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자리는 원래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 잠저였는데, 여기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하여서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궁궐을 지으면 자신의 왕궁이 되어 자신의 왕기가 되므로 안심했지만 결국은 인조가 자신을 쫓아내고 왕이 되었으니 풍수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동대문은 동쪽지역의 산인 낙산이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북쪽의 북악산에 비해 산세가 낮고 기가 약해서 현판글씨를 흥인지문이라고 '之'를 한 자 넣어서 기를 보할려고 넉자를 만들어서 걸었다. 다른 문은 숭례문 돈의문 홍지문처럼 석자가 일반적이다.
그래도 동대문의 기가 약해서 결국은 임진왜란 때도 왜군이 동대문으로 입성했고 6.25 때도 북한군이 미아리를 통과하여 동대문으로 들어왔다.
경복궁은 앞에 보이는 관악산이 봉우리가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으로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화재를 막기 위해서 광화문 앞에다 불을 잡아먹는 물짐승으로도 간주된 해태를 세워놓고, 숭례문의 현판글씨를 세로로 세워서 관악산의 화기에 맞불을 놓고 '崇'자 역시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처럼 보여서 화재예방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도 결국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버렸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도 화재가 나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그 숭례문마저도 불타버렸으니 관악산의 화기가 강하긴 강한가 보다.
대원군이 파락호행세를 하던 시절에 야망을 품고서 용한 지관에게 가서 자문을 구했더니,
충남 예산의 가야산에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인 터를 추천해줘서 대원군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그 터로 이장을 하였는데 결국 고종 순종이 황제가 되었으니 그것도 기이한 일이다.
그런데 대개 명당 자리에는 절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터에도 조그마한 절이 있었는데 내쫓아 허물고 이장을 하다가 나중에 동티가 나서 도굴사건도 생겼다. 오페르트가 도굴사건을 벌였다가 도망갔지만 배우 율 브리너가 오페르트의 외손자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 오페르트가 그 터를 만지면서 왕기를 얻어갔는지 율 브리너도 "왕과 나'에서 왕 노릇을 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풍수지리를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