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것은 이태진 위원장이 친일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1. 대한제국을 바라보는 이태진 위원장의 시각: 고종 중심의 역사관
이태진 위원장이 독재를 옹호하는 것은 고종에 대한 옹호로부터 비롯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종은 대한제국기에 영국식의 민주적 입헌왕정을 지향하지 않고 독일-일본식의 흠정헌법을 지향했습니다.
즉 자신들한테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닫혀 있는 사람이었고
학계에도 이미 알려져 있듯이 근대적 재정운용이 아니라 궁내부라고 하는 별도 기구를 설치해 재정을 운용했습니다.
그런데도 이태진 위원장은 그것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1) 고종 시대의 재조명
<<고종시대의 재조명>>(태학사, 2000)가 전형적으로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은 갑신정변이라든지, 동학농민전쟁이라든지 하는 조선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고종' 밖에 없습니다. 고종만이 근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2) 한 뉴라이트 학자의 반박
김재호라고 하는 양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진짜 뉴라이트 학자죠....
이 양반이 <<교수신문>>에서 반박을 합니다.
반박에 재반박이 겹쳐서
그것이 <<고종황제 역사청문회>>(푸른역사, 2005)로 나옵니다.
김재호라는 양반은 대한제국기 재정을 연구한 양반인데
위에서 이야기한 '궁내부'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고종황제가 근대화를 제대로 했냐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뉴라이트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은 부지불식간에 '식민지근대화론'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인데
조금 다른 맥락에서 다른 역사학자들이 비판을 합니다.
그 시대에 고종 밖에 없었냐고. 고종만 그 시대에 일본과 싸웠고, 근대화를 하려고 했냐고.
오히려 고종 이외에 다른 이들이 개화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고.
한 마디로.... 전선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태진 위원장은 민족주의자입니다. 다만 '민중'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개항기는 고종 이외에도 다른 한국인들도 근대화와 자주적 움직임을 꾀했던 시기입니다.
(2) 을사늑약: 이태진 위원장과 일본 학자 운노 후쿠쥬의 논쟁
국편이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바꾸라고 했다는게 문제라고 하잖아요?
코미디인 것은.... '을사늑약'이라는 말은 이태진 위원장이 학계에서 거의 처음 쓰기 시작한 용어입니다..
'병합' 조약의 불법성을 따지면서 일본학자 운노 후쿠쥬와 논쟁을 한 것도 이태진 위원장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병합사연구>>(논형, 2008)에 나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태진: 을사늑약과 '병합' 조약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운노 후쿠쥬: 당대 국제법 관례상 불법이 아니다. 불법이라고 해서 식민지배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자세한 내용은 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2. 국편의 교과서 수정안의 대략적인 내용
http://media.daum.net/society/education/newsview?newsid=20121009031007943
http://news.nate.com/view/20121009n12315?mid=n0411
위의 기사들을 찾아보면 국편 권고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을사늑약→을사조약
2. 일왕→천황
오히려 3, 4, 5, 7번이 문제입니다.
1) 일단 을사늑약은 이태진 외에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과의 '조약'은 뭐라고 이름 붙일지 학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을사늑약'은 이태진 위원장이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스스로 교과서에서 '조약'이라고 고치라고 했다는 것은 코미디이죠....
2) '천황'이라는 것은 고유명사입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천황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본사학계에서 실제로 '천황'은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천황'이라고 쓰지 않는다고 '천황제'가 사라지지는 않죠....
오히려 '덴노'라고 고쳐쓴다든지 하는 것이 좋겠죠.
물론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는가는 의문입니다.
----------------------------------------------------
3)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의 사진이 잔인하다?
글쎄요. 중학생들에게 잘못된 우리 역사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해 선명한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 되었나요?
4) '자유민주주의'
하도 많이 이야기된 용어이니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오로지 미국식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의 형태로 적합하다는 것은 다양한 민주주의의 형태를 억압하고자 함입니다.
이태진 위원장은 이 용어를 옛날부터 지지해왔습니다!
5) 4.3항쟁
4.3항쟁은 당시 책임자였던 조병옥이 제주도 사람을 다 죽이자고 하는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국가가 잘못한 일을 '무장봉기'로 적는다는 것은 반공주의적 역사관을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6) '성노예'
사실 이 문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문제라서 조심스럽습니다. 클린턴 미 장관 등이 지적했듯이 현재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성노예(sex slave)'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용어가 누구를 즐겁게 한(comfort) 것이냐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할머니들께서는 '성노예'라는 용어를 싫어하시는 문제가 있습니다. '위안부'가 당대 용어이기도 하고요.
따라서 이 문제는 유보하겠습니다.
7) '중임 제한'이라는 애매한 용어로 고쳐 쓰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는 아실 겁니다.
-------------------------------------------------------------
여타 언론에서는 1), 2)를 계속 이야기하면서 이태진 위원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 2)는 오히려 '좌파'라고 불리는 역사학자들도 최근 다 용인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3), 4), 5), 7)번입니다.
3. 국편의 해명
말 그대로 국편 해명자료입니다.
요약을 해드리자면
1. 을사늑약→을사조약
'성노예'→'위안부'
이렇습니다.
1번은 제가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 3번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권고'를 했다는 것은.... 검정안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자유민주주의', '중임 제한' 등의 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4. 결론
이태진 위원장의 문제는 친일파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이 가지는 '국가주의'적 역사서술의 문제라고 보입니다.
뉴라이트요?
뉴라이트 학자들이 이태진이랑 싸운 사람들입니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고종은 근대화를 시키지 못했고, 일제가 들어와 비로소 근대화시켰다고 한 사람들이고
이태진과 같은 사람들은 고종만이 그 당시 근대화를 시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학자들 중에 고종의 길만이 맞는 길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태진의 문제는 위에 링크한 조선일보 기사에 나와 있듯이
소위 '좌파'적이고 '민중'적인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친일파 문제가 아니라요.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같은 책을 펴낸 사람이 이태진 교수입니다.
전 결코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친일파-독재 vs 반일-민족주의-민주주의
이러한 이분법을 깨자는 것입니다.
반일, 민족주의자이면서 독재주의자일 수도 있습니다.
-------------------------------------
읽기 힘드신 분들을 위한 요약
1. 이태진은 반일-민족주의자, 그러나 독재주의자
2. 이태진은 뉴라이트 학자들과 각 세워서 싸운 사람임
3. 오히려 반민주주의적인 그의 시각이 문제임
4.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반일-민족주의더라도 반민주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