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실로 오래간만에 다시 글 올립니다..-_-;;
기억하시는 분 계실려나?
사실 그동안 야간근무를 뛰다보니 근무 후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 탈덕 시리즈를 올렸는데요.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업무에 쫓겨 글쓰기를 중단했었습니다만......오늘 당직인 관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마 이 글의 제목을 보고 클릭하신 분들은 99% 프랑스 외인부대를 생각하고 들어오셨겠죠.
하지만 의외로 프랑스뿐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외인부대를 운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좀 있습니다.
문제는 자료 찾기가 쉽지 않다는거지요..-_-;;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일단 비교적 많이 알려진 3가지의 외인/용병 부대를 다루겠습니다.
기준은 제 마음대로 정했습니다. "자국의 국적을 가진 국민이 아닌자가 자국의 군대에 복무하는 부대"
<1. 프랑스 외인부대 "Légion Étrangère">
<2. 영국의 "Gurkhas">
<3. 바티칸 시국의 "Pontificia Cohors Helvetica">
가장 첫번째로 나오는 부대는 역시 외인부대의 대명사 프랑스군 소속의 외인부대입니다.
케피 블랑이라는 하얀색 모자로 유명한 이들은 군대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조차도 그 존재를 알고 있죠
<사진속의 하얀 모자가 케피블랑입니다.>
전 세계 여러나라에서 알게 모르게 외인부대를 운용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외인부대들 중에서 가장 외인부대답다고 평가해도 좋은것이
이 레종 에트랑제입니다.
바로 외국인의 비율 때문이죠. 두번째로 다룰 스페인 외인부대의 경우 시작만 외인부대고 나중에 외국인의 입대를 금지시켰습니다.
반면 프랑스 외인부대의 경우 장교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특정 국적을 가진 사람만 받아들이는 옆나라하고는 달리 모든
외국인 지원병은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국민는 입대가 거부되었던 초기와 달리 요즘은 입대의 문이 열려 점점 스페인의 전례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는 최초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들을 관리하기 위해 창설 되었습니다.
때는 1831년 식민지 알제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시민왕이 창설한 용병부대가 그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보불전쟁,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쟁을 거쳐 걸프전, 아프칸전 등을 비롯 구 식민지였던 르완다 같은 혼란스러운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평화유지군 투입, 가장 최근의 북부 말리에서의 작전 등 아직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부대입니다.
사실 프랑스 외인부대는 특수부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그렇게 인식되어 있는 이유는 200여년을 존속하며 3만회가 넘는 전투를 치른 이런 실전경험을 높게 쳐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이런 정예부대의 이미지가 형성되지는 않죠. 왜 외인부대하면 프랑스일까? 프랑스의 외인부대는 왜 정예라는 생각이 먼저들까?
단순히 외인부대의 로망일까? 과거를 묻지 않아 범죄자 같은 거친 사내들이 입대해서?(여기에 대한 오해는 나중에...)
그런건 아니죠. 역사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가장 영광스런 전투로 간주되어 기념일까지 지정되어 있는 카메론 전투죠.
‘여기에 60여명도 채 안돼는 사나이들이 적의 군대 전부에게 대항하여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의 힘은 적들을 압도하였다. 용기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버렸던, 이들은 프랑스 병사들이었다’
<프랑스 외인부대원>
1830년대 멕시코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군의 사령관은 푸에블라 시를 공격하려는 멕시코 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도시에 보관하고 있는 물자들을
빼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쟝 당쥬 대위와 64명의 외인부대원들에게 그 수송의 호위를 맡기죠. 원래 다른 부대가 맡기로 되어 있는 임무였으나
황달병의 창궐로 당쥬 대위가 이 임무를 맡게 되었죠.
그런데 수송 도중 800여명의 멕시코 기병대와 마주칩니다.
64 VS 800...도망가도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 속에서 그것도 전투의 와중에 보급품을 실은 마차도 모두 도망가 버린 상황에서 외인부대원들은 전투를 결정하고 인근 농장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멕시콘 2000여명이 곧 증원되고 프랑스 외인부대원 들은 40배가 넘는 병력의 열세 속에서 전투를 시작합니다.
사막의 기후속에서 자신의 소변과 피로 갈증을 달래는 혹독한 전장상황에서 당쥬 대위는 멕시코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고 전투개시 7시간만에 남은 외인부대원은 12명..가지고 있는 탄약도 모두 떨어진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하는 외인부대원들의 자세에 멕시코군 지휘관은 항복을 권했지만..
외인부대원들은 착검돌격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결국 죽음을 각오한 용기에 탄복한 멕시코군 지휘관은 사격중지를 명하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3명의 외인부대원들을 처형하지 않고 보내줍니다.
이 전투에서 멕시코군은 50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합니다.
다음날 프랑스 본군이 카메론에 도착했고 이 전투에 대해 보고받은 나폴레옹 3세는 깊은 탄복과 함께 외인부대의 군기에 카메론 1863을 새기는것을 명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농가에는 기념비가 세워졌고 그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가 바로 초반에 나왔던 저 글입니다.
어쩃든 카메룬 전투이후 외인부대는 매년 4월 30인을 카메룬 데이로 정하고 기념식을 거행합니다.
<카메룬데이>
이 전투에서 전사한 지휘관 당쥬 대위는 과거의 전투에서 한손을 잃어 의수를 착용하고 있었는데요.
이 의수는 프랑스 외인부대의 정신적 대표이자 투혼의 상징로 카메룬 데이에서 부대원들의 사열을 받습니다.
<의수>
하지만 이런 혁혁한 전과와 자랑스런 전통에도 불구하고 외인부대는 많은 의미없는 전투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국민으로 이루어진 정규군이 아닌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부대라는 한계이기도 한데요.
자국의 식민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어 명분없는 전투를 치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식민지 국민들의 독립열망을 저지하는 돈에 팔린 제국주의 용병군이라는 오명도 같이 갖고 있지요.
아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에서 프랑스 외인부대원들은 범죄자가 많아 자국에서 도망쳐온 거친 사내들이 자주 입대하는걸로 묘사되어 있는데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이라크전, 아프칸전 등에 참전한 실전경험있고 훈련받은 군인들의 수요가 많아 요즘 프랑스 외인부대는 옛날처럼 과거를 묻지 않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더군요.
다음으로는 영국의 왕립 구르카 연대입니다만..그 전에 사진 하나만 투척하고 가겠습니다.
<스페인 외인부대원>
프랑스 외인부대를 다루면서 잠깐 등장했던 스페인 외인부대'Tercio de Extranjeros'입니다.
최초 1920년 창설 당시는 외인부대였으나 1987년 외국인의 입대를 금지시키면서 이름만 외인부대가 되었습니다.
나토 소속으로 각종 평화유지임무에 동원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시초가 외인부대라 잠깐 언급해봤습니다.
이제 구르카인가요? 인지도로 따지면 프랑스 외인부대보다 더 많이 알려졌을 쿠르카..
사실 구르카는 다 아시겠지만 네팔의 용병을 뜻합니다.
그 타고난 용맹성으로 영국은 물론 파키스탄, 인도...심지어 싱가폴까지 각국에서 용병생활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 영국의 쿠르카가 가장 경쟁률이 높고 그만큼 엘리트들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실제로 영국의 모병에서 떨어진 쿠르카들이 인도쪽으로 빠진다는 이야기를 들은것 같군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예를 표하는 구르카들>
구르카들의 칼인 쿠크리는 워낙에 유명하니 일단 패스하겠습니다.
영국군이 구르카들을 만난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1814~1816년 네팔과의 전쟁에서였습니다.
최신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이 쿠크리를 든 구르카들에게 당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용맹성에 반한 영국은
동인도 회사의 용병으로 이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죠. 일종의 독점 용병 계약을 맺은겁니다.
이후 영국이 참전한 모든 전투에서 최고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2차대전 당시 임팔 전투에서 디마푸르 중사가 24명의 일본군 목을 땃다는 이야기, 지평리 전투에서 1개 대대가 1개 사단을 격퇴한 이야기, 구르카가 온다!는 영국군의 심리전에 속아 아르헨티나 포트스탠리 수비군 전체가 항복했다는 이야기 등 이들의 무용담은 끝이 없습니다.
아~ 비록 영국군은 아니지만 최근에도 그런게 하나 있었지요. 혼자서 40명의 열차강도를 박살낸 구르카의 이야기..
끝이 아닙니다.
2014년 9월 아프칸에서 왕립 구르카 소총연대 소속의 폰 상병이 경계 근무중 탈레반 30여명을 쓸어버린 사건도 있습니다.
무려 400여발의 소총탄과 17발의 수류탄을 던지며 탈레반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인 폰 상병은 마지막에는 쿠크리를 뽑아들고 근접전을 벌였다고 하니
그 명성이 과장된것이 결코 아니라는것을 증명하였습니다. 후에 세어본 탈레반의 시체는 30여구에 달한다고 하는군요.
어쨋든 그 공로로 폰 상병은 빅토리아 훈장을 수여받습니다.
<폰 상병>
그래서 그런걸까요. 영국의 구르카 용병에 대한 대우는 네팔 현지의 물가를 고려했을떄 매우 좋습니다. 제대후 연금은 물론 월급 자체도 네팔 평균 임금의 약 50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제대 구르카들의 영국정착에 대한 법을 통과시킴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합니다.
그 경쟁률이 수백대일이고 현지에서는 입대학원까지 성황리에 운영중이라고 하는군요.
제대해도 세계 각국의 보안업체에 취직이 잘 되는 편이라고 합니다. 영국군에서 복무한 탓에 영어에 능통하고 실전으로 단련되었으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숙련된 인원인데다가 인건비 역시 비교적 싼 편이라 구르카들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24Kg짜리 군장을 메고 800m의 히말라야 산악을 2분 45초만에 통과해야 하는등 그 선발기준은 장난이 아닙니다.
구르카들의 이야기는 이만하고...
다음은 바티칸 시국의 스위스 근위대입니다.
어찌보면 용병이나 외인부대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대죠.
하지만 그 시초는 용병이 맞습니다. 당시 스위스 용병은 꽤 유명했기 때문이죠.
마치 중세의 네팔이랄까요? ㅎㅎ 땅이 척박했던 스위스는 중세 말기부터 용병으로 유명했습니다.
스위스는 각 주별로 군역을 부과한 특성탓에 잘 훈련되어 있었고 그 특유의 밀집대형과 용맹성, 훈련도, 포로를 잡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 탓에 많은 나라들이 스위스인을 용병으로 고용했고 그 과정 중에 용병 = 스위스인 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래봐야 뭐 란츠크...밀려...)
어쩃든 교황청에 스위스 용병대가 들어오게 된 것은 1503년의 일입니다. 당시 교황인 율리오 2세는 200여명의 스위스 용병을 파견해 줄것을 스위스 연방에 요청했고 이에 응해 무려 700Km의 거리를 행군해 150여명의 스위스 용병이 교황청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1527년 5월 스위스 용병대의 충성심과 위용을 만천하에 알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르고뉴의 왕 샤를 5세가 로마를 침탈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항해 189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항전하였으며 교황을 호위한 인원을 뺀 나머지 147명은 800여명 이상의 적군과 함께 죽음으로 그 위치를 지켰습니다.
아 참고로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왕궁을 지키던 스위스 위병 역시 죽음으로 그 위치를 지켰다고합니다.
때문에 이후 500여년간 스위스 신병들은 매년 5월 6일에 충성서약식을 거행하죠.
1527년 이후 스위스 용병대...아니 이제 근위대라고 불러야겠죠..ㅋ
하여튼 근위대는 당시와 같은 전투를 두 번 다시 치르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위기마다 교황의 명령으로 무장을 해제했기 때문이죠.
나폴레옹이 쳐들어 왔을 때도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근위대의 용맹과 충성심은 이미 증명되었죠.
현대 바티칸 시국의 근위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1. 전과가 없는 스위스 국적자일것
2. 카톨릭 신자일것
3. 독일어 사용 가능자로 미혼일것
4. 나이 19~30세일것과 키 174cm이상일것
5. 스위스 군에서 기초군사교육을 받은 군인일것
이 조건을 충족하면 지원이 가능합니다. 사실 이 정도는 스위스인이라면 대게 쉽게 충족이 가능합니다.
스위스인이니 당연히 1번은 패스(범죄자만 아니면..) 카톨릭 신자도 문제 될것은 없죠. 독일어 역시 스위스에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방이 있습니다.
나이나 키가 약간 걸리나요? ㅋ 기초군사교육 역시 스위스는 징병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조건 때문에 간혹 유색인종이 근위대원으로 합격되어 근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렸을적에 스위스에 입양되어 스위스 국적을 가지는거죠.
<최초의 유색 근위대원으로 인도계 스위스인 "다니 바흐만">
스위스는 외국군에 자국민이 입대하는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근위대는 예외죠.
또한 스위스 참모총장이 신병선서식에 참가한다고 하니 스위스와 바티칸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겠죠.
어찌되었던 이들은 교황의 개인경호원의 역할도 겸하므로 고도의 훈련을 받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편제되어 있는 이들은 편제상 장군계급은 없으며 근위대장인 대령의 휘하에서 복무하는데요.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년에서 최대 25년정도라고 합니다.
재밌는것은 이들의 연봉은 한국을 기준으로 해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티칸 근위대의 일원이었다는 자긍심과 명예,
세계에서 가장 보안이 강한 장소에서의 근무경험 때문에 각국의 보안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스카웃해 간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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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자세한 보충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틀린 부분은 댓글로 말해주세요!>
<이후 또 생각나면 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