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죽지않아>의 한 장면 | ⓒ 씨네굿필름 | | | 직접 대면해 본 사람은 안다. 가끔은 가스통을 둘러업고, 보통은 해병대 군복을 차려입고, 광화문으로, 청계천으로, 아니 집회가 있는 그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 같은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이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메웠던 27일에도 어김없었다. 하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굳건히 뭉친 할아버지들은 "종북좌파들은 죄다 북한으로 추방해라"며 진지하게 핏대를 세웠다. 지난 26일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식에서 우수 한국 독립영화에 수여하는 'LG하이엔틱 어워드'를 수상한 <죽지않아>. 이 영화 속 주인공 할배는 '어버이연합' 회원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수구꼴통'을 대변할 만한 마초 할아버지다. 386세대를 대변할 만한 아들과는 연을 끊은 이 할아버지에게 베트남전 참전은 가문의 영광이요, 세상을 돌아다니는 빨갱이들은 무조건 척결해 할 대상일 뿐이다. <죽지않아>는 황철민 감독의 작품이다. 황감독은 80년대 정체가 탄로 난 프락치와 그를 감시하게 된 정보기관 직원이 작은 여관방에 갇힌 상황을 탁월하게 그려낸 <프락치>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2005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국제 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로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다.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세종대학교 영화과 제자들과 함께 영화를 완성했다는 황철민 감독은 <죽지않아>를 '우화'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물론 한국사회에 대한 우화일 게다. 그런데 이 소품일 것 같았던 우화는 꽤나 정교하고 날카로우며, 심지어 뼈아프게 다가온다. 도대체, 이 할아버지와 손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구꼴통 할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발칙한 손자의 복상사 프로젝트 할배(이봉규 분)와 손자 지훈(차래형 분)이 사이좋게 제사상에 절을 올리는 첫 장면. 기묘한 동거를 이어가는 이 두 사람이 같은 핏줄이란 걸 강조하는 <죽지않아>는 '수꼴' 할배와 20대 손자의 세대론적 영화다. 물론 '세대 간의 갈등' 존재해야 제맛일 터. 할배는 군대에서부터 꼬박꼬박 모아 온 종잣돈을 바탕으로 여기저기의 땅을 사들였다. 규모가 쾌 큰 식당을 포함해 수십억에 달하는 재산을 자랑한다. 이처럼 죽어도 여한이 없는 할배와 달리 그 유산을 보고 시골에 내려와 매일매일 밭을 갈고 온갖 허드렛일을 머슴처럼 하는 손자 지훈은 죽을 맛이다. 그런데 이건 웬걸! 암에 걸려 죽을 날만 받아 놓은 줄 알았던 할배가 죽기는커녕 검은 머리가 다시 날 정도로 충만한 정력을 자랑하는 게 아닌가. 술김에 친구들에게 농으로 '이 할배는 죽지도 않아'라고 했던 지훈 앞에 은주(한은비 분)가 할배의 시골집에 나타난다. '도대체 저 여자가 왜?'라며 곤혹스러워할 때 쯤, 친구들과 할아버지를 죽이는 방법을 논의하다 언급됐던 '복상사'가 떠오른다. 술기운에 은주와 들렀던 모텔방에서의 처참한 기억과 함께. 부와 건강,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할배의 죽음과 함께 찾아올 유산만을 오매불망 수년 동안 기다리는 손자, 그리고 이 두 남자에게 찾아온 정체불명의 매력적인 여자. <죽지않아>는 이 세 사람의 '동물의 왕국'처럼 보이는 관계를 은밀하고 야심 차게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 외면하고 싶지만 직시해야 할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자리하고 있다. | ▲ 영화 <죽지않아>의 한 장면 | ⓒ 씨네굿필름 | | | 핏줄로 연결된 이 신구 세대의 민낯 할배가 남겨 주기로 한 유산은 지훈의 현재를 옭아맨 덫이자 미래를 약속하는 청사진이다.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아버지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싫다. 수년 안에 들어올 유산, 그러니까 수 십억의 돈만이 이 젊은이를 버티게 만드는 동력이다. '돈에 영혼을 잠식당한' 20대는 그래서 할배 세대의 말과 돈(이란 절대적 권위)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다. 이 관계에 끼어든 변수가 바로 은주다. 돈을 노리고 할배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 시작한 은주는 지훈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참다못한 지훈이 친구에게 청부살인을 의뢰할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네 할머니가되는 것은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란 위협에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 손자가 어디 있으랴. 돈과 권력, 그리고 지치지 않는 정력까지 소유한 이 보수꼴통 할배를 신념도, 지구력도, 경험도 없는 20대의 '꼬꼬마'가 대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은주와 같은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더더욱. 점점 더 꼬이기만 하는 이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결국 우리가 직시하게 되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단 우화 속에 녹여낸 한국 사회의 두 세대의 얼굴, 그 중 '지훈'의 민낯이다. 자, 그러니까 죽이고 싶은 저 할배 세대를 어찌하겠는가. 죽여서라도 끊어내고 싶은 저 견고하고 완벽한 성채와도 같은 세대들은 그러나 우리의 핏줄이요, 부모 세대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분명 물려받아야 할 (그것이 좋든 싫든 간에) 유산이 있다. 황철민 감독은 그 유산을 거부한(것처럼 보이는) 386세대와 달리 지훈(의 세대)은 그 유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거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제사상에 절을 하는 영화의 처음과 끝 장면의 수미쌍관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스포일러라 언급할 순 없지만) 다소 충격적인 결말 이후 지훈이 할배의 (예정된) 유산과 함께 그의 가치관까지 물려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단단하게도 '핏줄'로 연결돼 있다. | ▲ 영화 <죽지않아>의 한 장면 | ⓒ 씨네굿필름 | | | 어버이 연합과 일베가 보이는 <죽지않아> 속 한국 사회, 한국 사람 어버이 연합과 대응하는 세대론적 키워드는 '일베'일 것이다. <죽지않아>를 보고 나면, 세대와 구체적은 모습은 다르지만, 저 둘이 닮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마치 끝내는 단단하게 손을 잡은 할배와 지훈처럼, 할배의 보수성과 생존력이 결국 지훈에게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래서 이 우화는 조소를 이끌어낼망정 통쾌하거나 상쾌한 웃음을 전달해 줄 리 없다. 한국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이 두 세대가 결국은 맞닿아 있으며 결탁하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담겨있기에 더더욱. 현실 속의 '일베'가 '보수성'을 담보하는 여러 매체와 동시대의 관심 혹은 우려를 먹고 쑥쑥 자라나고 있는 것 마냥. 단출한 인물과 단순한 구도로 한국사회 곳곳을 찌르고 들춰내는 <죽지않아>는 그러나 한국영화가 외면했든 혹은 지나쳤든 두 세대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흥미롭고도 깊이 있는 생태보고서다. 특히나 대선 이후 급격히 보수화되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어떤 각성까지도 던져준다. 이 한여름, 블록버스터의 홍수 속에 놓쳐 버리기엔 분명 후회할 문제작이다. 영화 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8월 8일 개봉을 앞둔 이 영화의 포스터와 예고편이 영상물등급외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자줄래?'와 '복상사!'라는 단어가 문제가 됐다고 한다. 최근 <뫼비우스> 논란을 비롯해 그 보수성을 만천하에 인정받고 있는 영등위가 우리 청소년들은 너무 얕본 것은 아닌가 싶다. '자줄래?'나 '복상사!'가 청소년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 여기는 이 1차원적인 사고가 실소를 자아내지만, 결국 권력을 쥔 자들은 그 '보수성'을 권위로 동일시하며 오늘도 열심히 휘두르고 다닌다. 이 풍자영화가 그저 한낱 풍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의 반영임을 '영등위'가 실시간으로 자각시켜줬다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