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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외전)
게시물ID : military_277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17
조회수 : 15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7/29 16:10:42
안녕하세요. 시리즈를 읽어주시는 분, 댓글로 격려, 의견을 말해주시는 분, 추천해주시는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번 이야기의 다음편으로 오늘도 찾아뵈려고 했지만, 제가 시험이 발등에 불인지라 내일까지 연재가 힘들 것 같습니다.
말머리에 어떤 이야기를 놓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후에 쓸 내용들이랑 지금 쓰는 내용이 긴밀하게 관계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쓰는게
제가 지금 일기장을 토대로 쓰는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를 짜놓고 쓰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옮겨적는 형태로 적고 있어서...

전 그냥 썰 풀듯이 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도 깨나 걸리고 많이 힘드네요. 
내일 수학과 회계학 시험이 끝난다면(공대생인데 회계학 ㅠㅠㅠ) 다시 본격적으로 연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래봐야 하루 휴재(?)니까 봐주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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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군생활을 하며 겪었던 기묘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게. 
아무리 2년 간 암울한 생활을 해왔더라도 좋은 기억 하나 없으면 그것은 생활이라고 하기도 힘들겠지. 아우슈비츠에 들어갔다 나오신 분들도 '이 때는 그나마 나았다'라고 할 수 있는 시간들(예를 들자면, 아티 슈피겔만의 '쥐'라는 작품에서는 어쩌다 잡혀온 프랑스인과 친해져서 적십자 구호물품을 받을 수 있었을 때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와. 수용소 생활 속에서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습겠지만, 수용소의 삶을 살았던 아티의 아버지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괴롭기만 한 수용소 생활 중간에 그나마라도 웃을 수 있었던 그런 일들을 회상하는 거겠지? 이 작품은 만화책이라서 글자로 가득찬 종이를 보면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사람들도 쉬이 읽을 수 있는데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시계태엽 오렌지'만큼이나 큰 영향을 준 만화니까,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해.) 이 있다고 할 정도니. 나라고 그런 게 없었겠어. 물론 꼭 즐거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아니고. '기묘한 이야기'시리즈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읽어줘.

1) 그녀의 선물

후임 중에서, 나이가 매우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20살이었지. 대학을 중도 포기하고 군대에 바로 입대한 케이스였어. 나보다는 한참 후임이었고. 이 친구에게는 죽고 못사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자기가 그녀를 꽉 잡고 산다며 자랑아닌 자랑을 하곤 했지. 간혹 사진을 보여줬었는데, 상당히 예쁜 편이었다고 기억해. 

어느 날, 군대에서 사귄 지 200일? 300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기념일을 맞이한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커다란 소포박스를 보내왔어. 굉장한 센스가 돋보였는데, 선임 하나하나의 이름과 그 계급, 심지어 압존법까지 사용해서 멘트를 적었던 거야. 물론 분대원 수만큼의 봉투에 각종 물건들이 들어있었지. 과자, 비타민, 칫솔, 비누.... 잠깐만, 비누?

코스트코에 잘 다니지 않던 나 외으 선임들이 특이한 과자들에 문화충격을 받고 있을 무렵, 우린 거의 동시에 비누를 발견했지. 정작 후임 당사자는 바디워시를 선물받은 것으로 보아 군대에서는 비누만 쓴다는 80년대식 루머를 믿는 여자친구 같지는 않았어. 각자의 봉투에서 비누를 꺼낸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크게 웃으면서 그 후임의 근처로 비누를 던져 떨어뜨렸다.

비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
'우리 ㅇㅇㅇ 많이 사랑해 주세요'


2) 축제

북한이 어떤 일을 언제 했었던 기록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달력에 기록하고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 중요사건이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그 날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생각해보면, 전년도에 침투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다음 해 그날 침투하려는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배에 표시하고 칼을 찾는 느낌이지만,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되는가'라는 간부의 질문에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년도의 당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전년도에 이러한 일이 있었으므로, 이런 일에 대비해서 어떤 전술토의로 대비한다 등의 답변을 생각해놓아야 했지. 전역하고 생각나는 가장 멍청했던 일들 중 하나였던 것 같아. 물론 그 외에도 몇시부터 몇시가 무월광 취약시기다 등등을 아는 건 중요했지.

그날은 태양절이었어. 김일성 탄생일이지. 초소의 사수(초소에 같이 들어가는 병사 중 가장 높은 병사)들은 제각기 '오늘은 태양절이기 때문에 김일성의 업적을 기린다는 이유로 북괴군이 의심받지 않게 많이 모여 침투를 결행할 수 있고....'등등 간부들이 물어봤을 때 대답할 말들을 생각했지. 또한 간부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고, 우리는 발새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한 즉각 대비태세를 위해 각종 전술토의를 하며 초소로 투입되었어.

그렇게 긴장되는 상황 속, 초소에 들어간 우리를 맞이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 국가의 최대 기념일에 걸맞는 근사한 불꽃놀이였지.


3) 군생활을 세절하다.

행정반에 세절기 하나 없는 군대는 없을 것이라고 봐. 행정반에서 만들어지는 자료들은 거진 전부 세절이 필요한 자료들이기 때문이지. 분대에서 간간이 나오는 세절지들도 불침번들이 밤에 행정반에서 세절해버리고는 했는데(불침번은 행정반으로 가서 근무해야 하니까.) 내 군생활 마지막 불침번을 서는 날이 오게 되었지. 

난 그때까지도, 군대에서 내가 행했던 모든 것이 싫었어. 암울했던 시절들과 그로 인해 잃어버린 인간관계. 짬을 먹고 어느새 변해버린 나 자신. 군에 오지 않았더라면 혹시 잘 될 수 있었을까 생각했던 인연.

인연은 일병 후반,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인간관계와 나 자신은 일기장에 잔상처럼 남아있었지.
1년만에, 색색의 봉투에 들어있던, 미련이 남았는지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자랑스레 말하지도 못했던 편지들을 꺼내서 마지막으로 읽었어. 어느새 21개월 전 이야기가 되어버린 고달펐던 그때의 일들도, 투박하게 펜으로 끄적여서 가끔은 나조차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일기장도 읽었지. 그리고 한 장씩 찢어서 세절하기 시작했어.

그날의 불침번은, 겨우 두 시간이었음에도 매우 길었던 것 같아. 마지막 편지를 세절했을 때(일기장보다도 편지를 나중에 세절했던 기억이 나)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지. 내일이면 해방이다.


4) 괴도 키드.

우리는 캠프를 자주 옮겨다녔기 때문에 남쪽 캠프에 있을 때 부식을 잔뜩 사 들고 북쪽 캠프로 올라가는 게 버릇이었어. 물론 다른 방법으로 조달할 수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튼 사서 들고다니는 게 맘이 편했지. 부식은 간식류를 말해.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부식이 사라지기 시작했어. 누군가가 훔쳐간거지. 마치 쥐가 훔쳐간 것처럼, 교묘한 수법으로 과자박스에 구멍을 뚫고 내용물을 가져가는 솜씨에 기분나쁘기보다는 감탄스러웠어. 그리고 우리는 그를 '부도 키드'라고 불렀지. 

각종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에 대한 수사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어. 이젠 소대장도 그 일을 알고 있었고, 누군지는 몰라도 더 이상 피해사례가 속출하면 자신이 나서서 군법으로 대하겠다(?)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지만 소용없었지.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해도, 쓰레기통을 검사해도, 혹은 생활관 복도에 있는 cctv를 돌려봐도 범인은 나오지 않았어. 

쥐가 낸 것 같은 구멍과, 사라지는 박스의 내용물(ㅇㅇ파이라던가), 하지만 종종 발견되는 쓰레기는 분명 사람이 까 먹은 흔적. 부도 키드는 대체 누구였고, 어떤 방법으로 더블백(군대에서 쓰는 백팩 개념의 가방) 속의 부식을 훔쳐갔던걸까.

사실 부도 키드의 이야기는 나중에 본편에서도 다를 예정이야. 부도 키드는 범인을 찾는 문제에 있어서는 미스터리한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내가 전역하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개념적인 존재가 되어 다시 나에게 찾아오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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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조금만 쓰고 만다는 게 3시부터 4시까지 써버렸네요 ㅠㅠ
사실 아침에 도서관 자리잡고 공부하다가 시간연장 타이밍 놓치는바람에 자리 인터셉트 당하고 집에 와서 울분의 글을 끄적여 봤습니다.
집에만 오면 노트북이 잡고 저를 안놔주네요. 이 악마같은 자식.

이제 lol.... 이 아니고 회계학을 하러 도서관에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자리 있길 기원해주세요.
그리고 즐겁게 읽으셨다면 댓글 하나씩 꼭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본편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행복한 월요일 되..... ㄹ순 없을 것 같고, 여러분의 주말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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