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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스압]드라마로 보는 고려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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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춘추관
추천 : 15
조회수 : 14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06 19:03:59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10906

 

 

태조 (kbs 태조 왕건)

고려 제1대 왕(재위 918∼943). 궁예의 휘하에서 견훤의 군사를 격파하였고 정벌한 지방의 구휼에도 힘써 백성의 신망을 얻었다. 고려를 세운 후,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고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았으며 신라와 후백제를 합병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수달이 찾는 견훤과 관심법으로 모욕감주는 궁예를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한 최후의 주인공. 부인 29명. 그리고 본격 최수종 천하의 시작... 이전의 철종부터 이제마, 장보고, 대조영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최근에는 김춘추로 환생. 단군역활만 하면 국사책에 수록될 것 같다고..

 

혜종 (kbs 제국의 아침)

고려의 제2대 왕(재위 943∼945). 태조 왕건의 맏아들로 즉위 후, 이복동생 요·소와 왕규의 왕권 다툼 속에서 곤란을 겪었다.

@태조 왕건에서는 안정훈 씨가, 제국의 아침에서는 노영국 씨가 역을 맡았는데 캐릭터가 확 바뀌어 버린 사례로 꼽힌다. 태조 왕건에서는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울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한 정력적인 무인 스타일의 태자로 묘사되는데 반해서 제국의 아침에는 몇 년사이에 심신이 상하기라도 한건지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역사에서도 후삼국통일에 무공을 세웠을 만큼 걸출한 임금이었으나 즉위후에 다른 외척이나 호족세력에 눌려서 늘 시달렸다.

정종[定宗] (kbs 제국의 아침)

고려 시대의 제3대 왕(재위 945~949). 정적을 제거하며 왕위에 올랐다. 서경으로 천도하려 했으나 개경 세력의 반발과 백성의 원성으로 실패하였다. 거란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광군을 조직했으며 불교 중흥에 힘썼다.

 

광종 (kbs 제국의 아침)

고려 제4대 왕(재위 949∼975). 태조의 넷째 아들이며 정종의 친동생이다.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실시하는 등 개혁정책을 통해 많은 치적을 쌓았다.

@김상중씨가 연기. 청운의 꿈을 품고 왕위에 오른 光宗이 차츰 정치판에 찌들어 狂宗으로 변해감. 여담으로 당시 고려인 남자 평균키가 154cm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광종은 무려 188cm(!!!!).

 

경종 (kbs 천추태후)

고려의 제5대 왕(재위 975∼981). 광종의 장남. 어머니는 대목왕후 황보씨. 즉위해 전시과를 제정했다. 뒤에 정치를 등한시하고 음탕한 생활에 빠져 소인과 사귀기를 좋아하고, 군자를 멀리하였다.

@최철호 씨가 열연. 강한 돌아이인상을 남기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풍악(부왘)을 울려라의 주인공

 

성종 (kbs 천추태후)

고려 제6대 왕(재위 981∼997). 내치·외교에 많은 치적을 남겼다. 내치 중에서는 관제개혁을 들 수 있고 유교를 국가의 지도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했다. 요나라 군대가 침입하자 서희를 요군의 진영에 보내서 외교담판으로 물러가게 했다.

@조선 성종과 여로모로 흡사. 불멸의 이순신 와키자카로 유명한 김명수씨가 연기.

 

목종 (kbs 천추태후)

고려 제7대 왕(재위 997∼1009). 경종의 맏아들. 관리 봉급제도인 전시과를 개정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치적이 많았다.

@동성애자였다는 게이왕;;

 

현종 (kbs 천추태후)

고려의 제8대 왕(재위 1009∼1031). 거란 성종의 침입에 참패하였으나 끝내 친조를 하지 않고, 6성 요구도 거절하였다. 다시 거란의 장군 소배압이 침입하자, 강감찬장군이 이를 섬멸하여 물리쳤다. 이후 거란과의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기민(飢民) 구제에 힘썼으며 불교와 유교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대장경의 제작에도 착수, 6천 권의 대부분을 완성하게 하였다.

@오오. 귀주대첩! 사생아 태어나 고아로 이후 김치양 일파의 암살위협 속에서 성장했다 즉위후 고려 왕실의 중시조라 할 수 있는 임금. 태조 왕건의 아들들에서 시작된 직계 왕통은 사실 목종대에서 끊어졌다. 그러나 성종의 아내가 광종의 딸이고,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현종의 부인으로, 광종의 혈통은 모계 쪽으로 현종의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일생 동안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나 이것을 모두 극복하고 고려왕조의 전성기를 연 중흥의 군주.

 

덕종

고려 제9대 왕(재위 1031∼1034). 압록강구부터 동해안의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축성하게 하여 동여진인과 거란인들의 투항이 속출하였다. 국자감시를 실시하고 현종 때 시작한 국사편찬사업을 완성하였다.

정종[靖宗]

고려 시대 제10대 왕(재위 1034~1046). 거란 침입 이후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1044년 천리장성을 완성시켰다. 예성강의 병선 180척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여 서북계 주진의 창고에 보관하게 하는 등 국방 정책에 힘을 기울였다.

문종

고려의 제11대 왕(재위 1046∼1083). 법률 제정으로 내치에 힘썼다. 불교를 신봉했고, 유학도 장려하였다. 동여진의 침입을 토벌했고, 송나라의 선진문화를 수입했다. 고려시대 중 가장 찬란한 문화황금기를 이룩했다.

@고려시대판 세종대왕.

 

순종

고려 제12대 왕. 1054년(문종 8) 왕태자에 책립되었고, 1083년 문종이 죽자 즉위하였으나 그해에 죽었다. 능은 성릉(成陵)이다.

@재위 3개월만에 죽고 동생 선종에게 왕위를 물려줌.

 

선종

 고려의 제13대 왕(재위 1083∼1094). 군비를 강화하여 요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며 송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였다. 유학을 장려하였으나, 불교 또한 신봉하여 국청사를 짓는 등 토목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하였다.

헌종

고려시대의 제14대왕(재위 1094∼1095). 즉위 후 이자의의 난이 있었으나 곧 평정하였다. 신병으로 왕위를 숙부 계림공(鷄林公) 희(熙:숙종)에게 물려준 뒤, 후궁에서 지내다가 14세에 요절하였다.

@고려시대판 단종.

숙종

 고려 제15대 왕(재위 1095~1105). 주전관을 두고 주화인 은병을 만들어 통용하게 하였으며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통용하게 했다. 불교를 신봉하여 많은 불회를 열었으며 평양에 기자의 무덤을 만들고 묘사를 세웠다.

@고려시대판 수양대군.

예종

고려 제16대 왕(재위 1105∼1122). 윤관(尹瓘)에게 여진(女眞)을 경략하게 하여 함흥평야에 9성을 쌓았다. 학교를 세우고 국학(國學)에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하는 등 학문을 진흥시켰다.

인종 (kbs 무인시대)

고려 제17대 왕(재위 1122~1146). 이자겸이 난을 일으키자 반란을 평정하고 이자겸을 귀양보냈다. 서경에서 묘청이 난을 일으켰으나 김부식을 서경 정토대장으로 삼아 이를 평정했다. 주 · 현에 학교를 세웠으며, 서적소를 설치했다. 김부식에게 명하여《삼국사기》50권을 편찬하게 했다.

 

의종 (kbs 무인시대)

고려의 제18대 왕(재위 1146~1170). 1170년 정중부 ·이의방 등이 난을 일으켜 폐위되었으며, 거제도로 쫓겨났다. 1173년(명종 3) 김보당의 복위운동이 실패하자 계림에 유폐되었다가 살해되었다.

@유배중에 생선내장을 씹어먹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연기가 인상적. 이의민에게 등뼈가 꺾여져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명종 (kbs 무인시대)

고려의 제19대 임금(재위 1170∼1197)으로 1170년 무신정변 이후 정중부 등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1197년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었다.

@무신들의 허수아비. 안습한 임금.

 

신종 (kbs 무인시대)

고려 제20대 왕(재위 1197~1204). 1154년 평량후에 책봉되었다가 1197년 최충헌이 명종을 폐함으로써 뒤를 이어 옹립되었다.

 

희종 (kbs 무인시대)

고려 제21대 왕(재위 1204∼1211). 왕 즉위의 공으로 권신(權臣) 최충헌을 문하시중(門下侍中) ·진강군개국후(晉康郡開國侯)에 봉했으나 횡포가 심하자 그를 죽이려다 실패, 폐위되어 강화(江華)로 쫓겨났다. 이후 복위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유배되어 죽었다.

@거사실패후 폐위되고 유배기간이 무려 26년 이었다고..

 

강종 (kbs 무인시대)

고려 제22대 왕(재위 1211∼1213). 1197년 최충헌에게 쫓겨 강화도로 갔다. 소환된 후 희종(熙宗)을 폐한 최충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올랐다.

@강화도에서 14년간 유배생활후 60세에 즉위했으나 2년만에 죽었다.

 

고종 (mbc 무신)

고려의 제23대 왕(재위 1213∼1259). 재위 기간에 거란·몽골 등 북방민족의 침입을 받았다.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에 천도, 28년간 항쟁했다. 팔만대장경 조판, 유학 장려 등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7번에 이르는 몽고침략등 치세는 다사다난. 고려왕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무려 46년 2위는 문종으로 37년

 

원종 (mbc 무신)

고려 제24대 왕(재위 1260∼1274). 개경 환도를 선언하자 삼별초의 항쟁이 일어났으며 여원(麗元) 연합군에 의해 평정되었다. 원나라에서 매빙사(妹聘使)가 오자 결혼도감을 설치, 원성을 샀다.

@강화도 섬멀티에서 나와 몽고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환도했다. 무신집권은 끝났으나 이후 원 간섭기시작. 

충렬왕 (mbc 무신)

고려 제 25대 왕(재위 1274~1308). 원나라 세조의 강요로 일본 정벌을 위한 동로군을 2차례에 걸쳐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원의 지나친 간섭과 왕비의 죽음 등으로 정치에 염증을 느껴 왕위를 선위했으나 7개월 만에 복위해야 했다. 음주 가무와 사냥으로 소일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다가 재위 34년 만인 1308년 죽었다.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사위.

충선왕

고려 제 26대 왕(재위 1308~1313). 1298년 왕위에 오르자 정방을 폐지 등 관제를 혁신하고 권신들의 토지를 몰수하였으며 원나라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7개월 만에 폐위되었다가 1308년 충렬왕이 죽자 다시 왕위에 올랐다. 정치에 싫증을 느껴 원나라로 가 전지(傳旨)로써 국정을 처리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각염법을 제정하여 사원과 권문세가의 소금 독점에 의한 폭리를 막았다.

@쿠빌라이칸 외손자

충숙왕

고려 제 27대 왕. 1313년 왕위에 올랐으나 심양왕 고(暠)가 왕위를 노리고 그를 헐뜯어, 5년간 연경에 체류해야 했다. 1325년 귀국하였으나 눈과 귀가 멀어 정사를 못 돌본다는 조적 일당의 거짓 고발 때문에 정사에 더 염증을 느껴 1330년 태자 정에게 왕위를 넘기고 원나라에 갔다. 충혜왕이 폐위되자 1332년 복위하였으나 정사는 잘 돌보지 않았다.

 

충혜왕 (sbs 신의)

고려 제 28대 왕. 1330년 왕위에 올랐으나 방탕하고 주색을 일삼아 왕위를 다시 부왕 충숙왕에게 넘긴 뒤, 원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1339년 복위하였으나 방탕한 짓을 일삼았다. 이운 등이 원에 상소를 올린 끝에 1343년 게양으로 귀양을 떠나 그곳에서 죽었다.

@한국사의 최고의 막장 킹. 희대의 색마. 드라마에서도 폭력적이고 주색을 밝히는 연기

 

충목왕 (mbc 신돈)

고려 제 29대 왕(재위 1344~1348). 1344년 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므로 어머니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 보흥고 · 내승 · 응방 등을 철폐하고 서연(書筵)을 열었다. 또한 권신들이 독점하였던 녹과전(祿科田)을 소유자들에게 반환하였다.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각 도에 양전(量田)을 실시하였으며, 진제도감을 설치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등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충정왕 (mbc 신돈)

고려 제 30대 왕(재위 1349~1351). 1349년 충목왕을 이어 왕으로 책봉되었다. 외척들의 세도 정치와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국정이 문란해지자 충목왕의 후계자로 함께 물망에 올랐던 강릉대군에게 민심이 쏠렸다. 1351년 윤택, 이승로 등은 충정왕 폐위를 원나라에 요청하였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그는 강화도로 추방되었다가 다음해 독살되었다.

 

공민왕 (mbc 신돈)

고려 제31대 왕(재위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통해 몽골풍, 몽골 연호·관제를 폐지했다.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영토를 회복했다.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 정치를 펼쳤다.

@고려 부흥을 꾀한 개혁군주였으나 내우외환의 위기와 왕비마저 죽고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도 암살로 생을 마감. 신돈에서도 후반의 광기어린 연기가 인상적.

우왕 (kbs 용의 눈물)

고려 제32대 왕(재위 1374∼1388). 신돈(辛旽)의 시녀 반야(般若)의 소생. 이인임(李仁任)의 유배로 정치적 지지기반을 잃자 강릉에 유배된 후, 아들 창왕(昌王)과 함께 이성계에 의해 살해되었다.

@우왕ㅋ굳ㅋ과는 전혀 관계없다..

창왕 (kbs 용의 눈물)

고려의 제33대 왕(재위 1388~1389).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후 아버지인 우왕이 강화도로 추방되자 9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토지제도를 바로 잡고 전선법(銓選法)을 복구하기도 했다. 이성계에 의해 폐위된 후 강화도에서 죽었다.

 

공양왕 (kbs 용의 눈물)

고려시대 최후의 임금(재위 1389∼1392). 조정은 친원파와 친명파 대립했다. 친명파 이성계는 창왕을 폐위, 공양왕을 즉위시켰다. 정몽주 중심의 구세력에 이어 이성계에게 실권을 빼앗겼고, 폐위당했다.

@유배후 강원도의 여러 유배지를 전전하다 간성에서 왕세자 왕자등과 함께 교살당했다. 이로써 고려는 34대왕 474년으로 막을 내렸다

 

 

 

오늘의 유머 http://todayhumor.co.kr 

 

※내용설명 인용및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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