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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10)
게시물ID : military_284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18
조회수 : 1931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3/08/12 00:39:39
안녕하세요, 긴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이제 전의 글들을 읽으셨던 분들보다 안 읽으셨던 분들이 많아지셨을 거라 생각해서, 이번 화는 연재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먼저 드리고 시작할게요. 
우선,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전부 실화입니다. 중간중간 제가 느꼈던 감정들이나, 제가 생각하는 상대의 감정, 즉 상대의 감정을 예상해보기는 하지만, 
상황 묘사나 사건들은 전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진실입니다. 

글이 너무 잔인하고 비참해서 군에서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왕왕 계시네요. 하지만, 2010년~2012년의 어떤 부대에서 분명히 일어났던 일이고, 몇몇 헌병 쪽 부대와 해병대 쪽 부대, 특전 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 친구 하나는 해병대였는데, 저와 1일 차이로 군대에 갔었지만, 첫 휴가 사진을 보니 눈 한쪽이 시퍼렇게 부어있고, 온몸에 구타의 흔적이 있더군요.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이 이제 군대에 가야 할 미필 분들을 겁주기 위함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제가 열거한 부대와 제가 있었던 부대가 특수한 부대이고, 그에 따라서 아직 구타가 남아있었다 뿐이지 거의 모든 군에서 본 글과 같은 일들은 사라졌다고 하니까요. 

저의 진정한 목적은 이것입니다. 미필, 혹은 여성분들이 군필자들이 혹시 겪었을지도 모르는, 혹은 구타만 제한다면 군에서 분명히 겪었을 많은 부조리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또한 제 글보다도 수백만 배는 악독하게 군생활을 보냈을 아버지와 큰 형님 벌의 세대의 아픔을 이해해주시게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의 힘들다는 말에 장난스레 조롱하듯 넘기는 것 보다는 진심이 담긴 위로의 한 마디를 줄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느끼셨을 군필자 분들께서 이 글로 하여금 자신의 맘에 응어리져 있을 군대의 트라우마들을 쏟아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적절한 앞머리 멘트의 마무리가 생각나지 않아 바로 글을 시작할게요. 먼젓번 글들을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1~9편과 외전을 읽고 이 글을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야기가 이미 많이 진행되어, 과거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글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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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독립투사였던 아버지가 황급히 집으로 뛰어들어오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부엌의 항아리 속에 숨겨 주셨다. 곧이어 일본인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은 어머니를 붙잡아 팽개친 뒤 서투른 조선어로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에 숨겼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모른다고 하셨다. 그들은 곤봉으로 어머니를 마구 때렸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도 무서웠다. 순사의 다리 너머로 쓰러진 어머니와 흐르는 피가 보였다. 저절로 눈물이 흘렸다. 몇 대를 때린 뒤, 그들은 어머니에게 묻는 것을 그만두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전신이 얼어붙는 느낌이 왔다. 아마도 내 얼굴은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비굴하게 공포에 질려있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씨익 웃더니 곤봉을 나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에 숨겼나. 금방이라도 나에게 들이댄 그 곤봉이 나를 내리칠 것만 같았다.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사의 곤봉에 내 시야의 모든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것의 미약한 떨림에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순사가 그것으로 나를 쿡 찌르며,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공포에 질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알고 있다. 내 아버지가 숨은 항아리를 눈짓한 것이다. 아버지는 잡혔고, 살해당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살해당하실 때까지도, 그 곤봉에 한 대도 맞지 않았다. 

- 한 독립운동가의 자서전 중.

사실 자서전이라기에는 너무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아주 어릴 적 내가 저런 류의 문장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앞머리에 붙여봤어. 책이 이제 내 손에 없어 그대로 베껴 쓰지 못했던 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저 장면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 나도 맞는 걸 정말 무서워하는 편이었고, 엄했던 아버지 밑에서 나름 많이 맞고 자랐었지만, 군대에 와보니 나는 그냥 기집애만도 못한 겁쟁이일 뿐이었지. 

오늘의 이야기는 내가 일병 3호봉(일병이 된 지 3개월차) 일 때의 이야기야. 저번 이야기에 썼던 것처럼, 내가 아직도 A의 머리에 총알을 박고 나도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살게 된 그 일을 적어볼까 해. 사실 이 글을 적을 지 말 지 많이 고민했었어. 객관적으로 볼 때 누가 잘못인지 모르겠고, 주관적으로도, A보다는 내 자신이 더 혐오스러우니까. 

내가 일병이 되고, 내 맞선임(나와 3개월 차이가 나는 선임이었어)은 슬슬 상병 진급을 준비하는 그런 달이었지. 맞선임은 그만큼 짬을 먹어서 그렇게 욕을 많이 먹지 않고 군생활을 하게 되었어. 사실 통신병이었기도 해서 분대의 많은 일에서 살짝 비껴 서있기도 했던 사람이고 처세술과 여자에 관한 이야깃거리고 많아 나보다 애초에 생활이 편했던 사람이었지. 그러나 나는 처지가 달랐어. A가 이미 나를 무척 싫어했고, 이전에 썼던 이야기들에서도 말했듯이 분대 내에서 나에게 지위란 이미 눈꼽만큼도 없었지. 나조차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버텨서 전역이나 하자는 느낌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 문제는 내 후임들에게서 발생해. 

소대장이 바뀌고, P의 사건 이후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설문이 잦아지면서 폭력은 사그러들었어. 타 분대에서는 아직 그대로다...라고 그쪽 친구들에게 들었었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분대에서 얼차려가 아닌 순수한 구타 자체는 오로지 나에게만 국한되어 있었지. 하지만 우스운 일이야. 얼차려와 구타를 모두 당하던 사람들이, 구타를 제외한 얼차려만 당하면 군기가 빠져버려. 귀찮게는 되겠지만 그래도 날 때리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하는 일종의 심리인 것 같아. 그 이후 우리 분대의 군기는 과도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사격 훈련 뒤 전투조끼에 탄창이 남아있는 것을 모르고 생활관으로 돌아올 정도였지. 이쯤 되면 일반 야전군에서도 생각지 못할만큼 문제가 있는 군대이지 않아? 구타로 이루어져 있던 우리의 군기는, 그 구타 하나가 사라지자마자 각종 부조리와 얼차려가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젠가 탑 무너지듯 허물어져 버렸어. 

아직 분대장이었던 A와 여하 선임층은 그런 우리에게 설문지의 위험이 있더라도 구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 하지만, 지금껏 지켜보다가 뜬금없이 나서서 너희들의 군기를 더는 봐줄 수 없다며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는 일이고, 집합시켜서 구타할 구실이 필요했는데, 그 와중에 보이는 게 나였지. 

나는 말했던대로, 나에게 구타를 가할 변수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일병 3호봉이면 그 부대에서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상태라 어지간한 실수는 하지 않았지. 그나마도 기합이라던가 걸음걸이라던가 특히 제식이라던가 거의 강제로 꼬투리를 잡아 때리기는 했었지만, 난 내 후임보다도 이동 간 제식(흔히들 하는 이동 간 대화도 군대에서는 금지되어 있는데, 보통은 간부가 없을 때 이동 간 대화금지는 가뿐히 씹지만 난 그조차도 하지 않았어. 누가 뭘 물어볼 때 예 와 아닙니다 빼고는 군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훈련 중 기합, 각종 교육훈련 및 교육시험 성과에 있어서 열심이었고, 결과도 뛰어났지.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나에게 가해지는 각종 부조리 역시 줄어드는 추세였고, 나 역시 이제 좀 숨을 쉴 만 하다고 느끼는 차였어. 

어느 날 A가 자신의 방에 나를 불렀어. 난 하던 일을 제끼고 바로 뛰어갔지. 그렇지 않으면 구타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선임층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A는 나에게 '요즘 후임들이 널 선임으로 잘 안 보지 않냐?'라고 물어봤어. 

순간 등골이 서늘했어. 무슨 생각을 하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내가 선임취급을 못 받는 것의 사실상 주모자가 날 걱정하는 것일 리는 없고, 여기서 예라고 하던 아니라고 하던 무조건 때릴 생각일까. 

그는 너의 후임들이 너를 대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후임이 선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질서는 잡혀야 되지 않겠느냐라며 나에게 다시 물어봤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니라고 말했지. 그때부터 구타가 시작됐어. 무릎앉음 자세이던 나는(한 무릎만 꿇고 앉는 중세 기사들이 흔히 하는 자세 있잖아) A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고 침대 아래쪽으로 반쯤 쳐박힌 채 계속 밟혔지. 그리고 그는 나름의 이런저런 사례를 댄 다음 다시 물었어. 

전번에 내가 수건을 들고오랬더니 후임들은 가만히 있고 네가 다녀오지 않았느냐는 둥, 전번에 너 혼자서 분리수거 정리를 하는 것을 보았다는 둥 사실상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관심없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분대를 보고 있었다니 나름대로 의외였어. 그리고 나는 멍청해서, 여기까지 밖에 생각하지 못했지. 그리고 다시 아니라고 대답했어. 아닙니다. 선임 대우 받고 있습니다. 

자존심도 없는 놈이었냐며 구타는 더욱 거세졌어. 그날은 마침 휴일이라 일과가 전혀 없었기에, 그 때부터 맞기 시작하면 앞으로 5~6시간은 꼬박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어. 아무도 A를 말려줄 사람은 없었고 최근 들어 때릴 일이 없었는데 마침 잘 걸렸다는 듯 그는 날 더 게걸스럽게 때렸어. 

약 한시간 정도 맞았을까. 날이 어느새 어스름해졌고 난 얼차려를 받기 시작했어. 주먹을 쥐고, 다리를 책상에 올린 채로 엎드려 있는 것이었는데 해본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힘든 자세인지 알고 있을거야. 그렇게 무너지면 다시 맞고, 그 자세로 복귀하길 계속했지. 정말 오랫동안 맞았어. 조금 아물었던 정강이가 다시 찢어져서 피가 흘렀고 군복은 발자국으로 더러워졌지. 따귀를 맞은 귀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반복되는 얼차려로 전신이 땀에 젖었어. 그 때쯤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 예 라고 대답한다면, 이 상황이 타개되지 않을까?

팔은 다시 올릴 수조차 없을 만큼 아팠고 한 대만 더 맞으면 정강이가 나갈 것 같았어. 그만 그 상황을 벗어나서 잠을 자고, 빨리 내일을 맞이하고 싶었어. 아니라고 대답해서 이렇게 맞고 당하는 것이라면 그냥 예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자리에서 빠져나가고 싶었어. 더 이상 맞을 수 없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난 결국 내 인생 최악의 대답을 선택했지.

A는 아마 나의 그 대답을 통해 후임들을 갈구고 때릴 거리를 찾고, 또한 그렇게 때리는 김에 최근 들어 빠진 군기도 다시 잡으려고 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왜 맞는 동안 그 정도 속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하지만 후회해봐야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그는 후임들을 불러모았어. 그리고 말했지. 너희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했길래 니 선임이 와서 나에게 선임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하느냐. 오늘 너희는 교육을 좀 받아야 한다. 

후임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구타당하고 얼차려를 받았어. 점오 때까지. 난 그저 옆에 서 있었어. 생활관의 에어컨 바람에 땀으로 젖은 등짝이 서서히 마르고, 부어올랐던 종아리의 고통도 덜해지고, 기껏해야 두시간 남짓했던 얼차려의 고통도 가셨어. 

굳이 그만큼의 시간이 가지 않아도 팔은 다시 들어올릴 수 있었어. 몇 대, 아니 수십 대를 더 맞아도 정강이는 나가지 않았을 거야. 후임들이 지금 이렇게 얼차려를 받으며 맞는 동안 내가 똑같은 일을 더 했어도 내 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야. 난 대체 뭘 근거로 그렇게 엄살을 피웠던 것일까. 

난 쓰레기였어. 지 힘들다고 후임들을 팔아버리는 그런 종자였어. 머릿속에서 글의 앞머리에 적은 자서전 속의 일화가 떠올랐어.당장이라도 뛰쳐나가 A의 모가지를 뒤틀고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서 (맨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에서는,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두개골 내부의 뇌조직을 휘젓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완벽한 방법이라고 해) 죽여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내 몸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어. 그 이유는 아마 내가 정말로 A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기 보다는 그저 A를 죽이는 상상을 하며 대리만족이나 하는 겁쟁이였기 때문일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 일 이후, 후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나아졌어. 하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보지 않았도 불 보듯 뻔했지. 그들이 이제 굳이 그들이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서도 나에게 예의를 차리기 시작했지만, 난 그런 그들을 볼 때마다 자괴감에 시달렸지. 어쩌면 지금 나는 A를 죽이지 못해 후회하는 게 아닐 거야. 난 남자로서 내 모가지 하나 내걸지 못하는 내 패기와 인간성에 실망한 것이 아닐까. 말로는 A가 나쁜놈이다, A를 못 죽이고 나도 못 죽은 것이 여한이다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런 일을 겪고도 말짱하게 살아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오히려 그 당시의 일을 잊어가는, 그런 내게 실망한 것이 아닐까. 

그런 걸 알았으면 고치면 된다고들 해. 많이들 하는 말이지.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할까. 다시 그런 상황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나? 언젠가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옳은 선택을 해야 할까? 난 나름대로 난 이미 죽은 목숨이니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뭔가를 잃게 될 상황이 오면 난 다시 비굴해지지 않을까? 

언젠가 난 내 손목에 칼을 들이대봤어. 그건 내 나름대로의 시험이었어. 난 내 몸에 상처를 입힐 정도의 용기가 있을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어. 굳이 손목이 아니더라도 난 칼로 손가락 끝을 긋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어. 

이 사건 속에서 내가 한 번 죽었다면, 난 아마 목숨이 수백 개씩 달려있는 놈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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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주신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선임 때문에 힘들었던'시간 분이 모두 끝났네요. 이젠 '시스템 때문에 힘들었던'시간들의 이야기를 다음 화부터 연재하게 될 거에요. 

쉬이 마무리하기 아쉬우니까 글의 앞머리로 생각했던 많은 일화 중에 하나를 덧붙입니다. 

< 계급이 낮았던 때, 나와 내 주변의 가까운 후임들끼리 했던 말이 있다. 우리는 차출되었다. 그 기준은 '자살조차 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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