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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기독교도들이 하는 제일 나쁜 짓
게시물ID : sisa_601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aulΩ
추천 : 14/3
조회수 : 58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08/09/26 17:42:46
바로 예수를 팔아먹는 것이다.

예수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실천이었다.
다시 말해서, 재판관, 고소자 및 모든 종류의 중상과 조소를 앞에 둔 그의 태도,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태도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닥칠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최악의 사태를 도발하고 있다. … 그리고 그는 그에게 악행을 가한 자들과 더불어서, 그들 안에서, 기도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결코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도는 행동하는 것이며, 하나의 다른 행동을 통해서 구별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악의를 지닌 자에 대해서 말로써나 마음에 있어서나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 이방인과 동족, 유태인과 비유태인을 구별하지 않는 것. 그는 어떤 이에게도 화내지 않고 어떤 이도 경멸하지 않는다. 법정에 나타나지도 않고, 또한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아내의 부정에 대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아내와 헤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원칙이며, 모든 것은 하나의 본능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직 기독교적인 실천만이, 즉 십자가 위에서 죽은 자가 살아있었던 것과 같은 삶만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역시 그와 같은 삶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에게는 불가결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기독교는 어느 세상에서나 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신과 영혼불멸과 부활과 천당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살아 생전에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기독교인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밖혀 죽었다. 그리고 복음도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 순간 이래로 복음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은 벌써 그가 몸소 생활한 바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것이야말로 나쁜 소식, 즉 복음(福音)이 아니라 화음(禍音)이었다


예수의 이런 복음을 화음으로 바꾼 장본인은 바울이다.
바울은 증오의 화신이요 환각의 천재다. 
예수는 신과 인간의 간격을 제거하고 신인 합일의 내면적 생을 자신의 복음으로서 최후까지 실천하였는데, 바울은 십자가 위의 희생이란 관념을 삽입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간격을 넓히고 그 중간에다가 원죄, 심판, 부활 그리고 신앙에 의한 구원 등등의 여러가지 환상을 개입시켰다. 
이리하여 바울은 생의 의미를 사후로, 피안으로, 배후세계로 옮겨 놓았다. 예수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현실의 내면적 생의 긍정 대신에, 피안을 신앙하는 자학의 체계가 등장한다. 생의 중심이 생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안의 무 속에 놓이게 된다. 
바로 그 때문에 의하면 바울은 "최초의 기독교도", 혹은 "기독교의 발명자"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발명품은 거의 2000년이 지나 한국땅에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초의 발명자인 바울도 상상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왜곡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이 아닌 나쁜소식(화음)을 전달하고 있는 무수한 발명가들이 이 땅에서 그들의 발명품을 예수라는 이름을 사칭하여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땅에 진짜 기독교도는 단 한명도 없다.
그는 이미 2000여년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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