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이었을 거야.
내가 열여섯 살. 그러니까…3학년이었나?
한참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가 사그라들고,
이제는 겨울이었는데.
이제 한 달만 기다리면 방학이었고,
우리는 그 즘 기말고사를 치루고 있었어.
근데, 소동이 벌어진 거야.
건축업자들이랑, 선생님들이랑,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랑. (그러니까, 학부형이지.)
이제 막 시험을 앞둔 교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지 뭐야.
이상한 일이었어.
학교 창틀마다 난간을 설치한다니.
난간이 무슨 소용이람.
괜히 돈 지랄이지.
그럴거라면, 급식의 질이나 더 올려줘.
그런 말들이 많았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
물론 공립학교의 재정과 급식의 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난간을 설치한다는 소동은 참 쓸데없는 짓처럼 보였어.
우리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시험기간에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은 어떻게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다는 거였어.
웃기지.
그런 목소리가 컸던 녀석이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안 하기로 소문난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른들은 강경했어.
지금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는 식이었지.
창문에는 결국 난간이 달렸어.
2층부터 4층까지.
무슨 교도소만 같았었어.
겨우 난간이 좀 달렸다고,
학교가 달라보였어.
왜 그런 것처럼.
치아 교정한 아이들처럼 말이야.
학교가 아주 달라 보이는 거야.
등교 할 때마다, 희한하게 색다른 풍경 때문에 뭐랄까.
전학이라도 온 느낌이 들 정도였지.
소동은 금방 사그라들었어.
난간만 달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소동 속에서 기말고사는 지나갔어.
사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
왜 난간을 그리도 급하게 달았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
내 친구 J라는 아이만 빼고 말이야.
J는 호기심이 유달리 강한 소녀였어.
그래서인지 미스터리 같은 이야기를 좋아했지.
UFO, 귀신, 흡혈귀, 미지의 존재, 심해의 생물,
뭐……그런 거.
그러서 였을 거야.
이유모를 난간 사건은 J에게 오래토록 각인 되었지.
J는 난간이 창문에 달린 이유를 그렇게나 궁금해 했어.
물론 J만 궁금해 한 건 아니었고,
수업시간에 난간에 대해서 질문하는 아이들도 있었지.
선생님들의 반응은 비스무리 했었어.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수업 좀 들어라.”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마.”
“……….”
“다음 페이지.”
보통 무시하는 편이었지.
그런데, J가 사회 선생님한테 물어봤을 때는 반응이 아주 달랐어.
사회 선생님은 상고 출신에서 대학 나와 선생님 까지 된 케이스였는데,
아직 젊었고, 젊은 만큼 예뻐 보였어.
학생이란 게 다 그렇잖아?
J가 문득 물었어.
수업은 일시에 멈추고,
선생님은 교단 위에서 가만히 J를 돌아봤어.
우리 반에선 처음 있었던 일이었을 거야.
그 난간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어 본 것은.
사회 선생님이 그 질문을 듣더니,
평소답지 않게 생기를 잃더라고.
평소에는 젊고 예쁘고, 마냥 그렇더니,
습… 맞아 교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살살 웃으면서 들어왔었는데.
J를 보곤 얼굴이 좀 뭐랄까.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표정이랄까?
공기가 차분해지더라고.
분위기가 묵직해지고.
다들 선생님에게 집중이 되었었어.
내 옆에 앉은 아이가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그렇게나 조용해지는 순간이었어.
사회 선생님은 J를 오랫동안 봤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는데,
눈빛을 교환한다고 해야 할까?
조용히 서로만 대화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런 J의 모습을 봤을 때, J는 굳건하게 사회 선생님을 지켜보고 있었지.
그런 J와 눈싸움을 벌이던 사회는 곧 뒤돌아서면서 그랬어.
“너네들 뛰어 내리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농담처럼 넘기려는 식이었지.
교실이 아우성에 휩싸이더라고.
에이~, 뭐야~, 어이없어. 뭐, 그런 식으로.
남들은 그렇게 그 우스게 소리를 무시하면서 넘어갔어.
J만 빼고 말이야.
J는 그 소리를 듣고는 환하게 웃었어.
왜 그렇게 웃었는지는 나중에 알았어.
내가 J에게 물어봤을 때, J는 그랬어.
“신고가 들어왔대.”
학교가 무슨 경찰서도 아니고 말이지.
신고라니.
나는 J를 비웃었어.
내가 J를 비웃으니까, J는 오히려 나를 깔보듯이 말하더라고.
“누가, 밤에 학교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학생을 봤대.”
학생을 봤다고?
거짓말.
나는 거짓말이라면서 부정했어.
그렇잖아.
학교에서 뛰어 내린 학생이 있다면,
우리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누가 다쳤거나, 혹은 죽었다면,
그야말로 학생들의 입을 오르내릴 대사건 중의 대사건이 되지 않았겠어?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거든.
누군가 사라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뭐…다른 학년의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다른 학년의 누군가가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면,
우리에게도 소문은 도착되었을 거야.
소문이란 게 그런 거니까.
“근데 그게 그렇지 않아. 신고가 일곱 건이 들어왔대. 일곱 번이야. 전부 다른 사람이.”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럴 소릴 누가했어?
J에게 궁금한 게 많아지더라고.
내가 물어보니까, J가 그랬어.
“우리 엄마가 일곱 번째, 신고를 넣었어. 나도 봤어. 무슨 여학생이 뛰어내리는 거. 소리도 들렸어. 짧은 비명이 들리고. 곧 철퍼덕…. 그런 소리. 땅이 움푹 파이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살이 터지는 소리였을까? 그게 무슨 소리였든, 나랑 우리 엄마는 분명히 봤어.”
너희 엄마가 일곱 번째 신고를 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라고 묻자, J는 마저 설명했어.
“당직서면서, 전화 받은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어. 자꾸 사람이 뛰어내렸다는 전화가 와서 스트레스라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화단은 멀쩡하고. 벌써 엄마까지 일곱 번째 장난전화라고. 우리 엄마한테도 추궁을 했대. 그러더니 엄마가 기가 찼는지, 전화 끊고 나한테 묻더라?”
너도 봤지?
그렇게 물어봤다니. J는 물론 J의 어머니도 뛰어내리는 소녀를 본 것만큼은 확실 한 것 아니겠어? 나는 J의 어머니를 잘 알아. 많이 놀러가서 뵈었었고, 우리 어머니랑도 친하시니까. 그리고 짐작하는데, J의 어머니는 장난전화를 걸 사람은 아니야. 여학생이 학교에서 뛰어내린다는 그런 소문을 낼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물론 짐작하는 거지만.
근데, 그날 당직 때 전화를 받은 선생님이 누구였을 것 같아?
맞아. 바로 사회였어.
상상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해.
아직 젊은 여자 혼자서.
그 밤에 말이야.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는 거야.
당신이 있는 건물에서 웬 소녀가 추락하는 걸 목격했는데요.
그런 전화말야.
그것도 자신이 선생인데,
학생이 뛰어내린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확인을 해봐야하지 않겠어?
그 캄캄한 학교 화단 길을 걸어서.
그 막막한 창문의 불투명함을 무시하면서.
사람이 떨어졌나,
사람이 떨어졌으면,
죽었나, 살았나.
손전등을 의지하고 걷는 거야.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수가 없지.
사회 선생님에게 동정이 가더라.
J는 그랬어.
“나는 음악 준비실이 의심 되.”
괴담 좋아하는 J를 말릴 수는 없었어.
음악 준비실.
평소에는 자물쇠가 걸려있는 곳인데,
장고나, 꽹과리, 북 같은 게 쌓여있고,
남는 책상, 걸상 몇 수십 개랑
또, 먼지랑. 뭐 그렇게 있는 곳이야.
평소라면 들어갈 일도 없고,
음악 수업 때도 국악 페이지는 넘겨버리곤 했으니까.
한참을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었지.
복도에서 음악 준비실을 들여다보자면,
탑처럼 쌓인 책상 때문에 그 안은 잘 보이지 않는데,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좀 그래.
글쎄…누가 뛰어 내린다면, 왜 그렇게 자물쇠까지 걸린 곳에서 뛰어내리겠어.
불편하게.
“귀신일지도 모르지.”
J는 내 말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나봐.
그래서 논리적이지 못한 그 추락 장면들이 귀신의 소행이라고 믿은 거지.
J에겐 잘 된 일이지.
학교 괴담이라니.
취미에도, 구미에도 맞는 소문이잖아.
심지어 자기가 뛰어내리는 여자를 봤다고도 하고.
그리고 차라리 귀신이 뛰어내렸다는 말은 더 일리가 있어.
왜냐하면, 일곱 명이나 우리 학교에서 뛰어내렸다면,
난간을 설치하는 건축업자 아저씨들 말고, 형사들이 들이닥쳤을 거야.
그래야 옳은 것 아니겠어?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어.
방학 소집이 있기 전까지는.
방학 중에 학교 청소를 하리 위해 모이는 날이었어.
몹시 추웠어.
난간이 이빨에 난 교정틀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지.
창마다 서리가 낀지라, 학교는 온통 뿌옇게만 보였어.
하얀 운동장. 하얀 플라타나스. 하얀 창문.
하얀 듯, 시퍼런 난간.
나는 J랑 같이 갔어.
그 즈음 나는 J랑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었어.
같이 공부도 하고, 부모님들 몰래 방에서 입도 맞춰보고, 그러면서.
이유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건 남들한텐 비밀이었어.
부끄러웠었나봐.
교실에 반 친구들이 다 모였을 때,
우리는 같이 왔으면서도 멀리에 앉아 있었어.
그날 담당이 사회 선생님이었어.
사회는 우리를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둥,
누구는 살이 쪘네, 그만 좀 먹어라.
누구는 더 예뻐졌네, 보기 좋다.
뭐 그런 대강의 인사치레를 하고, 본론인 청소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했지.
그런데 J가 손을 들면서 그러는 거야.
“선생님, 저는 음악실 청소할게요.”
물론 누군간 갔어야 할 곳이지.
하지만 사회는 음악실 청소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처럼,
마치 J가 음악실 청소를 하겠다고 나선 뒤에야
음악실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처럼
“아…. 거기도 청소해야 되지….”
라고 그랬어.
겁이 났었어.
J가 해줬던 이야기도 그렇고, J의 성격도 그렇고.
J는 보나마나 음악 준비실에 가보려는 속내가 뻔했거든.
나도 손을 들었어.
저도 음악실 청소하고 싶어요.
그랬더니, 다들 나랑 J를 놀리더라.
오오~, 너네 사귀냐?
나도 J도 얼굴이 빨갛게 익었어.
J는 화를 냈어.
“니가 왜 따라와!”
J가 너무 화를 내니까,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그렇게 분위기가 식더라.
지금 생각해도 그 불안한 마음이 잊어지질 않아.
정말 불안했어.
J가 어디 멀리 가버리는 것만 같았거든.
불안감은 적중했어.
J는 돌아오지 않았어.
다들 청소가 끝나고, 이제 11시 즈음에 다시 교실에 모였는데, J가 없는거야.
J가 없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태연해 했어.
아니, 태연한 것을 넘어서,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걸 거야.
J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라고 선생님께 말을 했어야 하지만,
그러면, 또 아이들은 오오~ 하면서 나를 놀렸을 거야.
바보지.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걸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못 물어봤어.
그냥 내가 찾아가보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
괜히 놀림을 받을 바에야, 그냥 혼자 해결하자는 생각이었지.
근데 말이야.
J는 없었어.
J는 음악실에도, 음악 준비실에도 없었어.
음악실은 그저 조용하고,
음악 준비실은 당연한 것처럼 자물쇠가 걸려있는데,
책상으로 가려진 그 속을 들여다보아도,
J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거야.
J를 소리쳐 불러도 보고, 음악 준비실 문을 두드려도 보고.
그런데 J는 나타나질 않았어.
이상했어.
내가 착각을 한 걸까, 싶었어.
J는 아까 교실에 있었는데,
내가 J를 못 본건 아닐까. 그렇게 나를 의심해야했어.
아니면 J는 내 행동 때문에 창피해서 집에 훌쩍 떠나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
어느 쪽 이건,
나는 J를 찾아야만 했어.
J를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은 기분인거야.
J의 집으로 찾아갔지.
J의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었어.
“아직 안 왔어. 너랑 같이 있던 거 아니야?”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학생들 마다 있던 시절이 아니었거든.
답답했어.
미치는 줄 알았어.
혹시나 싶어서, J랑 학교가 끝나고 들렸던, 만화책 방에 가서 물어보기도 하고,
분식집에도 들려보고, 나중엔 같이 음악실 청소를 했던 다른 여자애들 집까지 찾아갔어.
J를 못 봤니? 하고 물어봤지.
아이들은 J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J를 정말 좋아하는 지에 대해서만 물어왔어.
두 명에게 물어봤는데, 답은 비슷했어.
“청소 다 끝나고…잠깐 시간 때우다 내려가려는데, 걔는 먼저 교실에 내려간다고 했어.”
먼저 간다고 했다니.
그럴 리 없었어.
J라면 분명 음악 준비실에 가고 싶어 했을 거야.
나는 J를 잘 아는 걸.
J는 분명 음악 준비실에 갔을 거야.
하지만 잠겨있었잖아.
그때. 그러니까, 음악 준비실이 잠겨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번쩍 떠오르더라고.
J는 음악 준비실 열쇠가 없어.
그걸 얻으려면, 분명 선생님에게 물어봤을 거야.
학교로 뛰어갔지.
사회 선생님은 아직 학교에 있었어.
선생님께 물어봤어.
J가 음악 준비실 열쇠를 가져간 적 있었나요? 하고.
선생님은 덤덤했어.
“아니? 왜?”
정말 아니라는 얼굴 알잖아.
그런 얼굴이었어.
“너 걔 좋아하는구나?”
쓸데없는 말만 듣고, 나는 J를 찾는 걸 포기했어.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았어.
J의 집으로 다시 들려볼까도 싶었지만, 글쎄 뭐랄까.
힘이 빠지더라.
그래서 그냥 돌아갔어.
그냥 시간을 죽였지.
TV나 보면서, 만화책이나 보면서.
그리고 밤에 전화가 왔어.
엄마가 나를 찾았어.
J의 어머니라면서 말이야.
긴장이 됐었어.
왜냐하면, 수화기 너머로 콧바람 소리가 거칠게 들려오는 거야.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어.
J의 어머니가 물었어.
“너 J랑 같이 있었지?”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
J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J는 집에 잘 돌아갔나요? 하고 물었지.
그랬더니 J의 어머니가 언성이 높아지더라고.
마치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처럼 말이야.
“야! 걔 아직 집에 안 들어왔어! 너 남자애가 여자애랑 놀았으면, 집에 잘 바래다 줘야하는 거 아니야?”
등골이 오싹했어.
J가 안 왔다니.
J는 어디로 간 거야.
사실대로 말했어, 학교 청소가 끝나고 나는 J와 함께 있지 않았다고,
나도 J가 사라져서 낮에 어머니에게 찾아갔던 거라고.
시간이 10시가 넘었었어.
내 설명이 끝나가려니까,
수화기 넘어서 J의 아버지까지 역성을 내는 소리도 들리고.
전화기를 자기에게 넘기라는 둥, 내게 한소리를 해줘야 겠다는 둥.
일이 보통일이 아닌 것만 같은 거야.
문제는 내가 혼나는 일이 아니었어.
J가 사라진 게 문제지.
J의 부모님과 통화가 끝나고,
곧바로 다시 전화벨이 울렸어.
이번엔 사회 선생님이었어.
선생님도 같은 질문을 했어.
내가 J와 함께 있었던 거 아니냐고.
나는 결백했어.
아니 결백할 것도 없었어,
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J를 찾아다녔던 가장 첫 번째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들 답을 알 수 없으니까, 그 첫 번째의 사람이 마치 용의자가 된 것처럼….
나는 추궁을 당했어.
너무 억울하고, 나도 너무 J가 걱정이 되는지라, 눈물이 터졌어.
그러니까 나중엔 추궁을 하던 선생님이 나를 타이르더라고.
내 걱정을 덜어주려고 노력도 하고.
이미 학생 학생단의 비상연락망이 다 돌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곤 전화를 끊었어.
이대로 있을 순 없었어.
J를 찾아야 했으니까.
우리 부모님도 J가 걱정이 됐었는지,
나와 함께 거리로 나왔어.
아직 J는 어린 소녀였고,
세상이 흉흉하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어.
우리 아버지 입에서 인신매매, 납치 같은 말을 들었을 때는
온몸에 찌르르하고 전기가 통하더라고.
사방팔방으로 거리를 헤매다가,
음악 준비실 생각이 다시 났어.
아까 선생님께 확인은 해봤지만,
내가 직접 들어가 본 것은 아니었잖아.
그래서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다는 심경이 그런 거였을 거야.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나는 나대로,
J를 찾기 시작하면서, 나는 학교로 달려갔어.
달이 크게 뜬 밤이었는데,
학교는 아침의 모습처럼 그렇게 하얗게 질려있었어.
난간이 달빛을 반사하는데, 그게 마치 칼처럼 섬뜩하게 보이는 순간도 있었어.
학교는 정말 어두웠어.
교무실에도 불은 들어와 있지 않았어.
아마, 선생님들도 J를 찾아서 밖을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나는 J가 학교에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어.
꼭 그 음악 준비실에 있어야 할 것이 J라는 확신이었어.
J라면 꼭 그곳에 갔을 거니까.
그리고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나도 봤어.
그 뛰어내리는 여학생.
아니 정확히는 뛰어내리려는 여학생.
달그림자에 묻혀있는 그 여학생의 모습은
왠지 J의 모습만 같았어.
발은 더 빠르게 음악 준비실을 향했어.
음악 준비실은 4층 맨 끝에 복도였고,
나는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계단부터 층을 오르는데,
학교 안이 바깥보다 오히려 더 추운거야.
그렇게 뛰었는데도.
신발로 스미는 그 차가운 기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정말 차가웠어.
계단참에 있는 창으로 들어오는 은근한 달빛만이 유일하게 길을 비춰 줬는데,
내가 4층에 올라서니까, 오히려 그 빛이 내 발목을 잡더라고.
내가 있는 곳은 복도의 끝이었고,
내가 가야할 곳은 그 맞은편 끝에 있는 음악 준비실이었으니까.
내가 그리 겁이 많은 편이 아님에도,
밤의 학교는 너무 으스스했어.
그 하얀 달빛에 비추는 교실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어.
복도가 너무 긴 거야.
달빛이 닿지 않는 복도의 구석에는
꼭 누군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어.
비겁하게, 나는 발을 멈췄어.
저기 저 끝에서 J가 있을 것만 같은데.
아마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얼어붙어 있었을 거야.
그 소리는 날카롭고 차갑게 들리는 쇳소리였어.
딱 한 번.
딱 한 번 ‘쨍!’ 하고 뭔가 쇳소리가 들렸는데,
어렴풋하기도 하고, 먼 것도 같은 그 소리가,
순간 음악 준비실에 있는 꽹과리 소리처럼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음악 준비실만 생각 중이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
그곳에 분명 누군가가 있다.
하고.
J의 얼굴이 떠올랐을 때는 이미 달리는 중이었어.
귀신이 숨어있을 것 같은 그림자도 모두 짓밟고,
침묵하고 있는 교실의 차가움도 무시하면서,
그렇게 나는 복도 끝까지 달렸어.
복도에 내 발소리가 가득 찼어.
내 발소리만.
그렇게 정신없이 음악 준비실까지 왔는데,
문이 잠겨있었다는 사실을 깜빡 한 거야.
분명 J가 안에 있을 것만 같은데.
나는 자물쇠를 괜히 당겨도 보고,
힘으로 문을 뜯어 낼 것처럼 당겨도 밀어도 보고,
발로 차보기도 했어.
그때마다 복도에는 내가 만드는 소리가 가득 울렸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
J를 다시 불러봤어.
“…………….”
복도 창문으로 음악 준비실을 들여다보는데,
먼지가 잔뜩 낀 창문도 창문이지만,
밤이라서 당연히도 낮보다 더 안이 안 보였어.
마지막 남은 수는 하나뿐이었어.
주변을 돌아보는데,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나는 주먹을 들었어.
손이 찢어질 게 겁이 나긴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꼭 그곳에 들어가 봐야 했으니까.
주먹으로 창문을 때렸어.
벼락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창문이 깨졌지.
그때였어.
“살려줘!”
J였어.
J의 목소리였어.
창문 앞에 있는 책상들을 밀어 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J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어.
“누구야!”
라고 찢어지는 비명을 치기도 하고.
“살려줘요….”
하고 울먹이기도 하고.
어둠에 가려서 창문에 있는 유리가 잘 안보였어.
책상을 밀어내면서, 속목부터 팔뚝이 많이 긁혔는데,
그나마 겨울 코트가 그를 가려주고 있기는 했어.
그래도 피가 팔을 타고 흐르는 감각은 책상을 밀어내는 내내 느껴졌어.
결국 책상이 잘 밀리지 않아서,
나는 창문에 올라가서 온 몸으로 책상을 밀어냈어.
그러자 책상들이 무너지면서,
음악 준비실의 풍경이 탁 트여왔어.
내 생각은 맞았어.
J는 있었어.
창문 밖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말이야.
J에게 나야! 하고 소리를 치니까,
J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울어버렸어.
왜 그런 곳에 있느냐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어.
J가 말했어.
“몸이 안 움직여.”
가까이 다가서니까, J는 난간을 쥔 채로 팔을 부들부들 떨더라고.
“누가 자꾸 날 밀어. 나 떨어 질 것 같아.”
J의 허리가 활처럼 휘다가, 다시 일자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
J의 발이 거의 허공에 떠있는 동안에,
J는 난간을 잡은 채 버텨내고 있었어.
정말 누가 밀고 있는 것만 같았어.
창턱에 올라갔지.
올라서서 J의 허리를 안았어.
그랬더니 또 허리가 밀려나는 느낌이 드는 거야.
의외로 아주 힘이 강해서, J의 허리를 쥐고 있는 팔에 힘이 꽉 들어갔어.
J에게 난간을 놓지 말라고 소리쳤어.
몇 번이고.
J는 알았다면서 소리쳤고,
나는 J의 다리부터 하나씩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면서,
J의 허리를 꽉 잡고 있었어.
J를 음악 준비실 안으로 들여놓자,
J는 무너져 내렸어.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J는 기절을 했고,
나는 차가운 시선이 내 목덜미에 꽂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J의 숨결만 가득했던 순간이야.
밖의 달이 아주 커보였어.
아주 밝아보였고.
창밖에는 알 수 없는 소녀가 서 있었어.
그 소녀를 봤을 때, 신고 전화마다, 학생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어.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어.
긴 머리가 바람을 타고 흐르듯 살랑였어.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서 보이질 않았어.
나는 소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시선을 빼앗긴 기분이었어.
움직일 수도,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려 외면 할 수도 없었어.
그래.
그 겨울 추위에 얼어버린 것처럼.
소녀는 속삭이는 것처럼 말했어.
“부럽네…. 나도……. 나도………………………….”
소녀는 그대로 밑을 향해 몸을 던졌어.
그러니까, 나도 J와 같이, 학교에서 추락하는 소녀를 목격한 샘이야.
창밖을 내다 봤을 때, 밑엔 아무도 없었어.
나는 경황이 없으면서도, J를 안고 밖으로 나갔어.
소리쳐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지.
J는 별 탈 없었어.
……그 일로 많이 혼났어.
내가 J를 숨겨주고 있는 줄만 아셨나봐.
J가 아픈데, 내가 J를 숨겨놓고 있었다는 억지 같은 추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저 잘못을 인정했어.
잘못했습니다. 하고 대답을 수백 번은 했던 것 같아.
J는 하루 동안 응급실 신세를 졌고,
나는 J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어.
또 그 학교의 귀신이 J에게 달라 붙을까봐 불안해서 였을 거야.
J는 다음날 말끔한 모습으로 깨어났어.
어제의 일은 아무런 기억에 없다는 듯,
J는 J의 부모님과 선생님, 나의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그렇게 거짓말을 했어.
학교를 청소 중에 몰래 숨어서 잠이 들었다.
나는 J를 숨긴 것이 아니라, 잠이 든 것을 깨우러 왔는데,
자신은 너무 추운 곳에서 잠이 들었던 지라,
몸이 말을 들지 않았다.
J의 핑계 또한 너무 억지 같았어.
어린 아이의 생각에서나 나올 법한 억지였어.
하지만 J의 부모님이 J가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가지 않았다는 것과
나쁜 놈에게 잡혀 엄한 짓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어.
내게, J를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신 건 훨씬 나중이야.
2013년.
아직도 가끔 J에게 물어봐.
“자기, 아직 그때 일 기억나?”
J는 그저 씨익 웃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 옛날에 J가 부모님이랑 선생님에게 모두 거짓말을 하고서 했던 말이 있었어.
J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야.
나는 알아.
J가 응급실을 나와서,
부모님도, 선생님도,
우리와 떨어져 있었을 때,
J가 그랬어.
“너도 봤지?”
그땐 웃어버렸어.
J는 귀신을 본 게 마냥 즐거웠나봐.
죽을 뻔 해 놓고….
그 이후로 그 추락하는 소녀나, 난간에 대해선 잊기로 했어.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 소녀가 왜 내게 “나도….” 라는 말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그저 잊기로 했어.
졸업은 금방 찾아왔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J와 함께야.
J는 아직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말괄량이 아가씨이지만,
이제는 나 없이 귀신을 찾아간다거나 하는 못 말리는 짓은 하지 않아.
다행이지?
하하.
근데 그거 알아?
J를 구하고 그 다음날부터 며칠은
학교에 신고전화가 빗발치듯 들어왔데.
무슨 전화였을 것 같아?
“………어떤 여자아이가 난간을 뜯어내고 있어요. 4층 맨 끝 교실에 매달려서.”
모를 일이지.
난간이라.
그 난간 덕에 J는 산거라고 나는 생각해.
아이러니하게도 난간은 우리가 졸업하고 다다음 해에 다시 분리했어.
난간이 있는 덕에 신고전화가 늘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사회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야.
아직도 그 학교에 있다고 해.
물론 4층 맨 끝의 난간은 귀신에 의해 뜯기는 일은 없었어.
건축인부가 뜯었지.
난간을 제거한 이후에 어떤 학생이 학교에서 투신했다는 말도 없었어.
아마 J같이 당돌하게 그런 곳을 혼자 들어가는 학생은 없기 때문 일거야.
아직까지 의문인건, 하나 있어.
그날 J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갔는지 인데.
글쎄.
그건 J도 기억을 못해.
나도, J도 모르는 일이야.
혹시 모르지,
J는 그저 침묵하고 있는 것 일지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