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당연히)개인적으로는 꽤나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른 분들이 별로다라고 했던 신파 부분도 당연히 저도 별로 였지만요.
보통 서브컬쳐물들의 단점은 현실과 접점이 거의 없는 소재 자체가 문제인데, 한국 또한 일본산 TV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세대들이 본격적인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한 점 그리고 국산 서브 컬쳐의 양과 질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거부감 자체는 대체적으로 낮아 졌지만 서브 컬쳐 특유의 향을 꺼리는 사람들 또한 많다는 것이죠.
그럼 서브 컬쳐의 향이란 뭘까요? 바로 세계관 그 자체죠.
서브 컬쳐는 말 그대로 특정 소수 매니아들만의 전유물로써 매우 좁은 세계관을 소수와 공유한다는 점이죠. 좀비물 또한 서브 컬쳐 문화의 한 갈래죠.
하지만 영화계의 갓파더 헐리우드가 심심하면 우려 먹는 소재가 뭐다? 고렇췌 좀비물이죠.
사실 좀비물은 서브 컬쳐라 하기 민망할 만큼 어지간한 클리셰가 헐리우드에 의해 골격이 잡힌 장르물이고 일반 대중들에게조차 식상한 여름철 B급 호러 무비 정도로 취급 당할 정도로 꽤나 친숙한 장르죠.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서브 컬쳐라는 소리는 다른 말로 하면 소재로써는 사골을 너무 우려먹어 뼈까지 삭았음에도 국물에 물을 타서라도 우려 먹겠다는 소리죠.
해서 과거의 좀비물의 가장 큰 속성이 공포였다면 근래 들어서 좀비물의 가장 큰 속성은 공포 영화가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죠.
부산행의 경우는 한국서 처음 만들어지는 블록버스터급 좀비물 주제에 공포 영화가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클리셰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죠.
기실 주연들의 뜬금 없는 행동들 과잉 행동들은 좀비를 빼고 긴급 재난 상황을 대입하면 사실 그렇게까지 뜬금 없지는 않은 점이죠.(주연 배우들 연기보다 작중에서 캬아아 그르륵 거리는 좀비들 연기가 더 낫다는게 함정이지만...)
그럼에도 진짜 뜬금 없는 할매분(분장도 너무 엉성)은 해도 너무 했다는 점이지만요.
일단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건 좀비화 되는 시간과 뜬금 없는 악역의 천리마 간부인데...
부산행은 좀비물이라는 장르물이지만 실제로는 좀비로 인해 세상이 망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죠. 공포 영화가 아니죠. 좀비라는 소재를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치환하면 현실 세계에서 개개인의 체력에 따라 병의 발현 속도나 경우에 따라 이겨 내는 경우도 있죠. 좀비화 되는 시간의 편차를 주연들에게 우세한 설정을 한 다 하더라도 사실 딱히 크게 무리 없는 설정이기는 하죠.
다만 이는 좀비라는 극단적인 소재 차용으로 인한 서브 컬쳐계 특유의 세계관이 충분히 설명 되지 않은 상황이고 영화의 런닝 타이밍을 고려한 누락을 생각해 보자면 감독의 입장도 관객의 입장도 둘 다 수용할 만하다는 것이죠.
천리마 발암 간부의 경우도 그렇죠. 영화 내도록 지독하게 본인의 이득만을 취하고 결국에는 주인공까지 잡아 먹는 악역인데 별별 사람 다 죽어 나자빠지는 판국에 끝까지 살아 남는다는 건 사실 시나리오적인 '배려'적인 면에서 감독을 욕 할 순 있어도 인물관 자체는 매우 흔하죠.
한 번 더 얘기하는데 부산행은 좀비가 등장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죠. 좀비로 인한 재난 상황 특히 인구 밀집 지역에서의 느닷 없는 출현은 초대규모급의 보균자 내지 감염자를 만들어 내기 딱 좋은 상황이고 보균자가 미쳐 날뛰어서 공격까지 하는 심각한 패닉 상황에서 살아 남는다는 건 머리가 아니라 오로지 운빨외에는 아무것도 없죠.
평범한 사람에게 이러한 재앙 규모의 패닉 상황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문명인으로서 입었던 옷따위 다 훌훌 벗어 던지고 몽둥이만 쥐어 진다면 후우율륭한 우가우가 원시인 하나 나오는거죠.
천리마 고속의 발암 간부도 딱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죠. 마요미랑 공유가 좀비 객차 뚫고 승객들 머무는 객차까지 도착했을 때 감염 되었을지도 모른다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건 사실 그 간부야말로 매우 정확하게 현실적인 캐릭이라 그런거죠.
오히려 모든이가 공포로 뇌내 뉴런활동이 빙하기에 들어 갔음에도 발현 시간에 따라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냈다는 시점에서 꽤나 냉철하고 이지적이라고 칭찬을 할 수가 있죠. 물론 실제 이런 상황이 벌어 지게 되면 리더감으로서도 구성원으로서도 가장 최악이라 제일 먼저 머리통 깨서 버려야 하지만요.(이 부분에 대해서는 밑에서 좀 더 설명이 올라가요.)
급작스러운 재앙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개연성따위는 없고 내러티브만 남죠.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의 인물 구성이나 극의 흐름은 공유가 자살하는 신파극까지는 두 할머니의 억지 설정을 빼면 크게 거슬리는 점은 없었죠.
감독 성향상 질금질금 새어나오는 사회 고발이나 극의 흐름을 제외하고 연출을 보자면 이거다 싶을 정도로 부산행의 완성도가 꽤나 높다는 거죠.
가장 압권은 역시나 마요미랑 공유랑 좀비 객차 뚫고 지나가는 씬인데 플라스틱 테이프랑 야구 방망이 하나만 들고 물리면 끝장 나는 좀비밭 뚫는 건 진짜 어지간한 좀비물에서는 구경도 못 해 본 장면이라 긴박감이 철철 넘쳐 흐르는데...
짧아요. 올드보이 망치씬만큼은 안되지만 좀비밭 뚫는 그 연출은 좀비에게 쫓겨 다니던 인간들이 맨몸으로 뚫는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까지 나오는데 짧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속편까지 나왔음 싶을 정도로 처음 나온 좀비 아포칼립스물치고는 굉장히 잘 나왔어요. 참신하지 못하다는 어느 기자 양반도 있는데 좀비 아포칼립스물은 사실 찌질한 천리마 고속 발암 간부 양반 뒤지는 거나 죽창에 너도 한방 나도 한방 싸그리 다 망하자는 재미로 보는 건데 참신함은 무슨...
아무튼지간에 국산 영화로 세상 망할 때 이렇게 망한다를 구경하고픈 분들에게는 별점 10개 만점에 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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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영화 감상과는 별개로 좀비 사태가 터졌을 때의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좀비물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재난물의 공통 된 클리셰로 선인부터 죽어 나자빠진다는 법칙이 있죠. 제가 부산행을 이토록 높게 평가하는 이유또한 제일 처음 좀비화 된 사람이 다름 아닌 객차 승무원이었기 때문이죠.(아가씨 참하더군요. 좀비 된게 아까울 정도로요.)
사람들은 좀비가 현실에 없다는 걸 잘알고 있어요. 극 초반 심은경이 좀비에 물린채 탑승하고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을 때 승무원이 제일 먼저 와서 상황을 보고 할 때 여기 좀비가 있어요가 아니라 사람이 쓰러졌어요 라고 하는 건 부산행의 세계관이 좀비만 차입된 현실이라는 반증이죠.
이후 승무원이 좀비로 다시 일어 나서 사람을 물때까지는 하더라도 도망치는 사람 반 구경하는 사람 반이죠. 그 때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된 사람들은 왠 또라이여 라는 반응인데 심지어 그 천리마 고속 발암간부조차도 끝까지 좀비라는 말 대신 미친것들이라고만 했죠.
아무튼지간에 만약 좀비 사태가 벌어 진다면 비척 거리거나 좀비=사람이 있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근처로 가 도움을 주려 할겁니다. 만약 그 사람이 좀비임을 알더라도 이 사태가 끝까지 갈지 안 갈지 그 누구도 확신을 못하니 가장 먼저 인정을 버리더라도 법이라는 구속구에서 도망칠 수가 없죠.
결국 좀비 사태의 초반 확산은 제일 먼저 인정에 얽매이는 사람들을 다 잡아 먹고 두 번째로 법에 얽매이는 사람들을 잡아 먹는다는 거죠. 고로 매우 높은 확률로 좀비 사태의 초반에 살아 남는 사람은 옆 사람을 거리낌 없이 좀비에게 미끼로 투척해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천리마 고속 발암 간부 같은 인간들천하의개ssangnom만 살아 남는 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