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선거와 정치 개입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정원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마련된 국정원 국정조사가 사실상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 새누리당의 도저한 몽니와 훼방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급기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실질적 증인 채택마저 반대하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일차적으로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 경찰의 은폐·왜곡 실상을 밝히자는 것이라면 이 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단순한 증인 채택만이 아니라 이들의 실제 출석이 담보되어야 한다.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은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국정원 전·현직 직원은 기밀 누설을 할 수 없다는 ‘국정원법’을 핑계 삼아 불출석하면 대응할 길이 없어진다. 민주당이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에 대한 출석을 담보할 수 있는 서면 합의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데 새누리당은 이들이 불출석할 경우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내용의 합의를 해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결국 증인 채택의 시늉만 낸 뒤 해당 증인들이 ‘재판 중’ ‘국정원법’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는 것을 방치하자는 셈법이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그야말로 형해화시키자는 술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이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번지고, 그 와중에 국정원 스스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공개한 것에 대한 역풍이 불자 부랴부랴 국정원 국정조사를 수용한 새누리당이다. 그런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지리멸렬을 틈타 국정원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방해 책동을 해왔다. 국조특위 민주당 위원의 자격을 문제삼고, 당연히 공개해야 할 국정원 기관보고의 비공개를 주장하면서 3주가량을 의도적으로 허송했다. 그러고도 “더워서” “휴가기간”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번주를 건너뛰고 다음주 사실상 사흘간의 국정조사 실시를 강제해 놓고, 이제는 핵심적 증인을 출석시키는 것마저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는 해외출장, 지역구 활동 등을 이유로 아예 자리를 비웠다. 국정원 국정조사 증인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야당이 제기한 원내대표와 국조특위 간사가 참석하는 4자협상 등은 애초 안중에 없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 국정조사의 실질적 진행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고, 최대한 책잡히지 않으면서 국정조사를 무력화하자는 속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유린하고 국기를 문란시킨 국정원의 선거 개입 문제를 규명·심판하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국정원 국정조사를 이렇게 무력화시킨다면 새누리당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끝내 야당을 장외투쟁으로 내모는 것도 그 자업자득일 것이다. 종국에 정권의 정통성 문제로 확산되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기 위한 광장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각오해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