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번에 올린 “ ‘귀신은 없다' 라는 역술인의 이야기” 는
그리 재미있는 글은 아닌데 어쨌든 베스트에 턱걸이를 하는 바람에….-_-ㅋ
다른 내용도 한번 올려봅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를 해주신 분은 전직 교수님으로,
현재도 모대학의 교수님 댁을 베이스로 하시고 여러곳을 떠돌아 다니시며
‘공부’ 를 하시는 분입니다. 동양철학을 전문으로 하시고 본인 스스로 ‘역술인’ 이라 하시니,
저도 이 선생님을 ‘역술인’ 이라고 설명드립니다.
또…여러가지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사이비 종교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고
또 너무 재미가 없을수도 있으니…지나치게 철학적인 이야기는 제외하겠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쭉 차례대로 이어지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귀신’ ‘카르마’ ‘환생’ ‘천당지옥’ 등의
부분적인 주제들을 쓰려다 보니 이야기가 좀 꼬일수가 있어 걱정이네요…-_-…..
재미로 봐주세요. (절대 어떤 종교와도 관련성은 없습니다. 재미로 봐주세요)
>전생과 환생은 무엇인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생과 환생은 존재한다.
우리는 여러가지 무수한 ‘입자’ 들이 모여져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입자들 하나하나는 무수한 그 숫자만큼 무수한 ‘것’ 들로부터 왔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 제각각이고 한사람의 성격이라는 것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쉽게 말하자면, ‘전생’ 이라는 것은, ‘현재’ 의 우리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 들로부터온 수많은 입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 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입자중의 하나가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입자라고하자.
어느날 내가 민속박물관을 보러갔는데 거기서 조선시대의 유물을 보고 마치 내가 이전에 사용했던 것같은,
마치 이전에 내가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이걸 ‘기시감’ 이라고 한다. 이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나’ 를 구성하는 ‘입자’ 들중에 하나가 '가지고 있던' 과거의 ‘기억’ 을 떠올리는 것이다.
‘환생’ 이라는 것도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내가 죽을 때 나를 구성하던 수많은 ‘입자’ 들이 흩어져 버린다.
그리고 이 입자들은 다른 생명체를 구성하거나 혹은 비생명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또 다른 나’ 를 구성하게 된 ‘나’ 의 입자들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면,
그것은 어떤 ‘또 다른 나’ 에겐 ‘환생’ 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전생과 환생은 결코 다른게 아니다. 둘은 한가지이다.’
그러니 이를 가리켜 ‘나의 전생이 다른 누군가에겐 환생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젊은 여자가 암에 걸려 죽을때가 되었는데 이 여자는 평생동안 남자친구를 사귀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죽을때까지 자신의 이상형을 스케치 하다 죽었는데, 여자의 부모가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딸이 스케치했던 남자와 ‘똑같은’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둘은 서로 만난적도 없었고 거리상으로도 아주 먼거리에 살았다.
살아생전에 둘이서 우연히 스쳐 지나갔을 기회도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자도 그 여자의 사진을 보고 낯설지 않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이런거다. 그 여자와 그 남자는 자신들을 구성하는 수많은 ‘입자’ 중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은연중에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했고 낯설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전생이 다른 누군가에겐 환생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나의 환생이 다른 누군가에겐 전생이 된다’ 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독립된 존재’ 가 아니다.
>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는가?
- 흔히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는 것은, 편가르고 무리를 지어야 허무함을 느끼지 않는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천국과 지옥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살고있는 이곳이 천국일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되돌아 가지 않으며, 또 어딘가에 머물지도 않고 계속해서 반복해 앞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천국이나 지옥이라는 곳이 있어 우리중 일부는 천국과 지옥으로 가고 나머지 일부가 세상에 남아 환생을 하고,
또 그 중 일부가 과거로 환생하고 미래로 환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반복해서
‘서로 섞여 살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체만 ‘사는’ 것이 아니고, ‘비생명체’ 도 ‘살아’ 간다.
우리는 ‘천국’ 이나 ‘지옥’ 그리고 ‘세상’ , ‘생명체’ ‘비생명체’ 라는 것으로 나뉘어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섞여’ 살아간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우리모두의 ‘우리’ 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집과 방바닥과 방석은 ‘나의 일부’ 이자 ‘우리의 일부’ 이다.
나와 당신이 ‘다른 우리’ 가 아니다. 나와 당신은 ‘그대로의 우리’ 이다. 이건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다.
> ‘섞여서 살아간다’ 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없다라는 것은 우리에게 ‘영혼’ 이라는 것이 없다는 말인가?
- 사람은 ‘기’ 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입자’ 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이 ‘입자’ 는 하나의 ‘정체성’ 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아이들 장난감중에 ‘레고’ 라는 장난감이 있다. 이 레고는 하나하나가 파편이고 조각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잘 모아서 조립하면 하나의 ‘조형물’ 이 만들어 진다. 사람이라는것이 이렇다. 사실 모든 생명체, 비생명체가 이렇다.
무수한 ‘입자’ 들이 뭉쳐져 하나의 ‘것’ 을 만들고 이 ‘것’ 이 사라질 때 ‘입자’ 들은 다시 흩어져서 다시 모이며 다른 ‘것’ 을 만들어 낸다.
바닷가의 모래를 생각하면 쉽다. 모래는 원래는 바위였다. 바위가 시간을 거쳐 모래가 되는 것이다.
이 모래는 다시 흩어져 흙이 되고 먼지가 되고 그 흙과 먼지가 식물을 길러내고 먼지를 사람이 마셔서 사람이란 ‘것’ 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며 ‘반복’ 된다. ‘하얀전쟁’ 이라는 책에 이 이야기가 아주 쉽게 잘 풀어져 써있다.
거길 보면 주인공이 키우던 금붕어가 죽는데 주인공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내가 금붕어를 우리집 뒷마당에 묻어주면 뒷마당의 장미나무가 금붕어의 사체를 영양분으로 삼아 성장을 하게 되고,
그럼 내가 아침마다 장미꽃의 향기를 맡을때면 나는 금붕어의 일부를 내안으로 흡수하게 된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생객해보면, 내가 내쉬는 공기는 다름 사람이 들이 마쉬고, 내가 싸는 똥은 여러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의 몸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 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 몸뚱아리가 죽으면, 그것을 화장을 하든 땅에 묻든 내팽겨쳐 바람속에 썩게 만들든,
그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또 세상의 다른 ‘것’ 들에게 섞여 들어간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영혼이라는 것도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영혼’ 이라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 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섞여서’ 살아가고 죽어서 흩어져 다른 ‘것’ 들을 이루게 된다.
그러니 ‘하나의 독립된 존재’ 로서의 ‘영혼’ 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혼이 존재하지 않으니 영혼이 간다는 천국이나 지옥도 존재할 수 없다.
>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너무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라. 우리는 '혼자' 가 아니다. 사실 '우리' 라는 말안에는,
'우리' 를 구성하는 수많은 '독립된 나' 라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는 절대 서로 '독립된 존재' 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 라는 것은 말그대로 '우리' 이다.
하나의 존재와 다를바가 없다.
그러니 내가 '남' 을 해치지 않고 '남' 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건 바로 '내' 가 '나' 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너희들이 너희들중 가장 낮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우리가 우리 서로에게 한 일은 바로 '나' 에게 한일이 된다.
'인과의 법칙' 중 이것은 아주 중요한 법칙이다.
'내' 가 '남' 에게 한 좋은 일은 '나' 에게도 좋은 일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내' 가 '나' 에게 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외로울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