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시간 내내 아가씨는 나에게 히데코였고 나는 신사였다. 아주 노골적이고 야하고 치명적인 이야기를 2시간 30여 분간 내게 낭독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른 침이 넘어가고 모든 신경이 곤두서고 누가 나를 볼까 두려워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나에게 히데코는 능숙하게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히데코가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나는 노신사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액을 들여 사들이고 싶은 이야기. 그것이 '아가씨'였다. 그리고 그 저자 박찬욱은 코우즈키가 되어 아가씨 히데코가 이야기를 완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잘 훈련시켰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노신사였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히데코의 낭독을 듣기 위해서라면 그녀의 10분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