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말년에 연합훈련 기간이었습니다.
미군이 제가 복무하던 부대 연병장에
이런 저런 시설물을 설치 운용하다가 철수하면서
철수차량에서 기름이 새어나왔습니다.
3갤런이니까 11리터 정도?
오늘 복귀 명령이 하달됐는데
자기들 병력과 장비로는 오늘 안에 기름 제거가 힘들 것 같다면서
병력과 장비 지원요청을 하더라구요.
그 시간이 막 17시 반 정도? 일과가 종료돼서 밥먹으러 가야될 시점이었는데
제가 부대에 잔류하고 있던 유일한 통역병이어서
강제로 착출되고 제 분대원들도 덩달아 끌려가게되었습니다 ㅜㅜ
미안 분대원들
병력이야 열댓명 지원 갔는데
한국군이 기름 제거 장비랄게 있나요 그냥 삽이지 뭐
그래서 미군과 한국군 서른여명이 삽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년에 삽질이라니! 말년에 저녁도 못먹고 남의 부대 뒤치닥거리나 하고 있다니!
대조되는게 한국군은 이병~상병 밖에 없고 저만 병장/분대장
미군은 상사도 있고 중령도 다 삽 한자루씩 메고 땀 뻘뻘...
더 놀라운 점은 여군도 삽질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더라구요
한국여군이 삽질하는 것 보신 적 있습니까?...
게다가 삽질도 되게 잘해서 더 깜놀.
근데 사실 제가 받은 명령은 이거였거든요
'쟤들 니들만 나간다고 하면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대충 하다가 갈게 뻔하거든
근데 쟤들은 영관급 지휘관도 나와서 삽질하고 있는데
동맹국 장교가 나가서 뒷짐지고 있을 수도 없고
니들하고 같이 삽질 하는것도 좀 아니지 않냐? 일과도 끝났는데.
그니까 우리 연대장님이 이따 와서 확인할거라고 뻥치고...
대충 안보이게만 덮고 와. 니가 봐서 한시간 안에 철수하고 보고해. '
한시간 정도 모래 덜어내고 다시 새 모래 채우고 하다보니
어느 정도 기름은 제거해서 철수해도 될 것 같아서...
'중령. 당신이 책임자냐. 우리 부대장이 와서 봐야되는데 그분이 바쁘다.
내가 한국군 책임자인데 내가 판단하기엔 거의다 된 것 같고
우리는 저녁 마감시간도 끝나가고 저녁 근무 투입자도 있어서 철수를 해야될 것 같다.'고 하니까
중령이 '알았다. 우리도 조금만 더 마무리 하고 철수하겠다. 수고했다. 우리 MRE 줄테니 저녁으로 먹어봐라.'
라고 해서 그런줄 알고 분대원들하고 MRE 파티하면서 TV나 보고 있었죠.
...근데 이 사람들 그 뒤로 3시간을 더 그 삽질을 했더라고요.
금방 간 줄 알았는데...
저녁 점호 받고 있는데
철수한다고 병사들끼리 삽 들고 찾아왔더라구요.
'아직 안갔네, 일이 더 있었음?'
- 아니. 계속 기름 파냈지.
'??? 아까 세시간 전에도 다 마무리 된거 아닌가?'
- 모래에 기름 유출 되면 모래가 나중에 못쓰게 된다. 기름이 묻어있지 않더라도 다 파내야돼.
'헐... 우리는 대충 된건줄 알고 철수한거다. 너희도 금방 갈 줄 알았다. 너무 빨리 철수해서 미안하다.'
- 아니다. 너희 기지를 더럽혀서 우리가 미안하다.
'고생했다.'
- 내년에도 올거다. 내년에 보자.
'어.. 나는 내년엔 없지만 고맙다. 잘 가라.
- 아. 전역하겠군. 건강해라.
'건강해라.'
이러고 헤어졌는데
열심히 삽질하던 중령 지휘관과 여군 모습이
가끔 생각이 나네요
쓰다보니 너무 길게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