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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 궁극의 조선시대 화약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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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사일런트힐
추천 : 13
조회수 : 296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0/02 17:16:46

화차

우리나라의 전통무기 중에는 외국에서도 주목하는 존재가 있다. 다름 아닌 거북선과 화차(火車·Hwacha)다. 거북선은 이미 1880년대부터 관심을 모아왔지만 화차는 지난 10년 사이에 갑작스럽게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화차는 지난 10여년 사이 외국에서 제작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II] 확장팩’이나 [문명 5]등 역사 관련 게임에서 한국의 단골무기처럼 등장한다. 게임으로 먼저 세계에 그 존재를 알린 우리나라의 화차는 지난 2002년과 2008년 임진왜란을 다룬 영국의 책에 정식으로 소개되면서 지명도가 더욱 높아졌다.

 

영화 [신기전]에 사용된 소품 화차의 발사 장면. <출처: 영화 [신기전] 홍보자료>

 

 

외국에서도 유명한 화차

사무라이 연구가로 유명한 영국의 스테핀 턴불(Stephen Turnbull)이 쓴 [사무라이의 침략, 한일전쟁 1592-1598](Samurai Invasion: Japan‘s Korean War 1592-1598)에는 화차의 그림과 복원 모형이 수록되어 있다. 이때부터는 게임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에도 우리나라의 화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08년 10월의 미국의 다큐전문채널인 디스커버리의 [미스버스터MythBusters] 프로그램에 화차가 깜짝 등장해 한국인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다큐 속에서 제작진이 직접 복원 제작한 화차에 실린 신기전 100발은 약 500야드 거리를 날아가는데 성공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사람 모형 전부에 명중탄을 날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신기전이 일정한 탄착군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줘 병력이 밀집되어 있다면 충분히 타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디스커버리 채널뿐만 아니라 역사와 군사 다큐를 다수 방영하는 히스토리 채널에서도 15세기 한국의 화차를 등장시킨 일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재현한 조선시대 화차에서 발사한 신기전도 500야드를 너끈히 날아가 가상 표적인 풍선과 수박을 맞추는데 성공했다.

 

 

다연장로켓의 원조, 신기전 화차

이처럼 외국 게임이나 다큐에서 주로 소개하는 화차는 이른바 신기전(神機箭) 화차다. 신기전 화차는 길이 2.31m, 폭 0.734m의 수레 위에 일종의 소형 로켓에 해당하는 길이 1.455m의 중신기전 100발을 탑재ㆍ발사할 수 있도록 만든 무기다. 신기전 화차는 로켓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연장로켓(MRL : Multiple Rocket launcher)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신기전 화차는 1451년을 전후한 시기에 세종의 아들인 문종(이향, 1414~1452)이 개발했다. 신기전 화차는 수레의 밑바닥이 바퀴보다 더 위에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발사 각도 조절이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수레 바퀴의 축 위에 바로 바닥이 위치한 일반적인 수레라면 약 20도 이하의 발사 각도만 나오지만, 문종이 개발한 신기전 화차는 수평사격인 0도부터 사거리를 최대한 연장할 수 있는 최대 43도까지의 사격각도의 조절 범위가 크다. 현대의 로켓과 달리 자체적인 제어장비가 없는 전근대 로켓들은 발사 각도와 화약의 양으로 사거리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발사 각도 조절이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신기전 화차가 로켓 운용에 적합하게 설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행주대첩기념관의 문종 신기전 화차의 복원 모형. <사진: 김병륜>

국조오례서례의  화차. 위가 수레이고 왼쪽 아래가 신기전화차용 신기전기, 오른쪽 아래가 총통화차용 총통기의 모습이다.

 

 

기록문화가 뒷받침한 신기전 화차의 가치

조선의 신기전 화차는 1474년에 출간된 [국조오례의서례 國朝五禮儀序例]라는 책에 상세한 규격과 세부 도면이 남아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만큼 정밀한 복원 모형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기전의 경우 0.3mm에 해당하는 리(釐) 단위로 부품 규격이 남아 있고, 화차도 3mm급에 해당하는 분(分) 단위로 규격이 적혀 있다. 전 항공우주연구원장 채연석 박사가 이미 1979~1980년 신기전 화차를 정밀 복원한 모형을 제작해 행주대첩기념관에 전시할 수 있었던 것도 충실한 기록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에 비해 중국 명나라의 유사한 무기인 가화전차(架火戰車)나 화궤공적차(火櫃攻敵車) 등은 기록이 매우 부실한 편이다. 가화전차나 화궤공적차는 1300년대 말에 출간되었다는 [화룡경 火龍經]에 실려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세월이 흐르면서 내용이 많이 보충되어 현재 전해오는 본문과 그림이 정확히 언제 것인지 불명확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 신기전 화차와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따지기에는 애매하다는 뜻이다. 1621년에 완성된 중국의 [무비지武備志]에는 가화전차나 화궤공적차의 그림과 설명이 확실하게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조선의 [국조오례의서례]보다 147년이나 늦게 만들어졌을 뿐만 구조에 대한 설명도 빈약하고 규격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다.

 

중국 [무비지]의 가화전차.

중국 [무비지]의 화궤공적차.

 

 

외국의 다큐에서 수레 위에서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동아시아권 무기를 소개하면서 주로 한국의 신기전 화차의 기록과 그림을 참조하는 것도 그만큼 기록이 충실하고 시대도 앞서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중국에서 수레에 탑재해 로켓을 발사하는 무기를 우리나라보다 먼저 개발했을 개연성은 높지만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단정할 만큼 중국측 기록이 명확하지 않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신기전 화차와 완전히 동일한 무기는 중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히 가화전차, 화궤공적차를 비롯한 중국의 유사 무기들은 대략 0~20도 정도의 사격만 가능해 발사 각도 조절 능력 면에서 신기전 화차보다 성능이 다소 떨어진다.

 

 

의외로 다양했던 화차의 종류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화차는 신기전 화차 하나뿐이지만 실제로 조선시대에 사용한 화차의 종류는 훨씬 다양하다. 한국 화약무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최무선(1325~1395)이 제작한 무기 중에도 화차라는 무기 이름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화차가 어떤 무기인지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최무선의 아들인 최해산(1380 ~ 1443)도 화차를 개발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최해산 화차에 대해 “철령전(鐵翎箭) 수십 발을 여러 동통(銅桶)에 넣어 작은 수레에 싣고 화약으로 발사하면 맹렬하여 적을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통은 구리로 만든 총통을 의미하고, 철령전은 총통에서 발사하는 중ㆍ대형 화살을 의미하므로 최해산 화차는 총통 여러 발을 탑재하는 화차였음을 알 수 있다.


문종은 신기전 화차 외에 총통 화차도 개발했는데 사전총통 50문을 탑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전총통은 ‘화살 4개용 총통’이라는 의미인데, 이름그대로 작은 화살(세전) 4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행주대첩기념관에 전시된 문종 총통 화차의 복원 모형. <사진: 김병륜>

 

 

임진왜란 때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1542~1607)은 승자총통 15문을 탑재한 화차를 개발했다. 역시 임진왜란 때 실무 관료였던 망암 변이중(1546~1611)이 개발한 망암 화차는 승자총통 40문을 탑재할 수 있고, 3면으로 사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화차의 운용과 개발은 계속되었다.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이서(1580~1637)가 1635년에 완성한 [화포식언해 火砲式諺解]라는 책에는 중신기전 1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중신기 화차와 주자총통 50문을 탑재할 수 있는 화차가 수록되어 있다.


1674년에는 허적(1610~1680)이 조총 50문을 탑재하는 화차를 개발했다. 정조ㆍ순조대 주요 요직을 역임한 관료이자 순조의 외삼촌이었던 박종경(1765~1817)이 1812년 무렵 편찬한 [융원필비 戎垣必備]에도 조총을 10연장으로 연결해 5층으로 배치한 화차만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 신경준 화차도 있지만 이름만 화차일뿐 대형 총통을 탑재하고 있어 다른 화차와는 구별되는 완전히 별개의 무기다.

 

조선시대 화차의 종류.

 

 

총통 화차가 더 널리 쓰인 이유

이처럼 조선시대 전체를 놓고 보자면 신기전 화차보다는 총통 화차 계열이 더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게임이나 다큐 프로그램에 주목받는 것은 주로 신기전 화차지만 실제 역사에서 더 중시되었던 것은 총통 화차였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기전 화차는 실전 무기로 보았을 때는 적지 않은 제한사항이 있었다. 신기전 화차는 기본적으로 중신기전 혹은 소신기전 즉 로켓을 사용하는 무기다. 전근대 로켓은 정확도에 문제가 많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화약 소모가 심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17세기 초의 기록을 기준으로 신기전 화차의 주력 로켓인 중신기전에는 추진체용 화약 2냥(약 75~80.24g)과 폭발용 화약 1돈(약3.75~4.12g)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총통 화차에 탑재한 주차총통 1문의 발사에는 단지 2돈(약7.5~8.24g)의 화약만 필요하다. 이보다 앞선 임진왜란 때 화차에서 주로 사용한 승자총통 1문의 발사에 필요한 화약은 1냥(37.5~40.12g)이다. 조선 후기의 화차에서 주로 사용한 조총 1정의 발사에 필요한 화약은 2~3돈(약 7.5~12.036g)이다. 어느 경우라도 신기전 화차 발사에 필요한 화약량이 총통 화차 계열 발사에 필요한 화약량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융원필비-박종경 화차의 분해 도면.

융원필비-박종경 화차의 전체 모습.

 

 

최대 600발 발사, 총통 화차의 탄막 사격

더구나 서애 유성룡 화차나 망암 화차처럼 승자총통을 탑재하는 총통 화차들은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탄환이 압도적으로 많다.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승자총통은 철환, 즉 철로 된 탄환 15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 40문의 승자총통을 탑재하는 변이중 화차라면 화차 1대가 연속 발사할 수 있는 탄환의 숫자는 600발에 달한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정확도에 상관없이 탄환으로 일정 공간에 벽을 치는 일종의 탄막 사격(barrage fire)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1592년 2월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조선군은 변이중 화차 40대를 운용했다. 결국 당시 조선군 화차가 동시 혹은 연속 사격할 수 있는 탄환 숫자는 승자총통 40문x철환 15발x화차 40대=24,000발이나 된다. 승자총통의 최대 사거리(600보=720m) 내에 속하는 일정 공간에 무려 24,000발의 탄환을 쏟아 부을 있다면 그 공간에서 생명체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행주대첩의 대승리에는 어쩌면 총통 화차의 탄막 효과가 큰 기여를 했을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에 신기전 화차보다 총통 화차 계열이 좀 더 널리 쓰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1808년에 쓰여진 ‘만기요람’에 따르면 중앙군 핵심부대인 훈련도감이 보유한 화약무기 중 일반적인 대포에 해당하는 무기가 총 213문인데 비해, 화차의 보유량은 121대다. 공용 화기 중 약 3분의1이 화차였던 셈이다.

 

 

총통 화차는 서양의 오르간 건과 맥락이 닿아

신기전 화차와 유사한 무기가 중국에 존재했듯이 총통 화차도 한국만의 고유 무기는 아니다. 전근대의 총과 대포들은 기본적으로 탄환과 화약을 장전하는데 많이 시간이 필요했다. 장전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아이디어는 총열을 여러 개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의 생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여서 총열이 여러 개인 다관식 화약무기(Multi Barrel Firearms)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유럽에서도 사용됐다.


다관식 무기가 한 단계 더 진화한 무기는 다관식 화기를 수레에 탑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소수의 인원이 훨씬 많은 총열을 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탄막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위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렇게 만든 무기를 흔히 ‘오르간 건(Organ Gun)’이라고 하는데 유럽에서도 이미 1500년대에 여러 나라에서 사용됐다.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그린 오르간 건의 스케치.

서구권의 19세기 기관총(Mitrailleuse). 기본 발상 측면에서 총통 화차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출처: (cc) ChrisO at Wikipedia.org>

 

 

이러한 오르간 건은 우리나라 총통 화차가 똑같지는 않아도 유사한 점이 많다. 유럽의 오르간 건은 폭넓게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1800년대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다. 당시 대포는 기본적으로 폭발하지 않는 고체탄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을 공격하는 데는 대포보다는 오르간 건이 상대적으로 더 효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르간 건은 사람을 공격하는 대인(Anti-Personal) 사격에 특화된 화약무기라고 할 수 있고, 총통 화차도 마찬가지다.

 

 

화차, 다연장로켓, 기관총의 뿌리

오르간 건은 총이나 그와 유사한 무기를 여러 문 동시에 탑재한 후, 소형 탄환을 동시 혹은 연속으로 많이 발사하는 무기이므로 기관총과 개념상 공통점이 많다. 이 때문에 서구권 학자들은 오르간 건을 기관총(Machine Gun)의 뿌리로 간주한다. 우리나라의 신기전 화차가 다연장로켓의 원조 격에 해당한다면, 그 외 각종 총통 화차들은 서양의 오르간 건과 함께 기관총의 먼 뿌리에 해당하는 무기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김병륜 / 국방일보 취재기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객원연구원

디펜스코리아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 국방일보 취재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사를 연구하고 알리는데 관심이 많다. 특히 숨겨진 우리의 군사 관련 역사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밝히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저서로 [군사전문인을 위한 인터넷] 등 단행본과 [조선시대 학익진의 도입과 운용] 등 6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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