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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9)
게시물ID : military_278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16
조회수 : 149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8/01 22:08:17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흔히들 표현하는 대로 정신줄을 놓아버리니까 이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조차 모르겠네요. 학기 중에는 이렇게 한 번쯤 있어보고 싶다고 그렇게 염원했었는데, 막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대와 의자 사이만 왔다갔다하는 삶을 살게 되니 이건 또 이것대로 시간 지나는 것이 허무하고 금방이라도 마감이 닥칠것만 같은 불안감에도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이라는 게 자신이 살기 편하다고 느끼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야 하는데, 저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딱 이만큼 일하고, 딱 이만큼 쉬는 생활이 언젠가 저에게도 오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휴재를 공지할까 합니다. 물론, 제가 금전적 이득이 있어 의무적으로 연재하던 시리즈는 아니었지만, 많은 분들께서 읽어 주시고, 또 역시 많은 분들께서 기다려주셨던 연재이기에, 연재를 갑자기 중단하고 사라지는 것 보다는 역시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사유로 중단한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8.3일부터 내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쉽게도 여자친구와 둘이 가는 그런 여행은 아니지만, 내일로가 25살 이하의 젊은 청년들만을 위한 서비스인 것 같기에(사실 25살 안에 생길 것 같지 않아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네요. 그런고로, 8.3~8.10사이에는 연재를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최대한 즐겁고, 사고 없는 여행을 다녀와서, 조금 더 차분한 마음과 필체로 연재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말씀드리듯이, 전편까지의 링크를 댓글로 달아드리겠습니다. 혹시 전편들을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먼저 1~8편을 읽으시고 난 뒤 이 글을 읽어주시길 추천합니다. 이제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어, 전편을 읽지 않고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으실 수 있으니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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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현재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자, 당신의 업무는 당신의 팀원이 주어진 작업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그 결과물이 당신의 직속 상관에게 이상없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작업에 직접 끼어들어 진행하기에는, 당신은 상관에게의 결과물 전달, 백 방지, 당신의 팀에 필요한 각종 보장들에 관한 어필 등 이론적으로는 업무에 포함되지 않으나, 실무적으로 당신에게 해당된 어쩌면 가장 주요한 업무들이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 팀원은 당신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의심할 것이며, 상관은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 능력이 있는지 판단의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행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의 처세술 중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것은 무엇이겠는가.

위의 문제는, 아마 비단 군대의 이야기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봐.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여러분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챙기고, 편리를 보장받으면서 팀원들에게서 신뢰또한 살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완벽한 답은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직접 나서서, 작업진행상황을 숙지하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며, 작업이 제 시간에 끝날 수 있도록 팀원들이 못다할 일들에 도움을 주고, 그 노력과 성과를 상관에게 어필하고, 이 정도의 능률을 발휘하려면 어느 정도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최고의 답안이라 할 수 있어. 윤리적으로도 옳고.

하지만 문제는 여러분에게서 비롯돼. 팀원 중 하나가 승진해서 빠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팀이 재구성된다면? 또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항상 재구성된 팀원들과 이런 관계를 이루고 지낼 수 있을까? 잘 못하는 사람의 잘못을 메꿔주고, 잘해서 손해보는 사람을 적절히 설득하여 항상 조화로운 관계를 끌어낼 수 있을까? 거기에 또한 상관과의 마찰, 혹은 상관이 보는 잘못된 시선을 하나하나 교정하려 노력하며, 혹시라도 막바지에 작업이 펑크난다면 팀원들과 함께 며칠이고 밤새워가며 노력해줄 수 있을까? 젊을 적, 의지가 넘칠 때에는 분명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제 승진이 눈앞이고, 퇴사가 눈앞이라서 별로 큰 일만 없다면, 중간에 불의의 상황으로 권고사직을 당하지만 않는다면 자신에게 어떤 손해도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할 때에, 여러분은 과연 그 때에도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처럼 팀원 하나하나만큼 노력하며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는 않겠지만,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젠 처세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팀원들의 신뢰를 잃고 좌천당하느냐와 상관의 신임을 사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느냐의 차이가 발생하지. 그렇다면 위의 문제에 대하여 윤리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가장 효율적인 처세는 무엇일까. 

이젠 군대의 이야기로 슬슬 넘어가자. 회사도 군대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군대는 더군다나 차출 - 이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다- 을 당한 인원들이 모이는 부대라서, 부대원들의 스펙이 어느정도 비슷했지. 학력이 높은 사람도 물론 있었지만, 학력보다는 체력과 덩치, 관광객을 대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신경쓰지는 않지만 외모 역시 기준이 있었어. 결국 과히 잘하는 사람도 없고, 그에 비해 과히 못하는 사람도 없었자는 것이지. 

저번 이야기의 마지막은 A가 새로운 소대장을 맞이하여 그의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하는 상황이었어. A는 처세술에 있어서는 영악했고, 정확히 위에 적은 문제의 해답과 같이 행동했지. 

<팀에서 1명을 모함하여, 자신의 팀에 구멍이 있음을 알리고, 자신이 그 구멍까지 메우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어필하여 상관에게 자신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는다. 좋은 인식이 일단 심어지면, 이를 통하여 다른 팀보다 많은 보장을 끌어올 수 있고, 그 이득을 팀원들에게 어필함으로서 모함당하는 1명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위의 해답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인정할 만한' 1명을 모함하는 것이지. 매우 능률이 좋은 인원을 모함하여 매장하면 그 선별성에 누군가 반감을 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때마침 우리 분대에는 그전까지의 많은 일들로 인하여 준 매장상태인 사람이 있었지. 바로 나.

A는 (새로 온) 소대장이 없을 때에는 나를 구타하거나, 얼차려를 부여했고, 소대장이 있을 때에는 자근자근한 말투로 날 타이르는 척을 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소대장과 전출 상담을 했어야 했어. 분대장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힘들다면 내가 힘을 써서 자리를 옮겨 주겠다. 밖에서 매우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도 군대에서 종종 적응하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그렇게 낙담하지 말고 위치를 바꿔 다시 생활해 보는 것이 어떠냐.

소대장은 그때까지 우리 부대의 군기기반이 구타와 얼차려였다는 것을 몰랐는지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지. 기회였는데 왜 전출가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거야. 하지만 바로 그 상황에서, 예 적응 못하겠습니다. 저 전출가고 싶습니다. 이 말을 꺼낼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없어. 그건 내 몸이 어떻게 되고, 내 생활이 어떻고를 논하기 이전에 내 자존심의 문제야. 여기서 그 개 같은 선임들과 남은 1년 하고도 몇 개월을 더 지내야겠지만 그 악몽같을 시간을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은 전출을 인정하는, 내가 부적응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그 예라는 대답 한 단어를 허락해주지 않았지.

난 관심병사로 낙인찍혔어. 일병 이상의 짬을 먹고도 소대장에게 관심병으로 낙인이 찍히면, 잘 하는 것 보다는 못 하는 것이 눈에 띄이기 마련이지. 난 그 당시 소대 최고수준의 사격술과 근력, 정확한 제식동작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찌고 달리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변명하기는 싫지만, 달리기는 3KM에 12분 40초로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었어.) 나는 이상한 시선을 느껴야 했지. 사실, 내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후임에게도 선임에게도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다른 무엇보다도 날 안좋게 보이게 만든 것 같아.

A는 성공했어. 소대장은 그런 날 이끌면서도 분대 군기를 유지하고, 훈련성과나 체력성과에 있어 뒤쳐지지 않게 만드는 A를 매우 신임했지. (애초에 분대에 훈련 혹은 체력성과에 뒤지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는 이제 어지간한 훈련에 있어서 제외되었고, 소대장이 훈련평가를 하는 데에 조교로 기용되었으며, 이전보다도 월등히 높은 지위와 권한을 가지게 되었어. 물론 이에는 우리 부대의 작전예규가 아주 복잡하여 신임 소대장들이 첫 3~4개월간 적응하는 데에 소대의 높은 선임들에게 의지하는 면이 많은 것도 한 몫을 했지. 뭐 어찌되었든 나는 이전보다 더 악랄하게 당했어. 

언젠가, 그는 내가 부대에 남아있을 수 있는 담력이 있는지 실험해 보겠다며 눈꺼풀 위를 압박했고, 내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그 행위는 계속됐지. 그리고 나면, 이정도도 버틸 수 없다니 너는 부대에 있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며 소대장과 상담하러 가자고 내 손을 잡고 소대장실로 끌고갔어. 난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고,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가혹행위가 시작되었지. 그 외에도 귀를 구기거나 후임들 앞에서 개인기를 해보라는 등 차마 말하기 싫은 수십가지의 괴롭힘을 받아야 했어. A가 전역할 때가 다가올수록 그 정도는 더욱 잔인해졌지.

일병이 된 지 3개월이 되어가던 어느 날. 내 인생에 있어서 그 때 A의 머리에 총알을 박고 자살하지 못한 것을 평생토록 후회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나. 
전역하는 그 순간, 아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 때 그를 쏴죽이지 못한 것을 후회해. 남자놈 목숨이 귀하면 얼마나 귀하다고 그 상황에서마저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겨우 감옥에서 몇 년 사는 것을 두려워해서 목숨보다 천만 배는 소중할 내 자존심을 송두리째 짖밟히고도 나는 참았을까. 더 괴로운 것은, 지금 A를 만난다고 해도 나는 그를 어떻게 할 자신이 없다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A는 전역한 지금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는데, 나는 거리를 다니다가 A만큼은(사실 몇 더 있지만)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지. 난 어디에서 내가 피해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용기도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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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뿐 아니라, 저와 개월 차이가 별로 많이 나지 않던 후임들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밖에서 A와 같은 선임들을 만나 잔혹하게 복수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을 영원히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이 구역질난다. 라구요.

그렇게 전역을 하고 나서, 6개월 정도가 지난 뒤, 그래도 당시 절 보살펴주던 간부 형님들께 (위에서 이야기하던 시절의 간부가 아닙니다.) 전화는 해 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11시경, 군대에서는 이미 자고 있을 시간임에도, 야간근무를 서고 있던 부소대장 형님이 받으시더군요. 그리고 '하 그 x대학교 꼴통 아니냐'면서 우스갯소리로 환영해 주셨죠. 전화 자주 좀 하라는 말과 함께 이젠 다들 상병장이 된 제 후임을 바꿔 주셨습니다. 

후임은 잠시 저에 대한 호칭을 고민한 뒤, 형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서 분명 제가 뭐라고 했으면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이 나왔을 거라는 걸 목소리로 느낄 수 있었죠. 전역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희들에게 잘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제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 후임은 웃는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과도하리만치 오랜만에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반갑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네들이 저를 친한 형 정도로 생각하기보다는 퇴직한 전 회사 상관 정도로 보는 것이 느껴졌어요. 직접 만난 적도 있지만, 그들과 저 사이에는 군 시절의 계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고, 예의상 한두번 만난 후에, 이제는 군 시절의 그 누구도 먼저 연락하거나, 혹은 서로 만나자고 하지 않습니다.

아마, 후임들 역시 저를 제가 봐왔던 선임들처럼 생각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저는 6개월만의 전화통화를 끝낸 뒤 한참 동안 울적한 기분에 잠겨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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