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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그곳의 기묘한 이야기 - 11 # 약속
게시물ID : panic_547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OYAL
추천 : 6
조회수 : 9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4 21:34:28
출처 - 웃대(하드론)님 -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켁켁...이봐...거기..이것 좀 풀어줘...켁켁..."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거의 죽어가는 모습으로 그는 다급하게 한번 더 나를 불렀다.




"켁켁...어제 밥 먹고 있을 때..켁켁 나 봤잖아...."




그의 눈알은 거의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 무당 여자의 말과 지금 쓰러져가는 저 귀신병사에 대한 두려움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목에 감긴 올가미를 풀어냈다.





"콜록! 콜록....아~~ 죽을뻔 했네. 어떤 자식이 여기다가 올가미를 쳐논거야?"


"......."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내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죽은 놈이 뭘 또 죽나?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음에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목주변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찾았다.




"내 밥...내 밥 어딨지?"




주변을 더듬거리던 그 병사는 이내 자신의 반합통을 찾아내고는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허겁지겁 밥인지 죽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입에 우겨넣었다.




"오랜만에 사람 보네."


"네?"




그는 허기가 가시지 않는지 바쁜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이봐요..."




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서는 정체모를 음식물의 국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그러슈?"


"...나..난 사람이예요."


"뭐요? 누가 사람 아니랬소?"




그러더니 그는 다시 반합통 속의 음식물을 퍼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 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그 자신의 정체를 말해주고 싶었다.




"다..당신은.."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부대원 들이오."




그가 고개를 한 번 까딱이며 내 뒤에 시선을 맞추었다.


나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십수명의 병사들이 실루엣을 그리며 서 있었다.





"헉!!"




나는 순간 다리 근육에 힘이 풀려 이내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우린 길을 잃었어."




숟가락질을 멈춘 병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답답한지 철모를 벗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드러난 그의 머리 측면에 구멍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린 것의 정체가 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구멍 속에서 쿨럭대듯이 피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얼마 동안 헤매고 있었는지 몰라. 



한 참 단잠에 빠져 있었는데 그 뒤론 기억이 안나......그냥 어둠만 있는거야.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우릴 깨워줬는데, 깨어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뭐가 이상했어."




그는 간지러운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들이 없어졌어. 우리들만 빼 놓고 말야. 아무리 돌아다녀도...우리 밖에 없는거야. 



우리가 상대하던 적들은 물론 주변에 민간인들도 없고, 들어오는 신병도 없고, 제대하는 사람도 없고, 휴가가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짐승들도 없었어. 새소리도 곤충소리도 고양이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두서너번의 숟가락질을 하였다.



"그리고...해가 뜨지 않아."


"예...예?"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지 않으면 그대로 기절할 것만 같았다.




"해도 뜨지 않고 달도 뜨지 않아. 그냥 어둠만 있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볼 수도 있고, 주변을 살필 수도 있었지.



단지 시간의 흐름만 느껴지지가 않았어. 시간이 흘러가는 건지 멈춰있는 건지 도대체 알수가 없더라니까. 



그제가 어제같고, 어제가 그제같고, 오늘 한 일이 어제 했던 일 같고, 어제 했던 일들이 그제 했던 일 같고....



뒤죽박죽이야. 정리가 안돼."




그는 멍하니 어딘가를 주시하더니 기억 속의 뭔가를 계속 되뇌는 것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거야. 어디론가 계속 전진하면 계속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 있는거야.



앞으로 가도 제자리, 뒤로 가도 제자리, 몇날 며칠을 걸어가도 제자리....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되고 있는 느낌...알아?



마치 우린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아. 이 곳을 벗어날 수가 없어."




나는 십수명의 병사들이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어느새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누군가가 눈에 보여서 그에게 다가가면 그는 우리를 몰라보는 것 같았어.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사람을 좇아 다녀봤는데도 여전히 못알아 보더라구. 



그런데 약간의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우리를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척 피해다니는 것 같았어.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데 이제서야 나를 알아보는 자네를 만난거라구.



어제도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갔지?"




"....예"


"자넨..어디서 온 거지?"


"예?"


"낯선 얼굴인데...."




나는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정작 내가 반드시 만나야 될 그들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많은 수의 병사들을 본 나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묘안 하나를 떠올렸다.


이 방법이 통할지 안통할지는 몰랐지만 이미 내 입은 말을 꺼내고 있었다.





"다...당..당신들이 이 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뭐? 뭐라구?"




나의 뜻하지 않은 제안에 그 병사와 함께 맞은 편에 있던 병사들이 놀란 듯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순간 내 주책맞은 입이 무슨 짓을 한건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떻게?"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병사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슨 부탁?"


"정한수와 김선호라는 사람을 찾아줘요."


"뭐?" 


"그 사람들을 찾아주면 당신들이 이 곳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가르쳐드릴게요."


"좋아...찾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일 이 시간쯤 제가 저기 있는 초소에 있을 겁니다. 거기로 데리고 오면 됩니다."


"뭐..그 정도야..오늘부터 다른 훈련거리가 생겼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이 곳에 있는게 확실한가?"


"확실해요. 당신들이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들 얼굴을 모르는데..."


"당신들처럼 군인이예요. 명찰을 보면 알 수 있을거예요."


"좋아 한번 찾아보지. 그럼 약속대로 우릴 여기서 벗어나게 해주는거지?"


"그...그렇다니까요."




대책도 없는 나의 약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걸까?


갑자기 나의 대답에 어둠속에 묻혀있던 병사들이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그들의 모습이 선명해지자 나는 곧 삭신이 저려오는 공포에 휩싸여야만 했다.


그 어둠 속의 실루엣이 나에게 미처 알려주지 못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병사는 한쪽 팔이 떨어져나가 없었고, 어떤 병사는 두 다리를 볼 수가 없었으며, 어떤 병사는 얼굴의 


절반이 으깨져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또 어떤 병사는 찢어진 뱃가죽 밖으로 쏟아진 내장을 매달고 있었으며, 어떤 병사는 아예 하반신은 보이지 

않은 채, 전선줄 같은 무언가를 길게 늘이고 있는 상반신만 공중에 띄워놓고 있었다.



누구 하나 몸이 성한 병사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극도로 혐오스럽고 구역질 나는 장면을 연출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들 중 얼굴의 반이 으깨져 사라져 버린 병사가 내 코 앞까지 다가오더니, 흙탕물에 젖은 손을 내 왼쪽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그 흉측한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낮고 느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일 거짓말이면....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자신의 한쪽면 치아들이 모두 밖에 드러나 있음에도 그의 발음은 굵고 명확했다.



그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입속의 치아들은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한 채 계속 자잘한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네..네...아..알겠습니다."




나는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위장의 내용물을 간신히 틀어막으며, 마른 침을 한 번 꿀꺽 삼겼다.


그는 나머지 한쪽면에 힘겹게 붙어있는 반쪽의 입술을 늘이며 음산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당의 경고도 무시한 채, 귀신과 대책없는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야!! 이창훈!!!"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고함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아~~ 이 새끼 진짜 못말리겠네."




선임하사였다.




"서..선임하사님이 여긴 어떻게..."


"여긴 어떻게? 야~~~ 이 미친놈아.. 근무는 안나가고 왜 짬밥통 옆에서 쳐자고 지랄이야!!"





선임하사의 말에 나는 잽싸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 많던 병사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내 품에는 올가미에 걸려 목에 상처를 입은 고양이 한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너 여기서 뒤집어져 자려고 근무 혼자 보내달라고 한거냐? 어쭈? 애완동물까지 만들어 두셨네." 


"며..몇 시입니까 선임하시님."


"몇시? 근무시간이 5분이나 지났어 자식아!!"


"5분이요? 5분 밖에 안지났단 말입니까?"


"5분 밖에? 너 군대에서 5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몰라서 그래? 내가 순찰 안 돌았으면 해뜰 때까지 잘 놈이었네."




나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이 으깨진 듯 정리가 되지 않았다.




"뭐해? 자식아!! 니가 보고 싶어하던 귀신들 기다릴거 아냐? 빨리 근무지로 안 뛰어?"


"예. 선임하사님!!"


나는 품에 안은 고양이를 내려놓고 허겁지겁 근무지를 향해서 뛰었다. 


나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그 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고참들의 질책을 먹은 나는 선임하사와 약속한 시나리오 대로 내 사수는 현재 선임하사와 같이 있다고 둘러댄 후 



또 다른 어떤 공포가 몰려올 지 모르는 혼자만의 근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귀신들을 만나기라도 한 걸까? 그냥 꿈꾼게 아닐까? 





나는 알 수없는 싸늘한 한기에 잠시 팔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왼쪽 어깨 위에 뭔가가 느껴졌다.


흙이었다.


아니...흙으로 그려진 사람 손자국...그리고 나의 뇌는 몇 분전 들었던 낮고 굵은 그 음성을 재생하고 있었다.




"만일 거짓말이면....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 나왔다.




"이런..시발..x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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