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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직구주의) 미필자들은 몰랐던, 그 곳의 이면 (3)
게시물ID : military_27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류세아
추천 : 22
조회수 : 198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7/26 13:53:18
폭력적이고 어두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번 게시물들을 읽어주신 분들께, 그리고 이 글 역시 읽어주실 분들께 먼저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이전 글들은 댓글에 제가 링크를 걸어 드릴것이구요,
다시 한 번, 이 글은 100%제가 겪은 실화임을 밝힙니다. 제가 당시 느꼈던 감정 하나하나에도 아무런 가감이 없습니다. 
군필자분들께서는 '이런 군대도 있었구나' 혹은 공감을 느끼시며 당시를 기억해보실 수 있다면 좋겠고
미필자분들께서는 현재는 이런 일이 (없다고는 완벽히 장담할 수 없으나) 거의 없어져가는 편이고, 혹시 겪게 되더라도 이 글에서 읽은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오빠, 동생, 형, 아버지 등이-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혹독한 군생활을 하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왕왕 가지고 있을 트라우마들을 간접적으로 엿보며,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힘들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무시, 비아냥보다는 진심이 담긴 따듯한 한 마디를 건네줄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평어체로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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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소에서 사람의 행동 양식에 관한 실험을 했어. a,b,c,d그룹으로 사람들을 무작위하게 나눈 뒤, a그룹에는 재밌는 tv프로를, b그룹에는 약간의 생각이 필요한 문장을, c그룹에는 매우 어려운 수학 문제를, d그룹에는 아무런 할 일도 주지 않고 약 1시간 뒤 간식으로 커피와 초콜릿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였다고 해. d그룹에서는 물론, 오로지 자신의 취향대로 커피 혹은 초콜렛을 선택했겠지. 하지만, 초콜렛을 선택한 비율은 a그룹에서 c그룹으로 갈수록 현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이건 당분섭취 욕구와 스트레스 간의 상호관계를 증명하는 실험이었지. 

하루 진종일 겁에 질려 살고, 밤에는 혹시라도 코를 골았을까, 5시 30분에 (알람 없이, 선임들이 깨면 안되니까.) 늦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까 등을 생각하며 대강 1~2시간에 한번씩 악몽이라도 꾼 듯 화들짝 일어나는 삶을 이등병 3개월간 휴일없이 살았어. 당연히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쌓였고,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물론 제각각이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래. 위에 설명해놓은 대로 당분섭취였지.

앞서 말했듯이 나는 장거리 달리기의 성적이 좋지 않았어.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성적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살을 빼고 몸 관리를 하여야 했지만, 왠지 그때의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먹어댔던 것 같아. 하루에 x쉘 1박스을 다 먹은 적도 있고, 주머니에 초코바를 몇 개씩 넣고 다니며 먹어댔었지. 선임들은 먹는 나를 볼 때마다 구타했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화장실, 혹은 창고, 세탁실 등에 숨어서 먹었었지. 

살은 점점 쪄올랐고, 일병 즈음에는 내 생애 최고의 몸무게인 95kg에 도달해 있었어.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이 다른 분대의 소대 맞선임이 있었고, 우리 둘은 그렇게 소대의 폐급으로 낙인찍히게 되었지. 폐급이 뭐냐면, 말 그대로 폐기해버려야 될 병사라는 거야. 쓰레기라는 뜻이지.

어느 날, 드디어 진급신고식이 거행되었고, 나는 일병이 되었지. 작대기는 하나 늘어났고, 지금까지 버틴 날수만큼 전역은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너무 멀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어. 그리고 일병이 된다는 것은 선임들이 책임회피를 위해서, 나에게 책임을 덧씌울 수 있을 만큼의 짬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지. 우리는 병장은 놀고, 상병은 감독하고, 일병은 교육과 일을 도맡하 하며 이등병은 교육을 받고 잡일을 하는 식의 시스템이었는데, 보통 이등병이 뭔가를 모르거나 잘 못할 때, 내리갈굼으로 구타당하는 짬이 바로 일병이었던 거야. 

또, 전에 말했던 대로, 나는 후임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어. A가 나를 후임 앞에서 개무시하고, 구타하는 바람에, 후임들 역시 은연중에 날 선임으로서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지. 나 역시 그런 대우를 선임으로부터 받으면서, 계급과 선후임 제도라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고, 후임이던 뭐던 신경쓰지 않고 2년간 지내다가 전역하자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 그래서 이등병 시절 내내 거의 몇 마디도 그들과 대화하지 않았었지. 아주 가까운 선임들 몇하고만 간혹 대화하는 사이였어. 그리고 A가 아직도 나를 이등병 다루듯이 다뤘었기 때문에, 또한 각종 잡심부름과 가혹행위를 후임들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구사했기 때문에, 누군가와 편히 대화하는 그럴 시기가 아직 아니었지.

그리고 내가 일병이 될 무렵, 마지막 남은 A의 선임이 전역하게 돼. 본격적으로 A의 시대가 도래한거야. A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는 분대장이 되었고, 전번에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는 B도 A와 함께 분대의 왕고가 되었지. 왕고는 분대 내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을 뜻해.

B는 나의 후견인으로 임명되었었는데, 이는 내가 이등병이었을 시절에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옆에서 지켜봐 줄 의무가 있음을 뜻해. 물론 대대 방침으로 후견인을 임명했고, 사실 교육은 일병이 도맡아 하는 고로 후견인의 임무는 형식적으로 주어졌을 뿐,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사실 상관없었지. 하지만 B는 좀 달랐어.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상태였거든. 상병 4~5호봉(상병이 된지 4~5개월)이 되어서도 아직 특급전사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그의 6개월 선임이자 맞선임에게 찍혀있었던 관계로 맞선이미 나가기 직전까지 B에게 구타폭행을 일삼았거든. 

예를 들어보자면, B와 B의 맞선임이 같이 사는 방으로 심부름을 간 적이 있었어, 방문에 노크를 하기도 전에 이미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지. B의 죄송합니다 소리가 연신 들렸고, 그의 맞선임이 으르렁대는 것, 뭔가가 날아가서 부딫히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어. 들어오라는 소리에 내가 들어갔지만, B의 선임은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B를 벗은 군화로 구타하기 시작했어. B는 당시 상병 3호봉쯤 되었었을거야. 난 그 광경에 얼어서 잠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결국 경례가 늦었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같이 맞았어야 했지. 행정반(간부와 행정병들이 생활하는 공간, 사회의 행정실 같은 곳)과 얇은 벽 하나를 경계로 두고 있었던 방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행정반에서는 그 구타현장의 소리를 생생히 들으면서도 무시했던 거지.

놀라운 건, B가 가장 좋아하는 선임 역시 그의 맞선임이었다는 거야. 때릴 때 정확한 이유를 가지고 때리고, 때리고 나면 내리갈굼 및 뒤끝이 없었다는 이유지. 그렇게 남자다운 선임이 되는 것이 그의 선망이자 목표라고. 나 역시 B의 맞선임에게 맞는 게 좋았어. A같은 경우 자신이 때리고 나면 자신이 어떤 이유로 나를 구타했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교육해라라고 그의 후임들에게 말했고, 그럼 난 같은 이유로 5~6번 중첩해서 맞아야 했는데, B의 맞선임은 일단 구타하고 나면 그 이후는 입을 닫고 더이상 뒤끝이 없었으니까. 

여튼, 이런 이유로 B역시 짬이 깨나 찰 때까지(명확히 말하면 왕고가 될 때까지) 선임층으로서 무시를 당했었고, 비슷한 일을 당하는 나에게 어떤 연민 같은 걸 느꼈었던 모양이야. 자신이 후견인으로서 챙겨주겠다며 이런저런 지식도 알려주고 해서, 일병이 되었을 때쯤 난 작저지역의 모든 작전예규를 거의 완벽하게 숙지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건 그의 맞선임이 전역하기 전까지만이었어.

A와 B가 공동으로 왕고가 되고부터 A의 횡포는 극에 달했고, B는 방관했지. 자신은 조용히 전역하고 싶다고 했었나. 하지만 채 한 달도 지나기 전 사건이 일어나. 내 밑의 후임 두 명 정도가 A가 시킨 일은 깔끔하고 완벽하게 처리한 반면 B가 지시한 일은 놓치거나 정확히 처리되지 않았었던 거지. 이에 B는 격분했고 거의 열등감에 가까운 분노를 일으켰어. 난 처음으로 B가 구타 가혹행위를 하는 것을 보았지. 일병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어.

때마침 부대는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대대 자체 물품사열이 예정되었기 때문이지. 군대에서는 자신이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물품들이 있었는데, 장비, 군장, 군장내부품목, 침낭, 더블백, 방독면 등등이 그것이었어. 우리 부대의 특성상 캠프를 자주 옮겨다녀야 하고, 따라서 이것들을 이리저리 자주 옮겼었는데 그로 인한 분실, 파손 등등이 많다고 대대 군수과(군용품 나눠주는 곳을 말해)에서 설문을 했었던거지. 자리를 자주 옮기다보면 놓고 가는 물건도 있을 수 있고 물론 잃어버리는 것도 많겠지? 그래서 우리는 뭔가를 줏을 때마다 그걸 잘 보관해놓고 분실에 대비했었는데 그 상태가 얼마나 과했냐면 때에 따라서는 방탄모 분실, 방독면 분실, 심지어 탄피 분실에도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것저것 많이 짱박아놨었지. 탄피를 숨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묻는다면 가능해. 정확한 메커니즘은 설명하지 않겠지만 미군의 탄피와 국군의 탄피가 비슷해서 때로 혼동했던 모양이야. 미군훈련장을 종종 사용했었거든.

매일 이걸 사열해라 저걸 사열해라 하며 정비시간 없이 바쁘게 지내게 되었지만, A와 그 후임들(고참층)은 편안히 놀고 있었지. 내 후임들은 빠릿한 체격과 나름의 편애 탓에 의외로 작전예규 및 각종 잡지식에 있어서 부족했고, 결국 나와 내 맞선임 둘이서 엄청난 양의 일을 처리해야 했어. B는 스스로 나서서 '도와준다'며 우리의 일과를 감독했고, 틀린 것이 있으면 지적했지.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난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B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자신보다 후임인 상병층마저 놀고있는 걸 보고 어느날 B는 광분해.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인지라 후임들과 친하지 않고, 후임들도 그를 딱히 '선임이다'라고 크게 인정해주지 않았던거지. 히스테리컬해진 B에게 가혹행위를 당해야 했던 건 당시의 일병층, 내 맞선임과 나, 그리고 몇몇이었어. 

'라인을 탄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거야. 서울 출신 라인, 경상 출신 라인, 체대 출신 라인 등 우리 분대에도 라인이 있었지만, 난 서울 출신도, 경상 출신도, 체대 출신도 아니었지. B가 맘놓고 건드릴 수 있는 건 그렇게 나로 한정되어버렸고, 때마침 난 폭식으로 살이 더부룩하게 쪄 있었던거지.
B는 나에게 그런 점을 핑계대며 가혹행위를 했고, 바뀐 B가 적응되진 않았지만, 어쩌겠어. 난 결국 하나뿐이었던 내 후견인에게도 그렇게 버림받았지.

일병이 되고 아주 초기 2~3주간의 이야기를 풀어봤어. 일병의 이야기는 내 군생활의 이야기 중 가장 격변기여서 그런지 앞으로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만, 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자니 시간도 부족하고,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그러니 번외 격으로 B에 관한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고 이야기를 접을게.

우리 분대는 4개 방에 각 3~4명씩 생활하고 분대원은 최소 12~최대 14명으로 딱 정해져있지는 않은 숫자야. 들어오는 신병의 양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
그 중 1개 방만이 행정반의 옆으로, (위에서 내가 말한 B가 구타당하던 방이야) 동떨어져 있었는데, 우린 부식(보급으로 나오는 간식)이 나오면 그 방의 인원수만큼을 계산해서 가져다줘야 했었지. 명확히 말하자면 동떨어진 방의 방장(방에서 최고 계급)이 높은 계급이면 가져다줘야 하고, 밀집된 3개 방에 비해 낮은 계급이면 동떨어진 방에서 알아서 그 방의 방졸(방에서 가장 낮은 계급)을 시켜 가져오는 것이 예의였지.

어느날 x드콘이 보급되었고, 동떨어지 방의 방장은 B여서 분대의 최고참이었지. 따라서 밀집된 방에서 당연히 들고와야 했지만 들고오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다 먹었는지 한 개도 남지 않았지. 그럼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B에게는 단순한 부식을 먹고 못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로 다가왔었는지 엄청나게 분노했지. 사실 A가 3~4개를 먹었었고, 난 그럴 걸 미리 대비해서 내 부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지만, 다른 누군가가 더 많이 먹어버린 모양이야. 뭐 어쨌든 그렇게 분노한 B는 모든 일병-이등병을 불러서 갈궜고, 그 소식을 들은 A는 마치 그렇게 재미있는 일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양 자신의 방으로 일이등병을 모아 누가 자신의 몫 이상을 먹었느냐며 예의도 없는 놈들이라고 구타했지. 물론 난 A에게 찍혀 있었기에, 이런건 갓 일병이 된 일병 졸, 즉 너가 잘 책임져야되는 일 아니냐며 특별히 더 맞았었어. 

이건 x드콘 사건이라고 불리우며 그 당시의 일이병들 사이에서 이후까지 회자되었었지만, 그래도 B가 날 챙겨주고, 잘 대해주던 시간을 기억하던 나에게 있어서는 (사실 내 밑의 애들이 정이 없고 선임을 보는 눈초리가 맘에 안든다며, 내가 무시당할 때에도 날 위해주곤 했지) 변해버린 B가 너무 아쉬워지는, 아련한 사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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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부대마다 나름의 특수성이 있다 보니 글을 읽으시다 저와 같은 부대에서 생활하신 분들은 '아 이게 어디 부대 이야기구나'라고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직접 부대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만큼 '이 부대의 이야기이다'라는 말씀은 자제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고, 이제 와서 다시 부대와 싸움을 하거나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저로 인해 부대 혹은 이제 제가 있었을 당시와 관련도 없을 그 부대의 간부님들, 병사분들에게 불이익이 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댓글은 작성자의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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