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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4)
게시물ID : military_276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18
조회수 : 201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7/27 11:21:09
어두운 군대 이야기입니다. 
이전 게시물들을 보셨던 분들은 아시다시피, 100%제가 경험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문은 평어체로 작성됩니다
부대마다 나름의 특수성이 있기에, 저와 같은 부대에서 생활하셨던 분들께선 '어느 부대이다'라고 딱 아실 수 있으실테지만 공개는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전역한지 꽤 되었고, 이젠 그곳 간부들도 다 바뀌고, 병사들도 다 바뀌어서 저와는 상관없는 분들이 근무하고 계실 텐데, 제 기억으로 인해서 그분들이 쓸데없는 피해를 입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10군번이고요, 10군번으로서 겪기 힘든 수준의 군대 문화를 경험했기에 '거짓말 아닌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강조드리고, 글 내에서 제가 했던 생각들, 그 상황에서 제가 대처한 행동들이 부적당하다고 느껴지실 수 있다는 것에는 격히 공감합니다. 

저 역시 당시에는 깡다구도 없고 편히 책상에서 책이나 잡고 살아왔던지라, 그러한 행위들을 직접 당하고 겪어본 일은 처음이라, 사람이 무너질 수 있을 만큼 무너졌었다고 생각하니까요. 당시의 저를 보면 저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느낌이군요.

여튼, 지금까지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 그리고 이 글도 읽어주실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전번 글들은 항상 그래왔던 대로 댓글에 링크를 달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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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박사학위를 취득하느라 미필이었고, 해병대 출신이었던 친구와 서울역 방면에 도착했다. 친구와 같이 들어간 화장실에서, 해병대 정복을 입은 병사를 만났고, 친구는 그 병사에게 뭐라도 사먹으라며 돈을 건네주었다. 들어왔던 전우애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몇 기인가, 요즘 해병대는 어떻느냐는 등의 간단한 질문을 나눈 뒤 그 병사와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그 날 저녁이었다. 집창촌의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던 우리의 눈에 해병대 정복을 입은 다른 병사가 보였다. 그는 여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고, 여자는 행색으로 보아 업소의 여성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친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를 표출하며, 갖은 욕설과 함께 그 해병대 병사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옆의 업소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병대원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돌변과, 매우 심한 강도의 구타보다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해병대 병사가 맞는 자세였다. 그는 주먹 한 번 쥐지 않은 채, 자신은 당연히 구타당해야 한다는 듯이, 죄송한 표정을 짓고 친구에게 구타당하고 있었다.'

위는 해병대 친구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인터넷에 올린 나름대로 충격적인 일화야. 물론 모든 해병대원들이 그렇다고 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저런 문화가 남아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저 둘이 해병대를 다닐 시절, 저 둘의 소대, 혹은 분대(해병의 부대단위는 사실 정확히 모르겠어.) 에는 어느 정도 심한 구타와 폭행이 잔존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실제로 내 주변 해병대 출신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구타 폭행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내가 일병일 당시, 내 소대선임(분대는 다르지만, 같은 소대 내에 있는 선임)의 이야기와 메커니즘이 매우 닮아 있어서야. 오늘은 그 선임의 이야기와, 후에 우리 부대에 불어닥칠 격변의 전조에 대해서 말해볼까 해.

그 소대선임을 앞으로 P라 칭해볼게.(심지어 실제로 박씨도 아니야. 아무 알파벳이나 잡은 것이니까, 추정하려고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P는 성격이 정말 유순했어. 나보다 몇 개월을 더 버텼다는 것이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해외파로서 굉장히 좋은 학교에 다녔었고, 영어도 원어민 같고, 수학 전공으로 밖에서는 정말 초일류 엘리트의 삶을 살았었던 사람이었지. 물론, 그 역시 너드였고, 해본 거라고는 책상에 앉아 공부한 것과, 외국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조금의 다른 경험(하지만 외국 대학들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뿐이었어. 그 역시 분대에서 선임들이 던지는 각종 저속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없었고, 나와 비슷한 시절을 거쳐 왕따에 가까운 구타와 폭력을 당하게 된 상태였던 거야.

어느 날, P분대의 분대 내 통신병이 바뀔 필요성이 생겼고, 적당한 짬이 그 선임밖에 없었기에 P는 통신병이 되었지. 통신병의 중요성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자면, 우리는 캠프를 자주 옮겨다니고, 그 캠프에는 전부 상황실이 있었어. 따라서 상황실에서 CCTV로 보거나 전파받거나 혹은 전파가 필요한 모든 상황들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분대장 혼자서 그것을 맡기에는 부족했지. 그래서 분대장은 자기 휘하에 통신병을 하나씩 놓았었는데, 이 통신병은 각종 통신기기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고, 정시의 통신법 등 기본적인 작전예규보다 훨씬 많은 추가적 정보들을 머리에 넣어야 했지. 

마침 P는 학력도 좋은 편이어서 그런 보직에 어울린다고 생각되었고, 뭐 그런 이유로 통신병의 자리에 앉게 되었지. 이것이 P의 불행의 시작이었어. 통신병은 보통 바쁜 편이지만, 몇몇 캠프에 한해서 그렇지 않았었고, 바쁘지 않을 때는 심심한 분대장과 상황간부(상황실에 머무르는 간부)들의 농담따먹기 대상이나, 요리사가 되어야 했지. 이 선임은 요리에 대해서 문외한이었고, 상황간부와 상황분대장과는 사실상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P의 세상에서 즐겁게 나눴던 농담이나 이야기들은 그들에게는 그저 재미없는 너드의 이야기일 뿐이었지.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전번 이야기에서 내가 해줬던 기억이 있는데, 기억하고 있어? 초소에서 A에게 당했던 이야기들. 그래, P역시 마찬가지의 루트를 겪었어. 심심하다 못한 분대장이 P의 이야기보다는 괴롭힘과 그 비명소리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한거야. 통신병은 아무래도 어려운 보직이라 이것저것 실수하는 일들이 초반에는 잦았고, 실수할 때마다 그것을 핑계로 구타와 폭행을 일삼았지. 가끔 상황실 내에서도 상황간부가 없는 틈을 타서 구타하는 것을 나 역시 목격했었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아니,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어. 우리에게 이미 폭력은 당연한 것이었지.

그렇게 두어 달쯤 지났을까, 원래도 심했던 폭력에 통신병으로서 당하는 각종 인격모독적 굴욕과 추가적 구타에 P는 점점 피폐해져가기 시작했어. 키도 크고 말랐었던 그의 몸이 불기 시작했고, 원래 특급이었던 그의 체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지. 체력에 문제가 생김으로서 구타는 더욱 더 심해졌고, 일전에 들은 말로는 언젠가 그가 쓰레기통에 쓰레기와 같이 쳐박혀서 밟히고 있는 모습도 목격되었었다고 해. 

P는 꿋꿋이 버티는 편이었지만, 그의 인내심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졌지. 휴가 당일이었어. 우리는 소대원 전체가 한날 한시에 휴가를 나갔다가 한날 한시에 돌아오는 특이한 휴가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P와 그 분대장은 당연히, 같은 날 휴가를 나가게 되었지. 그리고 P에게 전화가 걸려왔어. 분대장이 군대에선 미안했으니 술을 한 잔 사주겠다고 P를 불러낸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의 P의 심경은 잘 모르겠으나, 여튼 P는 분대장이 부르는 대로 약속장소에 나갔지. 

분대장은 술을 사주었고, 스스로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 P에게 구타는 미안하지만, 네가 그것을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는 조심해라 라는 의미의 대사를 했었다고 해. 그리고 돌아가려고 하는 P를 붙잡고 2차 술집으로 향했고, 향하는 길에 P가 계속 들어가봐야 된다고 하자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지.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등 각종 협박을 하며 헤어졌고, 그렇게 그들은 휴가복귀를 했지.

휴가복귀 후 어느날, 부대의 분위기가 뒤집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선임들은 이리저리 불려다녔고, 소대장이 일이등병을 모아서 지휘체계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으며 각종 훈련이 취소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P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래, P가 심지어 대대장보다도 높은 누군가에게(누군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대장까지 썩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P였고, 대대장 역시 이런저런 일들에 휘말렸던 것을 보면 그보다 높은 누군가에게 말했다는 것이겠지)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고, 도움을 요청했던 거지. 

선임들은 며칠간 우리를 건드리지 않았고, A는 지휘체계와 선임들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으면 이런 건 고발하는 게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인생에서 적을 만드는 건 여러 의미로 위험한 것이고, 우리도 이렇게 당하고 살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찌를 사람 있느냐, 그럼 내가 그 놈 죽이고 나도 같이 죽어버리겠다 등등의 협박성 가득한 교육을 실시했지. P의 분대장은 P의 군복무 7개월간 500회 이상의 구타, 뭐 그외 이것저것의 혐의로 영창에 갔고 - 7개월간 500회라는 숫자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이건 기억하고 있어. 하루에도 수 차례 구타를 행했던거지. 우리 상황은 그랬었던거야 - P는 상황이 아주 조금 진정된 그 달의 작전기간에 돌아오게 돼. 당연히, 모든 선임들이 P를 무시했고, 그는 밥조차 아무도 같이 먹어주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우스운 건, 내 후임들, 내지는 P의 후임들까지도 그를 '쓰레기'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당연히 맞아야 될 것에 대해서 왜 반항하는가. 소대 전체는 거의 P를 '아버지를 고소한 폐륜아' 취급했지. 이사람들이 다 미친 건가 생각했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몇몇도 물론 있지만, 소대 내 내 후임들마저도 대다수에 가까운 숫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걸. 이 때쯤 난 내가 정상인지 사람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황당하게도, P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그의 분대장 외에는 아무도 징계 혹은 최소한의 주의도 받지 않았으며, 대대장이 커버해줬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니 확정하지는 못하겠어. 중, 소대장은 P를 대하는 분위기를 직접 보면서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고, 하는 소리라고는 '이번 일로 다들 사기가 떨어졌을 텐데, 그래도 우리에게는 작전이 끝난 뒤 휴가가 있으니 조금 즐거운 기분으로 하자'는 식의 말만 해댈 뿐이었지. 대대장도 '이번 일은 유감으로 생각한다. 애들 때리지 말아라'는 말이 끝이었어. 선임들은 '이젠 더러워서 폭력 못쓰겠네' 라는 식이었고. 

물론 위에까지 설명해놓은 감상들은 지금 와서 기억해보니 드는 감상이고, 그 당시에는 그래도 폭력은 좀 줄어드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었지. 직접 눈앞에 닥친 일 앞에서 나무보다는 숲을 볼 만큼 난 현명하지도, 침착하지도 못했어. 그저 참고 있는 저들이 언제 다시 구타를 재개할까 하는 생각뿐이었지. 우리 모두가 그런 멍청한 생각으로 생활하는 중, P는 타 부대로 전출되었고 작전이 끝나고 휴가철이 왔고, 휴가가 끝난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생활은 이전으로 돌아왔지. 다시 구타가 시작되었어. 

기분나쁘게 갈구는 것과 임팩트 있게 혼내는 것의 차이를 선임에게 들은 적이 있다. 혹시 찌르고 선임이 영창에 가도 밖에서 혹시 선임을 만났을 때 맞아죽을까봐 무서울 정도로 패면 아무도 찌르지 못한다는 거지. 선임들은 찔린 것이 자신들이 유해서, 이전보다 약화된 구타의 정도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차피 영창 15일이야 다녀오면 그만인거고 갔다 오면 패죽여버리겠다. 이런 느낌으로 이젠 구타하기 시작했지. 

따라서 몇몇 사람이 구타는 매우 심해졌고, 그렇게 심할 구타를 할 깡이 없는 선임은 구타를 그만두거나 내리갈굼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몇 대씩 때리는 식으로 그 빈도가 아주 적어졌지. 이렇게 P의 사건은 끝나. 그후 P의 알동기(같은 달 같은 날 입대)들에게 물어봤지만 P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지.

나 역시 여기에서 많은 것을 느꼈어야 했는데, 고작 '구타가 줄어들었다, 좋다'는 정도의 생각만 들 뿐이었어. 그리고 다음 작전(1개월 텀이야), 우리 부대는 일생일대의 격변기를 맞이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추가적으로, 야전 부대를 전역한 친구들에게 물어봤어. '누군가 선임을 찔러서 자기 부대에서 전출당하고 너희 부대로 왔다면 느낌이 어떻느냐, 또한 누군가 후임을 구타해서 자기 부대에서 전출당하고 너희 부대로 왔다면 어떻겠느냐'

친구들 중 반 정도의 반응은 '둘다 비정상 아니겠느냐' 그리고 남은 반은 '후임이 얼마나 말을 안들었으면 때렸겠나, 일단 때린 이유부터 듣고 생각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모두의 반응은 '선임을 찌르고 왔으니, 여기에서도 충분히 찌를 가능성이 있는 놈이다. 찌르고 온 놈과는 깊이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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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사실 마지막 문장, 친구들의 인식에 관해서는 저도 적잖이 충격받았는데요, 군대게시판 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요즘 군대에 찌르고 전출당한 놈이면 뭘해도 찌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 혹시 들지 않으시나요? 

'병 상호간에는 어떠한 지시 혹은 간섭을 금지한다.' 이건 병영생활 행동강령이며 군법입니다.
생활해 본 사람들 말로는 이 강령이 잘 지켜져도 부작용이 많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군대 스스로 바뀌어 나가야 하는 방향이고 우선 이 강령을 지킨 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조사해서, 다시 조금 더 나은 행동강령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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