘트 하이브리드까지로 종류의 변화는 있었습니다만 항상 장방형의 비닐 또는 종이 케이스 안에 빼곡히 들어찬 20개피의 담배는 묵묵히 타들어가며 고민을 들어주는, 즐거움을 함께하며 꼬릿불을 밝혀주는, 저의 눈물을 애도하며 연기를 피워주는 조용한 상담자가 되었습니다. 

흡연은 폐암 및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 나날이 담뱃갑에 적힌 문구는 변화해 갑니다. 나날이 담배에 찌들은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쇠약해집니다. 나날이 금연 구역이 하나 둘 늘어가고 흡연자가 설 땅 또한 줄어듭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담배를 끊어버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지금, 담배마저 끊어버리기엔 저의 가슴은 아직도 공허합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