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여름.
99년 우승 후 주축투수들의 해외진출과 빙그레 시절부터 팀을 이끌어온 중심타자들의 노쇠화로
침체를 겪던 이글스에 신인답지 않은 타자가 등장합니다.
시즌 중반부터 중용되어 88경기 0.335의 타율과 20홈런 44사사구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한
이 선수는 3년차인 2003년 31홈런과 0.319의 타율을 보여주는 등 꾸준한 성장세로 한화이글스와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4번타자로 자리매김합니다.
당시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09 WBC에서 활약을 토대로 일본 지바롯데에 진출한 김태균은
전반기까지 대한민국 4번타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90경기 89경기에 나와 타율 2할8푼 18홈런 73타점으로 전반기까지 퍼시픽리그 타점 1위이자 홈런 3위였고 6월초까지는 홈런·타점 1위, 퍼시픽리그 최다득표 올스타까지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후반기 체력저하와 변화구 선구에 문제점, 팀 테이블세터진의 이탈등으로 김태균 본인도 성적이 하향세가 찾아와 정반기 시즌 최종 성적 타율 2할6푼8리 21홈런 92타점. 홈런 공동 7위와 타점 6위를 기록합니다. 전반기 기록에 비해 후반기 성적은 한일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합니다.
김태균은 후반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재팬시리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특히 5차전 4타수 4안타, 6차전 6타수 2안타, 7차전 7회 2사후 역전 적시타 등 3할4푼5리의 고타율로
지바롯데의 우승일 이끌게 됩니다. 이글스의 중흥기였던 2000년 중반에도 우승을 이루지 못한 김태균은 일본에서 프로데뷔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
최종 시즌타율 2할6푼8리 21홈런 92타점에 팀에 우승을 함께한 용병타자.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신가요?
김태균과 팀 모두 우승이라는 결과에 만족하지만서도,
아쉬운 성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태균 본인과 가족에게도, 일본에게도, 한국프로야구에게도 아쉬운 일은
다음 해에 일어나게 됩니다.
...
당신이 한 가족의 가장이라면.
당신이 영화에서만 보던 재앙을 겪게된다면
당시 김태균 선수의 아내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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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비행기 끊어서 집에가라는 남편에게
죽어도 같이 죽겠다며 얼굴은 보고 갈거라고 울어대니
울 남편
가장 말을 똥으로 듣는다고 진심으로 깽판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빨리가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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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국에 와서도
혼자 두고온 남편때문에
하나 둘 씩 계속 터져대는 원전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습니다.
남편 죽으면 나도 죽겠다며
매일매일 눈물로 보냈습니다.
...
결국 김태균은
위 상황 말고도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한해 무척 잘했고,
"힘들지만"
올 한해도 잘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화이글스 4번타자.
김태균.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