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극장가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 이 영화 만큼이나 관람 중 탄식을 유발하는 영화가 또 있었을까요?
영화관 입구에 '다량의 이산화탄소 흡입에 대한 경고' 라도 붙여놓지 않으면 자칫 타인이 내뱉은 탄식 속에 질식할 지도 모르는 영화, [숨바꼭질]을 어제 관람하고 왔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 아쉬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줄거리와 캐스팅, 그리고 개봉 시기만으로 판단하자면 이 영화는 매우 똑똑하고 기발합니다.
우선 영화의 소재부터 보자면 '낯선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 산다' 는 일종의 "실제 사건"이자 "도시 괴담"입니다.
신원미상자들에 의한 무차별적인 범죄에 대한 사회의 공포는 나날이 극에 달하고 있죠. 이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달과, 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는 막대한 정보의 파도 역시 한 몫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입에서 입으로 괴담을 날랐던 시절에 비교하자면, 장문의 글과 인증샷 등으로 무장한 괴담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는 요즘 시대의 "도시 괴담"은, 정말이지 어디서부터 실제 사건이며 어디서부터 과장인지 구분할 수가없습니다. 단순히 괴담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리얼하고, 실제 사건이라고 보기엔 흉악함의 정도가 상식을 뛰어넘어가죠. 이런 경계의 애매모호함에서 오는 아슬아슬한 두려움이야 말로 도시 괴담의 묘미이자 파괴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영화 [숨바꼭질] 은 이런 도시 괴담을 그대로 스크린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내 이웃에게, 혹은 나에게, 무방비한 일상 속에서 찾아올 수 있는 공포를 맨 살갗에 후 불어넣으며, 관객들의 공감도와 몰입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내 집에 침입한 낯선 이와의 싸움, 심리전을 그린 [패닉룸], [호스티지], [노크] 등 와 같은 기존작들의 흥행으로 보아 서스펜스로서의 재미도 보장된 것 처럼 보였고요. 보증된 연기파 배우이자 최근들어 드라마의 흥행으로 인해 최고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손현주씨, 피튀기고 살튀기는 영화의 화룡정점 문정희씨라는 캐스팅 역시 이 영화가 평준 이상의 재미를 보장할 것이라는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즉 '호러' 와 '서스팬스' 라는 두 마리 토끼로 관객의 엉덩이를 쫓으며, 극한의 긴장감과 공포, 관람 후의 후유증까지 선사할 수 있었던 포텐셜 높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저 아쉬운 영화에 그처버렸습니다.
참... 어디서부터 따지고 들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삐끗'과 '삐끗'이 쌓이고 쌓여 '폭삭' 주저 앉아 버린 영화라고 할까요.
첫째, 다른 분들의 리뷰에서도 거론하고 있듯이 '회수되지 않은 떡밥'이 이 영화엔 너무도 많습니다. 아니, 의미 있는 척 내놓고는 아무렇지 않게 방치해버린 장면이 지나치게 많았습니다.
극 초반에 나온 거지는 그냥 지나가는 거지에 지나지 않았는가, 손현주의 차에 올라탄 거지 역시 그냥 지나가는 동네 멍청이 혹은 미숙한 아동 납치범에 지나지 않는가, 문정희 딸내미의 안대 속엔 뭐가 감춰져 있는가,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와 손현주의 결벽증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실종된 형의 수첩에 쓰여진 '나는 유령이 아니며 다시 나타날 것이다'는 문구는 그저 끄적임이었을 뿐인가, 클라이막스 즈음에서 엠뷸런스에 실려가던 아파트 주민과 남편이 실종됬다며 울고 보채던 밑 집 여자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화면에 잡은 것인가, 등등. 대충 생각나는대로 추려도 이 정도군요.
물론 모든 장면 하나 하나가 정확한 인과관계를 갖고 영화 안에서 완결될 수는 없습니다. 소위 말하는 '떡밥 회수'에 집착하는 요즈음 작품들의 풍토 역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고요. 관객의 상상력이 작품이 끝난 후에도 쫓아갈 수 있도록 일부러 몇 개의 떡밥은 미지의 바다로 던져 놓는 연출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건 너무 많지 않습니까. 하물며 이 영화는 서스펜스 영화입니다. 길게 생각하고 곱씹으며 머릿속에 주인공들의 인생을 나름대로 그려보도록 유도하는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닌 겁니다. 이 영화에서 풀어놓아도 좋았을 법한 떡밥은 오로지 하나, 비교적 캐릭터의 노출이 적은 문정희의 딸내미 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결말에서도 그녀는 살아 남아 어머니를 대신해 싸이코 주택 강탈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딸내미의 안대 속에 뭐가 있는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한들, 차세대 살인마의 신비감이 한 층 높아지는 것 이외에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아마 감독은 당장 눈 앞의 긴장감과 공포심을 조성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뭔가 있어 보이는, 뭔가 위험해 보이는 장치와 인물들을 갖다가 덕지덕지 도배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까 그 홈리스도 신경쓰이는데, 형과의 과거도 신경쓰이고, 우씨 이번엔 또 다른 위험 인물이 다가오니 관객의 뇌는 아주 쫄낏하게 조여져오겠군! 이런 생각이라도 했던 걸까요...? 관객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 모든 인물들과 장치를 말끔히 잊고 그저 문정희 딸내미 생각만 하며 영화관을 나설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랬다면 참으로 유감입니다. 제 뒷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감상을 방송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앤딩 크레딧과 함께 이르시기를 : "그래서 형이란 사람은 영화에 왜 나왔데?"
둘째, 억지의 만재와 공감의 부재.
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지요. 내가 보기엔 탁 치면 억 소리가 나야 하는데, 남이 보기엔 탁 치면 윽 소리가 나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영화 리뷰에 따르는 개연성이 부족하단 비평은, 그 어떤 영화도 피해갈 수 없는 평이자 리뷰어의 가치관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 영화엔 검은 상하의에 검은 핼멧을 착용한 사람이 총 세 명 나옵니다. 그 중 하나는 진범이고, 또 하나는 주인공을 의심하던 실종자의 애인이며, 나머지 하나는 놀이터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어린아이들을 구경하던 한갓진 청년입니다. 이 셋은 대단한 우연의 일치로 완벽하게 같은 복장을 하고, 마네킹처럼 우투커니 서 있는 기분 나쁜 포즈 역시 완벽히 구현하고 있습니다. 또 뭐가 세 번 나오냐 하면, '아 x발 꿈'식의 전개 역시 세 번 나옵니다. 극 초반에 냉장고를 뒤지던 홈리스, 물을 뚝뚝 흘리며 천장에서 떨어지던 귀신 스타일의 형, 안방에서 마누라를 껴안고 있던 범죄자 스타일의 형. 뭔가 나오나 싶어 한껏 쫄아 있자니 꿈이며 환각이었다는 연출은, 한두번으로 족하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형에 대한 환각과 회상은 몇 차례나 등장하는데, 결국은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도 없이 그저 형은 범인이 아니라 일찌감치 살해당한 피해자였음이 밝혀지며 존재감이 말끔히 사라져 버립니다.
반항할 엄두도 못내는 처자는 고기 반죽이 되도록 철저히 때려 죽이면서 주인공과 아내에게만은 가벼운 뇌진탕만을 선사하고 사라져 버리는 범인의 행동이나, 그리도 잘 잃어버리고 뺏기고 고장내는 핸드폰이 손 안에 들어와도 절대로 112를 누를 생각을 않는 주인공 가족의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이미 많은 분들이 찰지게 까주셨던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개연성의 부족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였던 '공감'을 파괴하는 데 이르게 됩니다.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영화의 한 씬 한 씬이 답답함과 짜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자신의 선에서 상식적이라 생각되는 판단과는 정반대로 밀고 나가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 처음엔 몰입도가 급추락했고, 그 다음엔 공감이 사라졌으며, 종래엔 공감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필요성도 잊어 버렸습니다. 보는 내가 아무리 똥쭐 타면 뭐하겠습니까. 어차피 주인공은 절대 경찰을 부르지 않을 것이며, 살인마 역시 주인공을 절대 죽이지는 않고 살짜쿵 기절시킬 뿐이며, 아이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다가오면 필시 엄마나 아빠가 스턴 상태에서 깨어나 그들을 구해줄 게 뻔한데요. 도저히 공감도 가지 않고 그렇다고 상식을 뛰어넘었다 칭하기엔 진부하고 뻔한 그들만의 스토리에, 어느세 저는 완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로 손목시계나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셋째, 과도한 캐릭터 설정.
뛰어난 배우들의 열연 탓에 더욱 돋보였던 결점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불특정 다수라 칭할 수 있는 홈리스라는 존재 자체에 의한, 별다른 원한도 없는 단순하고도 흉악한 범죄 행위를 다루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이란 인물이 나오며 이건 복수극일지도 모른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형은 무슨 콤플랙스도 많고, 과거에 주인공과 크게 틀어진 사건도 있습니다. 또 주인공은 이로 인해 딱히 스토리 진행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 결벽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했더라면, 형과 주인공이라는 두 캐릭터의 이야기로 그럭저럭 끌어나갈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리 늦지도 않은 시점에서 진범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이 진범은 영화 초반에 암시했던 대로, 딱히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 욕망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단순한 그렇기에 더욱 무서운 범죄자입니다. 그래, 이 역시 여기까지였다면 좋았겠지요. 형에 대한 이야기가 신경 쓰이지만 뭐 호러 분위기도 충분히 냈겠다 단 물 빠진 티백처럼 휙 던져 버려도 크게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정희라는 진범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강한 색깔을 띄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치밀하게 은밀하게 사람을 죽이고 집을 뺏어왔던 문정희가 별안간 정신이상자 적인 집착과 욕망을 보이며 시간을 질질 끕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처자를 단호히 때려 죽이던 범인의 카리스마는 헬멧을 벗음과 함께, 익명의 살인자에서 문정희라는 하나의 캐릭터가 된 시점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인물들에게 과도한 개성과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서 감독은 쉬이 그들을 죽일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죽었나 싶더니 기절했을 뿐이었다.'는 장면이 아군 적군을 통틀어 대여섯번은 나오며 클라이막스를 질질 끕니다. 주인공이 한 방, 아내가 한 방, 범인이 한방, 사이좋게 뇌진탕을 먹여가며 아옹다옹 다투는 이십여분 동안 극장 안에는 훈훈한 웃음꽃마저 피어 버렸습니다.
애초에 진점인 문정희씨를 조금만 더 평면적인 인물로 설정했다면, 배가 고프니 밥을 먹는다는 탠션으로 이 집이 탐나니 사람을 죽인다는 단순무식하고 깔끔한 살인마로 남겨두었다면, 그나마 서스펜스로서의 긴장감과 속도감은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했던 딸내미 아들내미에 대해서는... 물론 굉장히 불만이 많지만,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싫어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접어두겠습니다.
"엄마, 5880!"
하하하.
마무리를 짓자면, [숨바꼭질]은 굉장히 높은 가능성을 가진 소재와 보증된 배우들이라는 고급 천을 덕지덕지 기워 만들어 낸 누더기 옷 같은 영화였습니다. 형태로 보자면 엉망이고 팔구멍은 어디며 주머니는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옷감이 워낙 좋은 탓에 그럭저럭 분위기는 나는 그런.
추천)그리 높은 기대 없이 관람한다면 "혹시 우리 집 현관 옆에도...?" 라는 섬뜻한 후유증만은 안고 돌아오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네이트 판이나 오유 공개에서 "우리 옆집에 홈리스 쳐들어온 ssul" 등의 도시 괴담을 읽은 게 낙이신 분들이라면 더욱이 그런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비추)[추격자]를 보며 답답함을 느끼다 못 해 잠자다가도 벽을 쾅쾅 칠 만큼 분노를 느끼셨던 분이라면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관람을 피하시기를 권합니다.
또한 쌔끈하게 잘 빠진 스타일리쉬한 서스펜스를 기대하시는 분에게도 그리 적합하지 않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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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장으로 영화에 대한 소감을 정리하는 건 처음이네요.
서툴고 쓸대없이 길기만 한 문장이지만, 오유 영화게에서 리뷰 글들 보며 느낀 재미와 공감을 저도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을까 싶어 한 번 올려 봅니다.
잠시 휴가차 한국 와 있는데 바람도 불고 날씨가 너무 좋네요!
영화게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