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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의 비극-탈리도마이드 사건과 피해자들의 삶-<BGM>
게시물ID : panic_606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ementist
추천 : 22
조회수 : 9075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3/11/20 11:31:17
BGM : Safe and Sound - Taylor Swift (feat. The Civil Wars) (cover) Megan Nicole and Tiffany Alv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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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동물보호연합
http://www.kaap.or.kr/s2.html?mode=read&idx=20834&page=1&page_list=1&db_name=s2&search=&kwd=&PHPSESSID=db4b73aa782e74129809ae1fb17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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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마르기트 훈데마이어였다.
독일 남부 바덴뷔텐부르크 주 알멘딩엔에 있는 그의 집은 슈투트가르트에서 고속도로를 한시간 반 정도 달려간 곳에 있었다.
 
흑림으로 널리 알려진 숲이 우거진 산악지역으로 도로가 이어졌는데 석회암 지대인 듯 큰 시멘트공장이 여러 개 보였다.
독일 산업보건활동가 게르트에게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단체를 만나고 싶다고 문의하여 소개받은 곳이었다.
 
찾아가는 곳은 단체 사무실이고, 훈데마이어라는 사람은 단체의 활동가 내지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소로만 찾아간 곳은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였다.
 
뒤쪽으로 숲길이 나 있었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는데 길 건너 바로 앞집에서 누가 부른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고 다가갔는데 부른 이가 바로 탈리도마이드 환자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두 팔이 없고 손가락이 어깨에 붙어있었다. 다리는 멀쩡하고 얼굴과 몸도 멀쩡했다.
반갑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이어 그녀의 어깨에 붙은 손가락과 악수를 했다.
당황하여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손가락이 세 개였던 것 같다.
 
집안으로 안내받아 들어갔는데 거실 식탁에 빵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독일의 탈라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독일어로는 콘테르간 전국연합) 대표다.
 
다음은 2012년 10월초 마르기트 훈데마이어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통역은 슈투트가르트의 한국인 유학생 목진만씨가 했다.

-개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1960년 생입니다(우리 나이로 54세다). 어머니가 저를 임신하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복용한 한 알의 약이 문제가 되었죠. 단 한 알이었습니다.'
 
 
-엣? 한 알이라구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네, 한 알이에요. 다른 피해자들도 약을 여러 개 먹은 게 아니라 한 알을 먹고 그렇게 된 경우가 많아요.
 

-탈리도마이드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되나요?
 
독일에서만 5000여명의 피해자가 있고 독일 이외의 세계 곳곳에서 10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어요.
피해자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고 2010년 현재 독일에서 생존해 있는 피해자만 2451명입니다.
독일 외에 다른 나라에는 210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 2661명이라는 수는 모두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이 직접 제조하여 1957년부터 1961년사이에 판매한
‘콘테르간’이란 이름의 진정제 알약을 사서 먹고 피해를 입은 경우이고,
그뤼넨탈의 제약기술을 갖다가 별도로 만들어 판 스웨덴 제약회사 아스트라의 약으로 인한 피해가 100명,
영국제약회사 티스틸러스의 디아게오 피해자 40명이 따로 있습니다.
그밖에 일본에서 서너명의 피해자가 있고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에도 소수의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생존 피해자 수는 모두 2801명이다.
참고로, 탈리도마이드 환자로 유명한 성악가인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빅맨 빅보이스’(2005, 도서출판 일리)에는
탈리도마이드 환자가 모두 1만 2000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콘테르간’이 약 이름이에요? 탈리도마이드가 아니구요?
 
네, 약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탈리도마이드라는 성분이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문제의 그뤼넨탈 제약회사는 페니실린이라는 유명한 항생제를 처음 만든 회사에요. 독일내 10대 부자 회사죠."
 

-그뤼넨탈 회사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1958년에 첫 피해자가 나왔는데 콘테르간 약 복용을 의심하여 그뤼넨탈에 문의했더니 관련이 없다며 펄쩍 뛰었답니다.
이후 계속 피해자가 나왔고 1960년에는 비슷한 증상의 피해자들이 동일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피해자 단체를 만들었죠.
그뤼넨탈 측은 이 문제에 대해서 ‘스캔들이 아니라 비극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다만 피해는 비극이다’라는 건데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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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든 알악 콘테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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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에 발간된 소책자의 표지. 사진=독일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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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이 없는 탈리도마이드 피해자가 발로 컴퓨터 자판을 다루는 모습.
사진=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 소책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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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이 없는 탈리도마이드 피해자가 입으로 자동차 뒷문을 다루는 모습.
사진=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 소책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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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이 없는 탈리도마이드 피해자가 발로 음식을 먹는 모습.
사진=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 소책자(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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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이 없는 탈리도마이드 피해자가 발로 자동차 백밀러는 다루는 모습.
사진=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전국 협회 소책자(2012)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1972년에 보상금이 8600만마르크가 나왔고 1997년까지만 그뤼넨탈이 보상을 했습니다.
이후부터는 독일 정부에서 피해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1960년에 태어난 피해자가 13세 되는 때부터 비로소 피해 보상이 이루어졌고 38세 이후부터는 보상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담긴 약을 지금도 팔고 있다고 하던데요?
 
네, 이 약성분 탈리도마이드가 진정제 효과가 있는데 3개월 전후의 태아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만,
피부병 환자와 골수암 환자들에게는 아직도 사용되는 약이에요.
특히 골수암의 경우 2~3년 정도의 생명 연장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 약 성분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거죠.
브라질에선 셀버라는 이름으로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든 약이 판매되고 있고,
문맹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이 약을 먹고 80~100명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남편과 아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했다.
사실 물어보기 힘든 질문이었는지만 매우 궁굼했는데 그가 결혼했고 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12년 8월말에 그뤼넨탈이 공식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사실인가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뤼넨탈은 1997년까지만 보상금을 지급하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요.
매우 아쉬운 부분인데요, 피해자를 대표하여 콘테르간 재단이 그렇게 합의를 해 버렸고
그 때문에 이후 개별적인 피해보상 요구나 법적인 소송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헨이라는 곳에 그뤼넨탈 본사가 있는데 2012년 8월 30일에 그 회사 앞에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작은 아이 동상을 세워놓고 제막식을 했어요.
그 동상을 세우는데 그뤼넨탈이 5000유로를 기부한 게 전부입니다.
그게 왜 이상한 이야기로 와전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저는 그 동상 제막 행사에 초대되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피해자들이 참여했을 겁니다."
 
(한국의 언론에 소개된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팔다리가 없는 아이’ 제막식에 그뤼넨탈의 최고 경영자 헤럴드 스탁이 참석해
‘우리의 오랜 침묵을 우리가 당신의 운명에 일으킨 일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 달라.
지난 50여년 동안 여러분을 만나 사죄하지 않았다는 점을 사죄한다.
1950년대의 과학 수준으로 보자면 충분한 (동물) 실험을 거쳐 판매가 결정된 것이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탈리도마이드 베이비인 베리스퍼트 부드(51세)는
‘우리가 고통을 받고 우리 부모가 자살을 하던 지난 50년 동안 그들은 수십만달러를 벌어 왔다.
이제와 사과한다고 말한다면 누가 그에 대해 충분하다고 느끼겠냐’고 분노했다.
이 기사는 여러 언론에 의해 ‘독일 제약사 50년만에 사과’ 란 제목으로 다뤄졌다.)  

-당신을 방문한 이유는 한국의 환경운동가로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2011년 8월31일 정부의 발표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 규모가 현재까지 약 350건, 사망자만 100여명에 달한다.
제2의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해결에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운동의 경험과 교훈을 얻고자 그를 방문한 것이다.)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모이고 뭉쳐야 한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이 모이지 않으면 아무런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콘테르간전국연합에 전체 독일 피해자의 80% 정도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활동 참여가 필수적 조건입니다. 활동내용은 크기 보상과 아이교육 두 가지에요.
쾰른에 콘테르간 재단이 별도로 있습니다.
 
둘째, 피해자, 희생자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문제의 제품을 사용하지 말아라! 생산하지 말아라!' 라는 메시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골수암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어 2003년부터 2009년 사이에
매년 런던에서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이 골수암 환자들과 만나 회의를 했고 그 결과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약은 반드시 의사 처방을 받아야만 쓸 수 있고, 임신부, 임신 가능 연령대
사람에게는 판매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고의 경우,
2011년말 의약외품으로 지정된 후 시장에 판매되지 않고 있고 현재까지 더는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더니 그는 '매우 다행'이라고 했다.)
 
셋째, 회사의 문제점을 낱낱이 언론에 공개하여 회사의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합니다.
 
넷째, 의학적검증이 매우 중요합니다.
탈리도마이드 피해처음 한 피해자의 아빠가 전국을 다니면서 유사한 피해자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그랬습니다. 그 분은 변호사였어요.
 
 
마르기트에게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운동의 경험을 듣기 위한 국제행사를 한국에서 조직하려는데 참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가능할겠지만 자신을 돌봐줄 남편과 변호사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1시간 정도만 시간을 내 달라고 했었는데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주저주저하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용도가 무엇이냐고 물어 인터뷰 내용을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전하면서 보여 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 한장만 찍으라고 허락했다. 하여 그의 상반신 사진 한 장, 그리고 필자와 같이 한 장 그렇게 사진 두 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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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왼쪽)과 탈리도마이드 환자 대표 마르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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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자 단체 소개 책자에 나와 있는 마르기트의 연설 모습, 2005년
 

50년 이상 그는 이상한 외모와 장애로 험난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어깨에 붙은 자그만 서너 개의 손가락으로 커피잔을 집어서 마시고, 빵을 집어서 먹는 모습을 보았는데 매순간 안쓰러웠다.
 
 
전화기를 사용할 때는 먼저 탁자에 올려놓고 '어깨 손'으로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얼굴과 어깨 사이에 끼워 통화했다.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옆에서 지켜봤다.
 
하지만 그녀는 멀쩡한 다리를 가졌다. 대화 도중에 그는 웃방으로 올라가 막 인쇄되어 나왔다는 소책자를 가져왔는데 그 책자에는 팔은 물론이고 다리가 아주 짧은 장애자들이 많았다. 팔과 손이  아예 없어 발로 컴퓨터 키보드를 다루고, 발로 운전하는 이마저 있으니 그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런지….
 
그는 피해자 모임을 조직하고 운영하면서 피해자들의 활동참여를 독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렵다는 말을 서너번 강조했다. 필자가 그 말에 적극 동의하니까 그는 피해자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한 활동이니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를 독려하고 참여하게 만들어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지 말라’고 여러 차례 훈수를 둔 적이 있다고 하면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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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모임 위치도
 

필자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로 유명한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그는 피해자 운동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 자신만이 위대한 사람인 양 행동한다’고 잘라 말했다.
 크바스토프에 대해서 더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그도 아쉬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힘든 장애의 삶을 살지만 그래도 크바스토프는 성악가로서 성공했고
그러한 성공의 힘이 다른 피해자들을 위한 운동에 기여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 것인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크바스토프를 초청해 그의 음악과 더불어 많은 공해병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행사를 갖고 싶은 필자로서도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론 크바스토프가 성공한 사실 자체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문제가 독일은 몰론이고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르기트의 이야기를 듣고 크바스토프의 방한 행사를 기획한다는 게 거의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정말 멋지다. 독자 여러분도 크바스토프의 중후한 바라톤 목소리를 꼭 들어보기 바란다.) 
 
유럽출장을 준비하면서 책꽂이에서 그의 전기인 ‘빅맨 빅보이스’를 가방에 챙겨 이동 중 틈틈이 다시 읽었다.
그책 58~59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의 소리 없는 울음’이란 소제목이 붙은 부분이다.
 
어머니는 신경안정제 콘테르간을 복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1959년초 어머니가 그 약을 먹었을 때는 임산부들이 입덧을 없애려고 복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약회사 그뤼넨탈은 진정 효과가 좋은 것으로 소문났던 이 콘테르간에 대해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광고까지 해댔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이 약의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태아의 뇌와 신경조직을 손상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마침내 1960년 함부르크의 한 의사가 처음으로 콘테르간 복용과 기형아 출산의 관련성을 입증했다.
결국 그뤼넨탈은 1962년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제품을 회수하고 피해자들에게 수만 마르크 이상 배상해야 했다.
 
(중략) 콘테르간은 오늘 날까지도 상표 이름을 달리해 브라질과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콘테르간에 들어있는 탈리도마이드는
뼈와 모근 기관들이 형성되는 3개월 미만 태아들에게 치명적이다.
탈리도마이드 성분을 임신 21~22일 사이에 복용할 경우 태아의 귀와 뇌가 영향을 받는다.
또 24~29일 사이에 복용하면 태아는 뼈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팔 다리가 매우 짧아진다.
그리고 30~36일 사이 복용자의 태아는 손과 직장, 항문 등에 기형이 나타난다.
이런 장애로 서독에서만 대략 5000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모든 장애아들의 절반 가량에 이르는 수였다.
그리고 탈리도마이드 베이비의 3분의 1정도는 뇌손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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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출신 세계적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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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리도마이드로 인한 단지증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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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한 손 기형의 예. 사진=밀러(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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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한 귀 기형의 예. 사진=밀러(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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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한 사지 기형의 예. 사진=밀러(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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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 출처= LaDou J, edited. CURRENT Occupational & Environmental Medicine: Fourth Edition.
Chapter 25. Female reproductive toxicology. p 389. McGrawHill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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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출처=Winker R, Rüdiger HW. Reproductive toxicology in occupational settings: an updat.
Int Arch Occup Environ Health. 2006;79(1):1-10.

흔히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대표적인 약화(藥禍)사건이라고 부른다.
약을 잘못 먹었거나 약의 부작용 사건이란 말이다.
하지만 탈리도마이드 사건도 화학물질 안전 문제인 환경사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적인 3대 환경사건으로 1957년부터 알려진 일본의 미나마타병, 1983년 인도 보팔참사,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참사를 든다. 최근에 발생한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핵참사와
1960년에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사건도 세계적인 환경사건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하고
이들 환경사고의 교훈을 인류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탈리도마이드 사건 일지
 
1957년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 진정제 콘테르간 판매 시작 (두통, 감기, 불면증에 사용, 임산부들에게는 입덧 완화제로 처방, 그외 천식 고혈압 약으로 탈리도마이드 성분이 든 여러 이름의 약제 판매),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판매.  
1958년 첫 피해자 발생
1960년 독일 소아과 의사 부작용 사례 2건 보고,
1961년 독일 피해 사례 13건 보고, 유사 피해 보고 이어져 유행병으로 판단, 독일 의사 11월 임신부 입덧 완화제 복용과의 관련성 제기(거의 동시에 호주에서도 제기되었고, 영국, 케냐, 일본,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레바논, 이스라엘, 페루, 캐나다, 브라질, 네델란드, 미국에서도 확인됨. 미국에서는 유럽의 피해보고로 시험약제로만 판매되어 피해 적음), 피해자 단체 결성,
1962년 그뤼넨탈 책임 확인(법원)
1972년 그뤼넨달 8600만 마르크 보상금 지급 
1974년 일본 정부와 다이니폰(대일본) 제약회사는 탈리도마이드 기형아를 가진 부모 6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23억엔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소송 제기 11년만의 일이다 (<경향신문> 2012년 10월8일치 기사)
1997년까지 그뤼넨탈 보상금 지급, 이후부터는 독일 정부 보상금 지급
2008년 독일의회(하원) 탈리도마이드 실질적 피해현황 조사 프로젝트 시작(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노인병 연구소 등에서 진행 중),
2010년까지 그뤼넨탈 5억 유로 보상금 지급(회사측 주장) 
2012년 8월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동상 ‘팔다리가 없는 아이’ 제막식
2012년 10월 현재 탈리도마이드 피해 생존자 2,801명 (그뤼넨탈 콘테르간 제품 피해자 독일 2,451명, 독일 외 210명/ 스웨덴 제약회사의 아스트라 피해자 100명/ 영국 제약회사 티스틸러스 디아게오 피해자 40명/ 그 외 일본 서너명, 미국 등 여러나라에 소수의 피해자 생존. 이상 확인된 규모, 실제 피해규모 약 1만명 그중 절반 이상 사망)

최예용/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보건학 박사)
 
 
출처 :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http://ecotopia.hani.co.kr/6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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