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다음카페=하드론님)
박형사는 백사가 준 휴대폰으로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했다.
얼마 후 사고현장에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도착하였다.
시신을 수습하는 그들의 표정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고 수습을 하러 나온 경찰들이 박형사를 알아보고 우리에게 얼굴과 손을 닦을 수건을 건넸다.
한참 얼굴을 문지르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가지 모진 일을 겪은게 아니구만...얼굴들이 많이 상했어."
자신을 법사라고 불러달라던 무당이었다.
"아니...형님! 여긴 어떻게 알고?"
"너, 몇 시간동안 실종되었다며?
니네 서에서 나한테까지 전화질이더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서에 들렀다가 여기 현장에 있다길래 와 봤어.."
무당은 박형사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어이쿠..이 젊은 친구는 아예 순사가 되셨나 보네."
나는 대답을 거부한 채 시선을 돌렸다.
"형님..혹시 조금 전의 사고 난 시체 봤어요?"
"그래..."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하긴?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몸을 떠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붙들려 다닌거지.
한 맺힌 원혼이 그를 붙잡아두고 있었겠지...
이제 그 원한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 같군.
자신의 몸이 썩어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았을거야."
"우와 완전히 좀비네요. 좀비...."
그제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그 때 멀리서 경광등을 밝히고 형사기동대 차량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포크레인 한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건 뭡니까? 형사님."
"아까 백사가 그랬잖아. 정화조가 너무 얕다고...
그래서 요청했어."
"그럼, 박태수란 사람이 김나연이를 발견한 자리 아래에 묻혀 있단 말입니까?"
"백사 말이 맞다면 그럴거야..."
현장에 도착한 포크레인은 정화조 주변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화조의 밑동이 드러나자 포크레인의 거대한 삽이 정화조를 힘껏 밀어 넘어뜨렸다.
엄청난 양의 토사와 함께 정화조를 채우고 있던 이물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살점은 거의 붙어있지 않고 앙상하게 남은 뼈들이 서로 분리된채 쏟아져 나왔다.
몇 개의 뼈들을 감싸고 있는 누더기같은 옷만이 그것이 사람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저기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세상에....."
무당이 갑자기 긴 탄식을 내뱉았다.
"왜요? 아저씨?"
"네가 자네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기운이 저 시체에서 쏟아져 나오는구만."
무당은 두 손을 합장한 채 염불같은 주문을 외우며 그의 명복을 기렸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뼈들이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단 말입니까?"
박형사는 옆의 경찰에게 담배 하나를 얻은 후 조용히 그것을 입에 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연신 담배를 빨고 있는 박형사의 모습은 사건을 해결한 후의 형사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사건에 직면하여 고민하는 형사의 모습이었다.
"무슨 고민거리 있으세요?"
나의 물음에 박형사는 긴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산 속에 묻었다는 김나연이 시체는 어떻게 된거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포크레인이 임무를 마치자 철수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포크레인이 물러난 그 자리에는 구급대원들이 채워졌다.
그 때 박형사가 굉음을 내며 떠나려는 포크레인을 잡아세웠다.
그리고 큰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구청에서 나왔죠?"
40대로 보이는 포크레인 기사는 박형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지 시동을 끄고 물었다.
"왜요?"
"아저씨 이 정화조 공사 한 적 있어요?"
"예전에 이거 만들 때 했었소."
"이 정화조 용도가 뭐예요?"
"예전에 주변에 길 건너편에 작은 상가가 있어서 폐수정화로 사용되었던건데, 지금은 폐쇄되어서 그냥 방치되어있는거요.
정화조와 연결된 하수로는 그냥 빗물 수로로 사용되고 있소."
"그 수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아요?"
"잘은 모르는데....아마..."
기사는 300미터 이상 떨어진 길 건너편 야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산의 토사유출을 막기 위해서 작은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거기서 모아진 물이 이 곳으로 유입될거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박형사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젠장....떠내려온거군....
큰 비 때문에 토사가 유출되면서 수로로 들어간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사가 말한 가까운 산이란 눈 앞에 보이는 그 곳 밖에 없었다.
지름이 1미터 정도 밖에 안돼 보이는 수로를 통해 무려 300미터 이상을 떠내려오다니......
김나연의 시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저 수로 속에서 보냈던 것일까?
게다가 그 수로는 윗부분이 살짝 노출된 채 인근 아파트에서 만든 작은 체육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밤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물에 불은 그 시체를 밑에 두고 여가를 즐겼다는 것 아닌가?
생각만 해도 스름이 끼쳤다.
"그런데 소름끼치는 저 시체는 뭐요?"
포크레인 기사가 박형사에게 물었다.
"수백미터 떨어져 잠들어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여기까지 불러낸 남자랍니다."
박형사의 엉뚱한 대답에 기사는 잠시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인가?
안도감과 함게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두통까지 밀려와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 때 시신 수습을 하고 있는 구급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넘어진 정화조 뒤쪽으로 깊은 어둠을 간직하고 있는 수로가 보였다.
왠지 모를 이유로 나는 그곳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내 발앞으로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
잠시 후 그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하얀 형상...
뱀처럼 꿈틀대며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스르르르륵....스르르르륵....."
허리까지 늘어진 검은 머리,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그 하얀 얼굴.....
팔다리를 모으고, 엎드린 자세로 머리만 처든 채 김나연이 헤엄쳐오고 있었다.
"아~~~~~~악!!!"
비명소리와 함게 나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성태야!! 정신 차려!!"
아버지였다.
꿈이었다.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나는 와락 아버지를 끌어 안았다.
뜬금없는 나의 행동에도 아버지는 내 몸을 밀어내지 않고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그리웠던 아버지의 말투가 이어졌다.
"개놈의 자식..."
나는 한동안 아버지를 꼭 끌어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 또한 내 어깨 너머에서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린 나는 아버지에게 지금 이곳에 있게 된 경위를 물었다.
"이놈아..어제 밤 사건 현장에서 니가 갑자기 쓰러졌댄다.
너 도대체 뭔 일을 저질렀길래 사람 죽은 곳만 따라다니는거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얘기 하기에는 너무나도 길었고,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믿어줄리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깨어나셨네요. 김성태씨..."
"네.."
"퇴원하셔도 되구요. 그리고 아까 박정우 형사라는 분이 김성태씨 잠들어 계실 때 오셨다가 메모만 남기고 가셨어요."
나는 간호사가 내민 쪽지를 받아들어 펼쳐 보았다.
-퇴원하면 잠깐 경찰서에 들렀다 가라-
나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경찰서로 향했다.
몇 시간을 병원에서 잠들어 있었던건지 벌써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어있었다.
이번 사건이 초대형 사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경찰서 주변은 몰려든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의경에게 신분을 밝혔다.
"박정우 형사님께 김성태가 왔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의경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나를 경찰서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만신창이가 된 서로 얼굴을 마주하자 우리는 잠시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인사를 나눴다.
박형사는 취조실 같은 밀폐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거기에는 무당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젊은 친구."
무당이 손을 들어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나는 수그러드는 말투로 화답했다.
"네.."
박형사는 노트북이 놓여진 취조실 탁자 앞에 앉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거 니꺼지? 증거품 속에 들어있던건데.."
내 휴대폰이었다.
그는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주면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바탕화면에 이쁜 여자 사진이나 깔아놓지, 니얼굴을 박아놨냐?"
"훗...제가 떨군 휴대폰 보고 반해서 찾아온 여자도 있어요."
"대단하군..."
"여기 들어있는 증거 동영상 봤어요?"
"이미 다 다운 받아놨어."
이리저리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던 박형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성태야....너 이것 좀 볼래?"
박형사가 무슨 동영상같은 것을 하나 재생시키더니 노트북 화면을 나에게 갖다 대었다.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CCTV에 잡힌 화면이야.
이번 사건 때문에 조사하다가 형사계에서 입수한 건데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이지만 여기에 니가 사고 난 장면이 찍혀있어."
나를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며 멀리 보이는 대로를 주시했다.
"새벽이라 차가 거의 없어. 그런데 지금 잘 봐봐."
박형사가 갑자기 화면을 정지시켰다.
"이거 니차 아냐? 테두리에 네온등하고, 반사등 붙였잖아."
난 내눈을 의심해야 했다.
내가 사고 난 지점의 반대 차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박형사는 이어서 재생버튼을 눌렀다.
20여초가 지났을까?
반대편 차선에 다시 내 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희한한 광경에 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동영상이 끝나자 박형사는 노트북을 접었다.
"술이나 한 잔하러 갈래?"
"사건조사 하셔야 할 분이 뭔 술이요?"
"서에서도 오늘 쉬라고 했다. 다른 형사들이 조사할거야."
옆에 서 있던 무당이 거들었다.
"동동주에 파전 한번 땡길까? 박형사?"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선 그간의 사건을 안주삼아 우리는 신나게 술을 들이켰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술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왜 무당이 되었어요? 딸꾹"
건하게 취해서 혀꼬이는 나의 발음에 무당이 대답했다.
"법사라고 부르라니까 쟈식아!!"
"그러니까...법사님... 왜 무당이 되었냐구요? 꺽..."
"허허...그래도 무당이라네. 몹쓸 놈..
고등학교 때부터 이유없이 몸이 아파서 신내림 받은거야."
"에이..맞네..무당..."
"야 임마.... 난 무당처럼 굿하고, 작두타는 게 아니라 염불외는 법사라구."
"그럼 염불외는 무당이네....딸꾹.."
"허허허...내가 포기했다. 그나저나 니가 내 제자로 들어오면 뭔가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휴....아저씨..전 이젠 귀신이라면 치가 떨립니다. 말도 꺼내지 마세요."
"썩을 놈...."
무당 아저씨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동동주를 한 사발 들이켰다.
박형사는 술이 센 것 같았다.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바른 자세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성태, 너는 하는 일이 뭐냐? 그냥 노는 것 같던데..."
박형사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을 한 번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여자나 밝히고, 술이나 밝히고...몹쓸 짓도 많이 하고...그렇게 사는 놈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늙어 죽을 때까지?"
"저도 이젠 이 생활 청산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뵐 면목도 없구요..."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박형사는 조용히 술 한잔을 들이켰다.
"이봐...젊은 친구..남자가 살면서 조심해야 될 세 가지가 있어."
무당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뭐요?"
"혀끝, 손끝, 고추끝..."
"뭔 말이예요?"
"혀끝은 술조심하라는 소리고, 손끝은 도박조심하라는 소리고, 고추끝은 뭔지 알지?"
무당은 능글스런 웃음을 지으며 나의 답변을 기다렸다.
나는 빠딱한 자세로 반쯤 감긴 눈을 치켜들며 답했다.
"포경수술 조심하라구요?"
"에라이...썩을 놈."
무당은 능글스런 웃음을 지우고 다시 한번 술을 들이켰다.
나의 대답에 박형사가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이 때 포장마차 안에 있던 TV에서 귀에 익은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의 첫 뉴스입니다.
ㅇㅇㅇ동 스탠드바와 관련된 소식이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회 상류층이 연루된 최악의 섹스스캔들 사건으로 전국이 시끄럽습니다.
대기업 임원, 병원장, 심지어 시의원까지 연루되어 있는 이번 스캔들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경찰과 검찰은 ㅇㅇ병원 원장 최모씨를 살인교사 혐의와 마약류 관리법 위반혐의로 긴급체포하고 기소할 방침입니다.
또한 스탠드바 대표이사와 운영에 가담한 조직원들에 대해서는 청부살인과 마약류 유통에 관한 혐의를 조사중입니다.
한편 서울시는 ㅇㅇ동 스탠드바의 사업자등록을 말소시키고, 대표이사인 이모씨를 탈세혐의로 경찰에 추가로 고발할 예정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오늘 오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합동 수사반을 구성하고....."
"우리가 뭔가 하긴 했네요."
"그래. 엄청난 일을 한거야."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박형사와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술자리를 끝내고 길거리로 나섰다.
취기가 한참 올라온 나는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로 비틀거렸다.
박형사는 내 손을 한번 굳게 쥐더니 작별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고, 다시는 경찰서에서 만나는 일 없길 바란다."
"형사님도 잘 지내세요. 딸꾹.....딸내미 이쁘게 키우시구요...
그리고 나 같은 남자친구 만나지 않기를 바래요.."
"허허.....그래야지"
내 몸은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정신만은 멀쩡했다.
"이봐, 젊은 친구. 다시 한번 생각해 줄 수 없나? 나하고 일하는거..."
무당의 집요함은 여전했다.
"무당 아저씨....아니 법사니....이임!!! 나중에 귀신 나타나면 찾아갈테니 부적 하나 잘 써주세요.
그거 효과 있던데요. 딸꾹...."
"에라이...썩을 놈. 잘 가라 이 놈아!!"
나는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마치고 차를 기다렸다.
오늘은 이 몸으로 버스를 탔다가는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오는 것이 보였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뒷좌석에 기댄 나는 몸을 최대한 눕혔다.
"어디로 모실까요?"
"ㅇㅇ동, 오피스텔이요...."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거다. 오늘은 아버지 집에서 자고 싶었다.
"아저씨....거기 말고, ㅇㅇ동 ㅇㅇ아파트로 가주세요."
"네. 안전하게 모십죠..."
지금 이 순간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아직도 내가 정신은 멀쩡하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너무 익숙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아저씨...나 알죠?"
룸미러를 통해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 하였으나 그가 보이지 않았다.
"고맙소. 젊은이....오늘 요금 뿐만 아니라 그 전에 빚진 27000원도 받지 않으리다."
나는 순간 가슴이 미어져 왔다.
택시 안에 안개같은 것이 자욱했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노트북에서 보았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 속에서 사고 후 나는 택시를 타지 않았다.
그냥 내 발로 대로를 건너 수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내가 타고 갔던 이 택시는 가짜였던 것이다.
온 몸에 거부감이 몰려올만도 했지만 나는 이내 편안한 감정을 되찾았다.
그의 의미심장한 감사의 표시 때문이었다.
나는 최대한 편안한 감정을 유지하고, 너무나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나연이 아버지죠?"
"허허...알아차렸구랴...정말로 고맙네. 젊은이....자네 덕에 오늘이 나의 마지막 운행이 되겠구려..."
"아저씨....저 지금 걷고 있는거잖아요. 귀신차에 타서......안 그래요?"
"걱정 말게 젊은이. 자네가 다치지 않도록 잘 데려다 주겠네. 그냥 푹 쉬게"
지금 이 순간 나는 택시를 타고 있지만, 어쩌면 내가 위험하게 대로의 한 복판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나는 너무나도 편안하고, 그 때처럼 졸음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아저씨...딸내미 얘기나 해 줘요..."
"우리 나연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너무 이쁜 딸이었다오..
어려서 엄마가 사고로 죽고, 나와 같이 살았는데 정말 힘들었지만 예쁘게 잘 커주었다네...
어려서부터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깨도 주물러 주고, 재롱도 떨고, 심지어 밥도 차려주고...."
기사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연신 딸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편안하게 자세를 취한 나는 기사의 얘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박형사에게 하지 않은 한 가지 이야기 때문이었다.
동영상에는 사고 직후 나이트에서 꼬신 여자가 내리는 모습이 없었다.
그런데 그 여자 얼굴이 기억이 안난다.
그냥 나이트에서 꼬신 여자라는 기억 뿐......
내가 그 날 나이트에 가기라도 한 걸까?
원래 난 나이트에서 그렇게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지 않는데?
그리고 내가 왜 반대편 차선을 달리다가 돌아온 거지?
이 때 문자음이 울렸다.
-오빠, 고마워 ^^-
"후~~~"
긴 한숨이 쏟아졌다.
문자가 찍힌 액정화면을 수십 차례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따님 번호가 010-7649-xxxx번이예요?"
나의 물음에 딸 자랑에 여념이 없던 기사가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려 답했다.
"우리 딸이 문자도 참 애교스럽게 보낸다오...."
씨익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 섞인 너털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영혼의 택시는 신나게 도심 한가운데를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