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는 사랑하던 사람과의 결혼을 외할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때문에 결국 억지로 다른사람과 선보고 결혼했는데 사랑이 없는 결혼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많다고 했던 친가는 알고보니 빚많은걸 숨긴게 들켰고 훨씬 가난했습니다. 친할머니는 아들못낳는 애미라고 엄마를 못살게 굴었고 임신을 해도 밥과 김치만 먹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아빠는 애주가였는데 술만 드시는줄 알았던 아빠가 하시던 유일하신 일은 나전칠기를 만드시는 일이었는데 4살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저는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며 안아달라해도 안아주지도 않고 늘 엄하게 저를 키우셨고 애정표현이라는걸 할줄모르는분이셨죠 그런데 세상에 회의를 느끼셨는지
아니면 그게사고였는지는 모르지만 선반에 있던 농약을 술이라며 드셨다고 합니다 늦은 발견으로 인해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렇게 어머니는 혼자서 저랑 친남동생을 키우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희곁에 엄마라도 있어줌에 있어서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있었는데 엄마는 저랑 동생에게 무슨생각으로 그런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니 아빠죽고 나서 엄마삼촌이 니들 버리고 도망가라 그랬다 근데 내가 니들 어떻게 버리겠냐" "니는 너거 아빠 술취해와서 니 가진거다" "20살되자마자 바로 독립해서 집나가라" "엄마가 하는 고생에 비하면 니는 아무런 고생도 안하고 사는기다" 이런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그렇게 커서 몸고생하지말고 사무직일하라고 하시던 엄마가 막상 대학을 가고 싶어하는거 알고선 공장이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라고 하더군요...남동생은 당연히 대학보내야하고..친척들에게도 제가 취준생일땐 취업안하고 논다고 대놓고 친척들에게 제욕을 하고 동생이 놀때는 입도 뻥끗하지않은 엄마였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는걸 알아도 붓한자루 사준적없는데 동생은 친구따라 악기배우겠다는걸 다들어주고 다사주시더라구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않는구나..진작에 알았어야했는데 늘 자기는 공평하게 키운다며 뻔뻔하게 말씀하시더라구여 제 옷은 남들이 안입는옷 버리는옷 가져와서 입으라하고 동생옷은 번화가에 좋은 옷집가서 사입히는 모습을 보니 대체 나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동시에 그래도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내가 잘하면 사랑해주겠지라는 생각에 매달 알바로 70을 벌어서 50을 갖다바쳤지만 엄마는 그저 저를 atm기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였습니다. 속옷을 사도 제꺼만 쏙 빼고 사오는 엄마에게 속상해서 소리지르다가 뺨을 쳐맞고 왜 내옷은 안사주냐라고 울면서 말하는제게 나는 내돈으로 사입는다 너도 니돈으로 사입으라하는 엄마가 진짜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차라리 계모였으면 이해라도 했을텐데요...엄마가 외로워서 만나는 남자들보고 아빠라고 부르라할때마다 저는 엄마에게 상처주고 싶지않아서 아빠라 불렀고 엄마의 행복을 바랬습니다..그런데 새아빠란 사람들은 저와동생을 성추행하고 성폭력하는 사람이여서 엄마에게 말했지만 진지하게 들어주지않았고 제가 결국 할머니댁으로 갈거라고 선언하니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셨는지 헤어지시더군요...물론 힘들게 살아온 엄마가 이해가 되지않는건 아니라서 어떻게든 버텼지만...결국 착한아이로 살려고 노력하던 제가 참을만큼 참았던 화병이 터져서 집을 나오고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저를 좋아해준 주변 지인들덕에 가까스로 이렇게 아직 살고는 있습니다만...왜이렇게 서글프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지금은 직장다닐 멘탈도 안되는 우울증 불안장애에 몸도 천식, 스트레스성 만성소화불량에 두통에 악몽에 결국 나이31살에 기초수급자 신세가 되었지만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이 세상이 제겐 지옥같은데..자살하면 좀 편하지않을까..늘 그생각만 머리에 가득찹니다...여러분 부디 이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롭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눈물이 멈추지않아서 그냥 끄적여봅니다...가족과 소통도 시도해봤지만 말이 통하지않아서 절망적이네요..앞으로도 명절은 외가댁에 가지않을 생각이고 가족과도 연을 끊고 지내고 있습니다..언젠가 행복해질날이 왔으면 좋겠는데.....기대는 하지않으려고요 길고 지루하고 우울한 글 죄송합니다 그냥 쉐도우복싱이라 넋두리 쓸곳이 필요했습니다...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