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그는 오늘도 자신의 이불 더미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아침이다.’를 알려야 하는 그의 알람시계는 오늘 아침은 웬일인지 울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시계.’
그는 자신의 침대 옆에 놓여있던 달력을 북 찢으며 중얼거렸다. 마치 어두운 감옥안의 한줄기 빛처럼 그의 어두컴컴한 방안의 유일한 작은 창문이 달력을 향해서 비쳐지고 있었다.
3월 1일. 그가 날짜에 칠하는 빨간색 동그라미의 오늘이 이 날짜가 맞는지, 맞지 않는지 그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3월 1일. 민족의 해방 날이라는 이 날정도가 되면 적어도 그의 생활이 순탄해져,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생기겠지. 하는 목표로 삼고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예전의 마음속의 위안으로, 희망으로 삼자던 그 목표도 잊어버렸는지, 혹은 애써 내년의 3월 1일로 그 날짜를 넘겨버렸는지 날짜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한 번 더 물끄러미 살펴보더니 녹이 슬어 잘 열리지 않는 문을 끼익 소리를 내며 열고 나가버렸다.
최근에 그가 저지른 일련의 사건들이 생각났다.
그는 요리를 하며 접시를 깨뜨렸고, 화를 냈다. 또한 그는 막혀버린 화장실의 변기를 뚫으려 용을 쓰다가 지쳐 화를 냈다. 또한 그가 잡으려던 염소를 놓쳐 화를 내던 날도 있었다. 그는 웬일인지 요즘 화를 자주 냈다.
그는 스스로를 5m길이의 이 배안에 가두었다. 그가 찢어서 모아둔 달력의 개수로 보아 그는 7년하고 정확히 13일을 배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지칭했던 ‘폭풍우가 지나치게 치던 밤’의 찬장에 두었던 냄비에 머리를 맞아 기절해 있었던 날들은 그의 기억 속에 없으니 제외를 하고 말이다. 그는 자신을 이 배안에 가둬 놓고 스스로가 세상에 난파당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배가 세상에서 난파당해 굴러 나온 나뭇조각 하나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난파당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뭇조각인 이 배에 7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저 말없는, 나하고는 말 한마디 섞지 않으려는 사람이 해준 말은 아니다. 그가 이따금 중얼대는 말을 내가 유추한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