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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금 소설) 요녀 - 2 (BGM)
게시물ID :
panic_5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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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
추천 :
39
조회수 :
4134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3/07/12 05:22:05
하늘이라고 탱천한 분노를 막을 수가 있으랴.
아낙들은 멈추지 않고, 소진이란 년을 구박, 멸시, 조롱했다.
흘러흘러 소진이 년은 다시 아청법의 대죄를 피한 지금으로 돌아와 스무 살.
성곤 도련님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어느 깊은 밤.
달이 불길하게 봉춘골을 비추고 있었다.
잠잠하던 봉춘골의 달밤을 어떤 아낙네 비명이 가로질렀다.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뒤야!"
그 요망한 년이라 함은 당연 소진이었다.
어느 아낙의 비명이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봉춘골의 아낙들은 문살을 뚫고 귀에 꽂이는 그 애증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비명은 곡소리처럼 한스러웠다.
또 어찌 듣자면, 살쾡이의 울음처럼 섬뜩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표현보다 들어맞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심금을 울리다.'
소진이 년을 찢어 발겨야 한다는 그 외침은 아낙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떤 아낙은 그 외침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어떤 아낙은 별안간 화병이 도져, 얼굴이 핏덩이처럼 빨개졌다.
아낙들은 그 달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낙들의 가슴 속엔 메아리가 울렸다.
'소진이 년을 찢어 발겨야뒤야!'
봉춘골이 어디 한양 땅 만치 넓다던가?
소진이 년도 잠자리에 누워 그 목소리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소진이 년은 다리를 끌어안고 울었다.
소진이 년은 맹추가 아니었다.
설사 맹추라 할지언정,
몇 해씩이나 동네 아낙들이 자신을 미워한 다는 것을 눈치 못 챌리는 없었다.
소진은 억울했다.
당연지사였다.
이상한 소문이 자신의 뒤를 항시 쫓아 다녔다.
입에 담지도 못 할 망측한 소문들은 방방곳곳 그림과 글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까막눈인 소진이 년도, 우물가에 붙은 그림을 자신과 비교하듯 보며 뭐라 웅얼거리는 남들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빤히 알고 있었다.
또한 그 망측한 그림 속 처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판 다르게 그려 놓았지만)
언젠가 부터는 빚을 받으러 다니는 길에는 꼭 빚쟁이들의 조강지처가 지키고 서서
껌뻑하면 소진이 년의 뺨을 후려쳤다.
그도 그럴 것이 소진이란 년이 자신의 금은 품을 날름 받아 챙기고,
빚은 안 갚으니, 사실 소진이란 년에게도 그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짓은 아니었다.
허나 뺨맞은 마음이 어디 그리 고분고분 하랴.
뺨을 치는 마음을 아주 헤아리기엔 소진이란 년의 마음이 너무 여렸고 쓰렸다.
해서 소진이란 년이 눈물을 터트려 버리면, 글쎄, 조강지처와 빚쟁이간의 싸움이 벌어지니,
소진이란 년은 그 탓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며, 아주 살기가 싫어지곤 하였다.
소진이란 년의 가슴이 문들어 지는 까닭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소진이 받아 온 가락지며 노리개는 모두 아비인 마 가 놈이 노름질로 탕진을 해버렸다.
쉽게 말해 빚쟁이들 손에 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소진의 눈동자엔 날이 갈수록 근심이 차올랐다.
마 가 놈은 소진이 년을 보살 필 줄은 모르고 이용하기에만 바빴다.
소진은 아비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빚은 곱절로 높아가고, 원성은 들끓었다.
아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산을 날리기는 짓이 즐거운 듯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었다.
하지만 딸년으로서, 어찌 천륜을 저버리고, 하늘아래 발을 붙일 수가 있으리요.
소진을 달래 주는 것은 그저 밤마다 스스로 베갯잇을 적시는 일 뿐이었다.
소진은 영문도 모르며, 구슬피 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어찌 보면 소진은 맹추인지도 몰랐다.
끙끙, 가슴앓이를 하는 소진은 날로 가엽고 처량해져만 갔다.
얄궂게도 점점 지쳐만 가는 소진의 모습에 봉춘골 남정네들의 가슴을 더 후끈 불살랐다.
어찌하랴 비련의 잠겨 있는 여인만큼 매혹적인 것이 또 어디 있다더냐.
그 가녀린 여인네들을 보고 넘길 수가 없었더랬다.
남정네들은 본성적으로 야성적이라 하다 아니할 수 없으니.
이 또한 탈이었다.
하지만 요상했다.
뭔가 요상했다.
역시나 요상했다.
무엇이 요상했냐면, 소진이란 년에게 남정네들이 반하는 것 자체가 요상했다.
자고로 여인 중의 여인이라하면,
살집이 두둑하게 붙어 아이 일고여덟은 낳고도 뒤탈 없을 만큼 듬직했어야 했는데,
소진이란 년이 어디 살집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있는 년이던가?
얼굴은 달덩이처럼 둥그~러니, 코는 조막만하고, 입술은 깨알만하고,
눈은 바늘 같은게 미인이거늘, 소진이란 년은 정 반대로만 생겨먹지 않던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들도 모르니, 소진이란 년 본인은 오죽했을꼬.
소진은 강물에 비추는 자신의 몰골을 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소진이 년이 열여섯이 되던 해 부터는 마 가 놈에게 재물을 던지며,
제발 딸 좀 주십사 하는 놈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 중에는 마 가가 빚을 지고 있는 빚쟁이도 있었고,
나이 오십의 대감, 즉 쭈그렁 할아범도 있었고,
산을 예순 고개나 넘어서 온 타지 인도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코쟁이,
행성을 건너온...
마 가 놈은 소진이 년 덕에 도가질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형편이 충분해졌다.
허나, 그 것은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들이 부어대는 격으로, 마 가 놈은 열 냥을 지고 나가면
백 냥 빚을 지고 오는 놈이었고, 백 냥을 지고 나가면 천 냥 빚을 지고 오는 놈이었다.
그런 천둥벌거숭이 놈이라도, 그 딸년에 목이 멘 양반 댁 손들까지
마 가를 없인 여기지 못하니, 마 가 놈의 사기는 하늘을 꿰뚫었다.
마 가 놈은 빚을 갚을 생각조차 하지 아니하였다.
심지어는 빚쟁이들도 애초에 받을 생각을 아니하였다.
빚쟁이 들은 마 가에게 돈을 뭉텅이로 건네며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소진이를 언제 보낼 생각인가?"
마 가놈은 이제 도가 튼지라 그리 대답하곤 하였다.
"아! 때가 되면 가고, 아니면 말지!"
빚쟁이들은 소진이란 년이 방문을 하는 것만 기다리며 가슴을 새카맣게 태웠다.
마 가 놈은 소진이 년만 있으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 소진이 년이 자신의 목숨 줄을 간당간당하게 당기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마 가 놈이 화를 입을 것은 누가 봐도 뻔했다.
아주 당연지사였다.
다만 그저 때가 아직 임을 누구라도 알고 있었다.
만일 소진이 년이 오라질 병에라도 걸려 급사를 했다면,
소진이 년의 제삿날은 마 가 놈의 제삿날과 겹칠 것이란 걸,
봉춘골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물론 소진이 년이 살아있다고 모두 해결 될 일은 아니었다.
마 가 놈도 스스로 대충은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야반도주를 할 짐 보따리를 미리 싸두는 짓은 하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허나 마 가 놈은 마 가 놈이라 천치는 천치여서
그 때가 성곤 도련님의 소문이 그의 아버님이신
박대감의 귀에 들어가는 날일 것이라곤 새까맣게 몰랐다.
메느리도 몰랐다.
박 대감에게는 장손인 성곤이 백정 상것에게 큰 절을 올렸다는 소문이 충격이었다.
그것은 진실과 거짓의 여부를 떠나서의 일이었다.
박대감이 쌓아온 지체와 기강이 모두 무너지는 일이었다.
박대감은 소식을 들을 늦은 밤, 아들 성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자리에는 성곤의 어머니인 민 씨 마님도 함께였다.
하늘엔 불길한 달그림자가 뒤덮여 있었다.
박대감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야, 까고 진짜냐? 너 똑바로 말해? 너 이빨가다 걸리면, 진짜 뒈지게 맞어? 알았어, 몰랐어?"
대장부 같은 성곤도, 박대감은 무서워했다.
박 대감의 성질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성곤은 대장부 같은 도령이었으나,
박대감은 진짜 대장부였다.
전장서 검을 휘둘러 이만 군사를 혼자서 배었다고 하기도 하고,
곰을 맨손으로 때려잡으며, 뱀을 생으로 씹어 먹고,
심심하면 바위를 깨고, 한가하면 강을 두 쪽으로 가르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 대장부 중 대장부였다.
"사실이더냐?"
진중한 목소리로 박대감이 한 번을 더 묻자,
성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오금이 저리고 턱이 잠겨 말이 나오질 아니하였다.
그를 지켜보던 민 씨 마님은 눈에 실핏줄이 터져버렸다.
이마에는 지렁이 같은 핏줄이 살아 꿈틀거렸다.
박대감도 마찬가지였다.
민 씨 마님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뒤야! 안 돼! 안 돼! 그 요망한 년을 찢어 발겨야 돼!!!! 안 돼!!!!!!!"
반은 실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 씨 마님의 목청 높은 소리는 봉춘골 아낙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박대감을 이를 악물어 화를 삭였다만,
눈에선 어스름한 달빛도 기죽어 줄행랑을 놓을 광체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 광체가 그리도 뻘건 빛을 내는 것이,
그 자리에 귀신이 있었다면, 성곤 도련님과 함께 오금을 지렸을 것이다.
허나, 박 대감 보다 더하면 더한 것이 민 씨 마님이란 건 봉춘골 사람들이 모두 아는 일이었다.
박 대감 댁에선 횃불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종 것들을 모두 깨워 횃대를 들게 하고, 먼저 그 자리에 있던
떡쇠 놈에게 경을 쳤다.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린 죄였다.
모질게 얻어맞아 정신을 잃은 떡쇠 놈은 그대로 횃불의 먹이가 되었다.
광기는 그때 시작 된 것에 불과하다고 누군가 나중 들어 말을 남겼다.
박 대감댁의 종 것 중 한 년의 말이었다.
종 것이란 년이 남긴 말 중 그런 것도 하나가 있더랬다.
"떡쇠 놈한테 횃대 불을 옮긴 것이 바로 큰 마님이라니까?
아주 눈에서 뻘건 핏물이 콸콸 쏟아지더라니까?
아니 그럼 참말이지, 그럼! 참말이지.
난중에 떡쇠 놈이 몸에 불이 붙어서 졸도에서 깨어나니까는
횃대로 내려쳐서 아주 모강지며 대갈통을 분질러 버리더라니까?
아! 참말이라니까? 아! 쯧, 그리고 참, 이보쇼! 비밀이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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