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냥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흔하고 유치한 괴담 중 하나였다.
'당신의 기억을 1억원에 삽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당신의 친구 중 한명에 대한 상호간의 기억이 모두 사라집니다.
그 기억에 대한 대가로 1억원이 24일 후 일괄 지급됩니다.
사라진 기억은 절대 되돌릴 수 없으며, 버튼을 누른 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기억을 지우시겠습니까?'
그 아래엔 옛날 버디버디 때나 유행하던 버튼태그가 달려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코웃음치며 페이지를 넘겼겠지만,
8000만원이 조금 넘는 빚을 떠안고 사는 지금
친구 한명에 대한 기억으로 1억원을 받는 달콤한 상상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1억원. 빚을 전부 갚고도 2000만원이라는 목돈이 남는 큰 돈.
친구 하나 팔아먹는 값으론 충분한 돈이다.
그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성자는 분명 스스로 돈 벌어본적도 없는 중고딩이 분명할 것이다.
사회생활을 해봤다면 1억원이 아닌 천만원 정도로 설정했겠지.
그래야 친구 하나를 파는 가격으로 수지가 맞아떨어진다.
눌러볼까. 잠깐 고민했다.
분명 누르면 '당신은 낚이셨습니다.' 같은 유치한 팝업창이 뜨겠지.
하지만 이런 인터넷 괴담을 접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혹시나 하는 묘한 기대감이 사람이 낚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버튼을 눌렀다.
……
'기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먼저 만들어 주세요.'
신선하다.
내가 친구 없는 건 어떻게 알고 또 이런 문구를 준비했을까.
아니면 '현대인에게 진정한 친구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비판적인 메세지를 담은 글일까.
하긴, 애초에 정말로 아끼는 친구가 있는 놈이라면 생각없이 이런 걸 누르진 않겠지.
1억원이라는 돈이 생기는 상상이 너무 달콤했기 때문일까.
그 글에 대한 기억은 이상하게도 몇주가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친구를 만들고 다시 눌러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불가능하다.
내가 30년동안 살면서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다.
난 늘 혼자였다. 내가 이상한건지 세상이 이상한건지 내 주위엔 늘 사람들이 없었다.
외로웠다. 미치도록 외로웠는데, 그걸 티내면 오히려 더 날 피할까봐 외로움에 익숙한 척 했다.
결국 30년동안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인생. 그게 내 인생이었다.
난 소비자면 소비자지 절대 판매자는 되지 못한다.
갑자기 우울해졌다. 그냥 죽어버릴까.
아무도 내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이다.
핸드폰은 마지막으로 연락온게 언제인지도 가물가물 하고,
이 곳으로 이사온 후로 내 집에 온 다른 사람은 배관공 뿐이었다.
나에겐 친구도 돈도 미래도 희망도 없다.
계속해도 이런 삶 뿐이라면 그냥 죽는게 낫지 않을까.
냉장고에 있던 수면제를 꺼냈다.
예전에 치료받을때 안먹고 모아뒀던 걸 보면
언젠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질때가 올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정도를 먹어야 죽을 수 있을지 몰라서 그냥 있는 건 전부 쑤셔넣고 삼켰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울지 않았던 핸드폰이 울렸다.
'고객님의 통장으로 52억원이 입금되었습니다.'라는 번호없는 문자가 와있었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