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나 명백해서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덕목 중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에 의한 선거 개입으로 인해 가뜩이나 권력의 정당성이 취약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 중 단 한가지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녀에겐 훌륭한 인품(진실성, 정직, 청렴함, 책임감, 겸손함, 포용력, 소통능력 등), 지력(학습능력, 판단력, 추상화능력 등), 사람을 보는 안목, 제대로 된 국가발전전략, 통일한국에 대한 비전, 세계정세를 꿰뚫는 눈 중 어떤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덕목들 가운데 단 한 개도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잘 수행한다는 건 나무에서 고기가 열리는 걸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다.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그녀가 박정희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교 신도들이 우글거리는 대한민국에서 박정희의 상징권력을 독점한다는 건 비교할 바 없는 장점이다. 박정희의 상징권력을 독점한다는 건 이중의 의미이다. 반신반인의 초인인 박정희의 능력과 성취를 계승한다는 의미와 양친을 흉탄에 잃고 늙은 고아라는 의미. 출중한 능력과 애국의 이미지에 더해 가엾다는 감정까지 더해져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일부 대중들의 지지는 거의 신앙수준에 이르렀다. 숫자가 많은데다 지지의 강도에 있어서도 단연 앞서는 지지자들의 존재에다 비대언론들의 전폭적인 상징조작이 가세하자 정치인 박근혜는 결점이 없는 천상의 존재가 됐다.
정치인 박근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박근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지자들과 비대언론의 압도적인 화력지원을 등에 업고 선거에서만 이기면 됐다. 그리고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지시하듯 전국 단위 선거에서 불패의 신화를 자랑했다. 박근혜의 전성시대였다. 선거 승리의 정점은 대선승리였고, 그 결과 박근혜는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선거승리의 정점이라 할 대선승리는 정치인 박근혜의 조락의 출발점이었다.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기기만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라 국정 전반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자리다. 재임 중 선거승리는 대통령의 권위를 공고하게 하고 더 효과적인 국정수행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 외에는 완전히 무능한 정치인 박근혜의 실체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부터 낱낱이 드러났다. 그 백미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이다. 세월호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발생했더라도 304명이 숨져서는 안되는 사건이었다. 설사 승객들을 구조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더라도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을 방지할 시스템은 만들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세월호는 가라앉았고, 304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수장됐으며, 사건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시스템 구축 중 어느 것도 정부의 방해로 진척이 없다. 이 사태의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세월호 사태를 통해 우리는 대통령 박근혜의 무능과 무책임을 신물나게 목격했다. 진정 놀라운 건 대통령 박근혜에게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공감능력과 긍휼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최소한 대통령 박근혜에게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의 불행과 고통을 공감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지옥도는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세월호 사태를 통해 일관되게 보여준 건 유체이탈 화법과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퍼포먼스 뿐이다. 슬프게도 그녀는 유체이탈 화법과 정치적 퍼포먼스를 정치의 본질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다. 내가 그리 생각한 이유는 정치인 박근혜가 무지해서도, 무능해서도, 무책임해서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박근혜가 마음이 너무 아픈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인혁당 재심 사건 등으로 조짐을 보인 박근혜의 심리상태는 세월호 사태를 통해 사막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 어떤 무능이나 무책임도 마음이 망가진 것보다 위험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