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EAGLE을 읽은 후에 만화를 감상하시는걸 추천합니다. 알고나서 보면 만화에서 더 많은것이 보이거든요.
전투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만들어낸 4천이란 수의 관군과 의병, 승병들은 길목을 지키기 위해 행주 산성으로 들어갑니다.
방어전을 펼칠 요량이었지만 사실 행주산성은 언덕 위의 조잡한 토성에 나무 바리케이트를 친 정도에 불과했죠.
심지어 배수진이었습니다. 뒤가 막혔습니다. 이런 시망 시츄에이션에서 3만명의 왜군에게 포위당합니다.
.....
근데 이ㅋ김ㅋ
네?! 뭐라구요?!!!?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이겼냐 하면, 장비빨입니다.
조선군사들이 영웅인마냥 날아다녀서 이긴게 아니라, 조선의 포텐빨로 인해 과거부터 개발되어있던 오버테크놀러지 무기들을 대거 사용한 결과 대체역사소설급으로 왜군이 썰려나간것이죠.(사실 병사들의 숙련도로 치면 왜군쪽이 수십년 내전에서 다져진 베테랑병사들이었습니다.)
잊혀진 고대병기의 부활
그럼 이제 그 장비빨들이 뭔지 대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비격진천뢰&대완구
일단, 박격포인 완구포와 비격진천뢰를 사용합니다. 장난감 완구가 아니다
많이들 오해하는바와 달리 초기 대포알들은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만화에서 심지에 불붙이고 쏘면 날아가 펑 터지는 대포는 사실 그런 대포가 존재하던 시대에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기관총과 연발소총이 도입되던 1800년대 미국 남북전쟁시기까지도 강선대포에서조차 비폭발성 쇳덩어리 대포알을 쓰는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날아가서 때려 부수는 묵직한 대형 총알을 쏜다는 개념이었죠.
물론 폭발성 투사체의 개념는 고대부터 있어왔습니다.
영화 300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마술사들의 정체는 폭발물질을 도자기에 담아 불을 붙여 던지는 공돌이들이죠. 이때부터 연금술이...
네이팜의 시초인 그리스의 불을 도자기에 담아 던지기도 했으며, 송나라를 침략한 몽고군의 도자기 화염병도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막바지의 일본군 도자기 수류탄도 존재했습...근데 이건 아니잖아? 안습
시대가 지나 화포에서 발사되는 폭발성 대포알도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비격진천뢰가 그리 특별한건 아닌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왜 이런 폭발성 투사체, 즉 고폭탄 포탄들이 세계역사속에서 보편화되지 않았냐를 살펴보면 풀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존의 고폭탄들이 어마무시한 발당 가격에 비해 위력이 심히 실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크고 아름답게 터지라고 화약을 도시락 싸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포탄 안에 꾹꾹 눌러담았는데, 막상 쏴보니 영화에서처럼 엄청난 화염이 일지만서도 적 병사들이 그 영화들에서 화염을 뚫고 탈출하는 무한목숨의 람보처럼 뒤지지를 않았더란겁니다.
뒤지지를 않어 뒤지지를.
그 이유는 파편효과의 부재입니다.
현대의 파편수류탄들을 살펴보면 폭발화약자체는 미량 들어가있습니다. 터질때 천지가 진동하고 웅장하게 터지지만 사실 그 양의 화약으로 여러명을 터뜨려죽이기에는 부족하죠.
하지만 수류탄은 그정도 화약만으로 수류탄을 화약으로 가득 채웠을때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파편효과를 노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폭발 에너지가 강하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날아와 살을 때리는 고체덩어리가 없다면 지근거리에서 떨어진 폭탄도 뜨거운 공기로 살갗을 익히는정도에 그칩니다.
그러나 폭탄이 터지는 순간 폭탄 표면에 붙어있던 작은 쇳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폭발연 자체는 미미하지만 그로 인해 시각적으로 예상되는 폭발반경의 수십배에 달하는 반경을 파편효과를 이용해 살상반경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폭발과 동시에 폭발연과는 사방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아무일도 없어보이는 맨땅바닥에 먼지가 피어오르는것이 보입니다(화살표).
수류탄 겉 껍질조각과 그 안에 발라놓았던 쇠구슬들이 폭발과 동시에 사방으로 비산한것이죠. 저 반경 안에 서있었다면 영화에서처럼 폭발화염에 휩싸인것도 아닌데 왜 죽는건지도 이해하지 못한체 몸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끔살당합니다.
비격진천뢰는 고폭탄 자체로도 이미 연대를 앞서는것도 모자라 이 파편효과를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포탄입니다.
구조를 뜯어보면 내부가 빈 볼링공과 그 구멍을 덮는 뚜껑(심지를 꽂는 작은 구멍이 또 뚫려있습니다.), 그리고 구멍 안에 넣는 대나무신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내부공간에 화약과 함께 쇠파편들을 마구 집어넣습니다.
그걸 넣을 공간에 화약을 더 넣는게 좋겠다고 판단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조선기술자들은 무언가 엄청난것을 알고 있었던거죠.
발사된 후 심지가 다 타들어가 폭발하게 되면 이 내부의 철파편들, 그리고 화약의 폭발력으로 인해 깨져나간 얇은 외부 표면의 조각들까지 사방으로 비산하게 됩니다.
현대전도 아니고 밀집대형이 일반적이던 중세시대에 이걸 진형 한가운데에 맞는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죠.
마치 좀비영화에서 몰려든 좀비들을 다이너마이트로 폭ㅋ파ㅋ시킬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근데 이것도 모자라서 비격진천뢰는 또 하나 시대를 거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내부에 들어가는 대나무신관입니다.
전통적으로 고폭탄을 포로 발사할때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발사할때 포 심지에 불을 붙이는것만이 아니라 포탄에도 심지를 꽂고 불을 붙여야 날아가 터진다는겁니다. 이때 포탄의 심지 길이에 따라 폭발하게되는 시간이 달라지는데, 이 길이를 잘못 조절하면...
날아가던 도중에 허공에서 터진다거나
떨어지고나서 불발이 일어나거나
하도 오랫동안 안터져서 적병이 주워서 되던진다거나
심지어 너무 빨리 터져서 발사준비중 포 안에서 폭발, 포병이 본의아니게 자살포격을 수행하게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게다가 심지가 포탄 밖으로 나와있으면 중간에 불이 옮겨붙어서 계산한 길이대로가 아니라 심지의 중간부터 타들어가 계산보다 일찍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날아가다가 불이 꺼질 수도 있죠.
사진은 설명을 위해 겉 껍질이 절반 벗겨진 상태의 신관입니다.
그런데 비격진천뢰는 이걸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스크류형태로 홈을 파놓은 대나무장치에 교육받은대로 거리별 폭발지연시간에 알맞은 바퀴수만큼 심지를 감은 후에 이렇게 감은 심지&신관 장치를 포탄 내부로 넣고 뚜껑을 닫은 후에 심지 끝만 밖으로 꺼내서 불을 붙입니다.
안전성과 정밀한 지연시간조절 양자 모두를 나무쪼가리 하나로 달성한것이죠.
군사병기에 있어서 규격화와 획일화와 교본분배는 굉장히 중요한요소입니다. 고대 중원 진시황의 위대한 업적중 하나가 도량형 통일을 통한 기계식 병기의 규격화 대량생산입니다. 궁병보다 쉽게 운용할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싼 석궁을 대량생산하는데, 부품을 규격화하여 대량생산하고 조립이나 수리를 획일화해서 체계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전쟁은 군사교리와 보급, 경제력등으로 판가름난다는걸 잘 보여주는 사례죠.
비격진천뢰는 이렇게 정밀 지연신관을 도입하고 사용하는 포병들에게 알맞은 거리별로 심지를 감는 바퀴수를 교육했습니다. 이로써 포병들이 포를 어느 각도로 어느 거리에 쏘던간에 땅에 떨어지자마자 터져서 위력을 발휘하는것이 가능해진겁니다.
이쯤되면 안전하기도 하고 비싼 값도 하기 때문에 조선군에서는 실험성 병기정도로만 처박아두던 다른나라들과 달리 고폭탄을 실질적으로 제식 운용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이순신과 관련해 알려진 내용들을 살펴보면 조선군 포병대는 사거리별로 다른 양이 필요한 화약을 기름종이로 싸놓아 계량없이 전투에서 즉각즉각 알맞은 양으로 사용한다던가, 포신의 기울기를 조절할때 필요한 나무 받침대 목곡을 같은 사이즈로 준비해놓고 조준에 사용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규격화와 교범교육에 힘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약 포장 봉지를 이용한 장전법은 거함거포시대의 전함에도 비슷한 형태로 사용되었던 근대적인 기술입니다.
-화차
또, 조선군은 화차를 사용했습니다. 40여대가 사용되었는데, 알려진바와는 다르게 다련장 로켓화차인 신기전기화차만이 아닌 장갑차에 가까운 변이중화차, 산탄기관총(?)이라 할 총통기화차등을 다양하게 사용했습니다.
다른 기능의 모듈을 교체할 뿐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무기들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 화차가 그 화차인거.
어제 쓴 게시물을 참조하시면 화차에 대한 더 깊이있는 이해가 가능합니다.(화차의 모듈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