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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11)
게시물ID : military_286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13
조회수 : 1479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08/14 10:55:39
안녕하세요. 이 글을 시작한 지 어느 새 한 달여간의 시간이 흐르고, 편수도 11편이 되었네요.
서두에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습니다. 오늘은 말머리를 작성하는 것이 왠지 평소보다 힘든 것 같아요. 미필자분들께 계속해서 당부해왔던 제 글은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되지만 현재의 군은 많이 유해진 상태이고 글에 적힌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라는 취지로 쓴 것이라기보단 제 주변에 비해 조금 심했던 제 경험에 비추어 그보다 덜, 혹은 더 심한 경험을 하셨을 주변 분들의 아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라며 쓰는 것이다.. 뭐 이런 말을 다시 적을까 하다가(결국 적었네요) 제 글을 보시는 분들께 질문이라도 하나 던져 소통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가벼운 인사로 글을 시작해보렵니다.
 
근래 들어 대학교의 수강신청 철인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이 글을 쓰기 전 수강신청을 마쳤는데요, 공업수학과 전공법규의 벽이 절 벌써부터 압도당하게 만드네요. 학기 중 거진 집과 도서관만을 오가며 생활하게 될텐데, 제 젊음을 바친 그 노력이 언젠가 결실을 맺어 이 시간에 절 불태워 놀지 않았음을 어딘가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복이 지났음에도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더위에 몸 조심하시고, 지금까지의 제 글을 읽어주셨으며, 이 글 역시 읽어주실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전 편들을 댓글에 링크해놓겠습니다. 1~10편을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먼저 그것을 보고 난 뒤 이 글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의 내용전개가 이해되지 않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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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고등학교 3학년.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담장을 뛰어 도망쳤던 2시간의 피시방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매일 저녁 학교에서 나와 대학가를 헤메이며 그날 사먹을 식사메뉴를 정하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절. 명문대학에 합격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뛰어다니고, 먹고 마시고 취해서 별일없이 뛰어다녀도, 하물며 어느 저녁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둘이서 농구공을 튀길 때마저도, 인천대교 사이로 멀직이 지는 노을이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게 느껴졌던 시절.
 
20살. 대학교 1학년. 꿈꿔왔던 생활은 아니지만, 아직 어리니까. 아직 멀었으니까. 모든 건 성인으로서 처음 접해보는 것. 모가지를 죽 빼고 운전대를 꼭 잡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 키를 돌렸을 때의 울림, 그렇게 군생활에서 세절할 줄은 아직 몰랐던, 떠나갈 인연의 부드러웠던 손, 어차피 이제 끝인데, 입대까지의 시간을 분초 단위로 세며 친구들과 들이켰던 술, 동창 중 첫번째로 군대에 들여보낸다며 스무 명 남짓하게 모여주었던, 이젠 연락도 잘 되지 않는 고3 동창들.
 
입대후 첫 불침번, 흐릿한 정수기의 불빛 아래로 수첩에 고이 적어간 그네들의 이젠 바뀌어버린 번호와 이름을 보며 울적해했던 훈련소의 기억.
 
때는 내가 일병 4호봉(일병이 된 지 4개월차). 난 그것을 잊어버렸어. 언젠가 내가 선생님, 혹은 아버지께 혼나고 있을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었을까. 아닙니다는 확실히 아니었는데. 간만에 휴가를 맞아 찾아간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께선 날 더이상 고등학생으로 대하지 않으셨고, 혹여나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나보다 한두 살이라도 많을 시에 난 그와 나 사이에 벽을 두르기 바빴었지.
 
대학교 정문 앞 큰 굴다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나에게 욕하고 구타하지 않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어. 집앞 바다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면, 방파제 사이로 쓸려오는 파도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지. 뭐든지 '제가 하겠습니다'고 나서서 힘을 쓰는 아들을 보며 주변 어른들은 대견해했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어. 제삿상을 옮기다가 정강이에 제기가 살짝 닿아 격한 고통을 느끼며 억 하고 넘어진 후에, 쏟아진 그릇과 짜증내시는 아버지,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질질 끌리는 한쪽 발, 서러움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내뱉은 죄송합니다.
 
나에게 드디어 다음 후임이 들어왔어. G와 W. 난 이 두 후임에게 정말 잘해줬어. 내 후임들이 나를 신경쓰지 않아도. 노력해서 그들을 가르쳤고, 모르거나 실수해서 나에게 오는 불이익에 있어 절대 성내지 않았지. 언젠가 이들도 나를 무시할 날이 올 것을 알았지만, 그들만큼은 나만큼 힘든 군생활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난 아무 힘도 없으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내가 아는 지식들을 알려 주는 것, 그리고 내 후임들의 갈굼에서 그들이 벗어나게 해주는 것. A는 전역할 때까지 날 무시하고 구타했지만, 어차피 몇 대 더 맞을 거 그 후임들 몫까지 맞아주고 매장당하면 그나마 효율적인 희생이지 않을까.
 
처음 들어오는 신병이 웃으며 들어올 수 있는 부대. 내 맞선임 R에게 말했던, 그런 부대가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 하지만 나한텐 그럴 힘이 없었지. 그래도 내가 다 참으면서 내 밑의 친구들이 아무 부조리의 경험이 없게 된다면 언젠가 내 꿈은 실현되지 않을까.
 
A가 전역했어. 마지막 가는 길 그는 나를 불러 담배를 피우며 말했지. 날 찔렀으니까. 난 널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봐줬다. 너한테 그만큼 정이 있어서 가혹하게 대했던 것이다. 군에서 이렇게 등신같이 살던 기억이, 나중에 네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너도 내가 고맙지.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B가 전역했어. 그는 특급전사를 달성하고, 몸도 꽤 괜찮아졌지만, 마지막까지 선임으로 큰 인정을 받지 못했어. 아무도 그를 배웅하지 않았어. A가 전역함으로서 어느 정도 숨을 쉴 수 있게 된 나라도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 했지만, 내가 본 건 이미 멀직히 가버린 그의 뒷모습이었어.
 
B밑에는 C가 있었어. 그는 분대장이 된 이후부터 구타를 일절 하지 않았고, 얼차려도, 욕도 잘 하지 않았지. 분대장까지 무서우면 안되지 않겠느냐. 그의 인기는 폭발했어. 그렇게 얻어맞던 기억은 다 어디로 가버린걸까. 그는 정말 남자다운 사람이라 평가받았고, 마지막 날 열렬한 환호와 함께 전역했지. 내 뺨에는 그에게 맞다가 긁힌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었지만 마지막 날 나는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던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어.
 
C가 전역하고 D가 분대장이 되었어. 그는 서울 출신으로, 분대원들 중 서울 출신을 제외한 아무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었지. 애초에 말이 없어서 자신이 대화할 필요가 없거나, 서울에 살아서 공감거리가 많은 사람을 좋아했어. 난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원래 안좋은 인상이 박혀있던지라 그와 대화한 기억은 거의 없어. 그는 내가 그렇게 짬이 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한 방의 방장으로 삼아 코를 곤다던가 교육할 게 많다던가 하는 같이 있으면 복잡한 인원들과 몰아넣었고, 어차피 내가 해야 될 일이었기에, 그리고 C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리저리 간섭하지도 않았기에 난 그가 전역할 떄까지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어.
 
D가 전역하고 E가 분대장이 되었어. E와 그 아래의 R, 그 다음이 나였기에 그와 나는 같이 맞던 사이였어. 하지만 7개월이라는 짬차이 때문에 그와 나는 영원히 친할 수 없는 사이였지. 자신이 맞는 것을 보아온 짬차이가 많이 나는 후임이라는 인식 때문일까. 그는 나를 싫어하는 듯 보였어. 당시 분대의 3번째 고참이었던 나를 후임 대신 갈궜고, 무슨 일이 있다면 자꾸 날 불렀지. 신병의 짐처리까지도 내가 했어야 했으니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D는 갈굴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어서 그렇게 갈궜었던 거야. 나하고는 친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같이 자란 놈이니까 그렇게 해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해.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알아달라는 말도 들었어. 하지만 난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D 는 그렇게 누구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로 전역해야 했어.
 
그 후 내 맞선임 R이 분대장이 되었고, 난 5개월간의 긴 2인자 생활을 하게 되었어. 5개월간의 2인자 생활, 3개월간의 분대장 생활,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내 군생활 후반기인 이 때의 이야기들이 될 거야.
 
결코 행복하지는 못한, 오랜 선임층 생활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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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10.5편으로 이름붙이고 싶었지만, 글의 제목이 너무 길어서 다 써지지가 않더군요.
사실 이번 편부터 바로 제 군생활 후반기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전편과 괴리감이 좀 있는 것 같아서 A와 선임들의 마지막 장면들을 생각나는 대로 써 봤습니다.
 
후반기의 이야기는 후임들과의 삐걱거리는 관계와 군대의 어이없을 정도로 겉핥기식 행정, 간부들의 간사함에 그 초점이 맞추어질 겁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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