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아다니는 박정희의 가계도에는 박정희의 첫째 부인이나 첫째 부인에서 난 큰따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 가계도가 사실을 왜곡할까 봐서 이 글을 펌합니다.
박정희는 20대 초 젊은 시절부터 ‘배신’ 기질이 다분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정해 준 조강지처를 홀대하여 차 버렸으니까요. 조강지처는 불하당이라는 조선의 전통적 도덕률도 출세에 눈이 먼 청년 박정희를 규율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여간 박근혜가 박정희의 장녀로 착각하시는 분들은 이 글 읽으시고 자신의 정보 습득 능력에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집권 세력이라든지,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대중에게 전달하려 하지요. 그러나 그 정치인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박정희나 박근혜가 첫째 부인 김호남이나 그 딸 박재옥의 실체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걸 결코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보 조작에 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준 정보 조작에 속아 넘어 가는 일, 바꾸어 말하면,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동 양식이 대중이 독재자를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환호하게 되는 출발점이고, 재벌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새누리당에 집권을 허락하는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제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방콕하여 독수공방한다고 타박하는 글을 썼었는데,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에 박근혜 대통령이 큰언니 박재옥 여사를 초빙하여 떡국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국민들이 얼마나 보기 좋아할까요? 내년에는 그리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래 글은 다음 아고라에 대사헌이란 필명을 쓰는 분이 작성한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이 오로지 대사헌이란 분이 썼는지는 의문이고, 대부분의 내용이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장도 꽤나 훌륭하고요.
박정희 첫째 부인 ‘김호남’
대사헌 (ijl****)
박정희의 첫 번째 부인은 육영수가 아닌 김호남이다. 김호남은 17세에 박정희한테 시집왔다. 그러나 둘의 결혼은 서로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의 아버지인 박성빈이 "내가 죽기 전에 막내 아들(박정희)이 꼭 장가가는 모습을 봐야겠다!"라고 하도 강제로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혼사였다.
1900년대 초 무렵에 박정희처럼 본인이 원치 않지만, 집안 어른들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일찍 결혼을 한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우리도 잘 아는 유명한 문인들 중 상당수도 그렇게 해서 집안의 강권으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했다가, 일본에 유학 가서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성과 두 번째 결혼을 올리는 일이 무척 많았다.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결혼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이유도 본인들의 연애 감정이 아닌, 집안의 대를 잇는 성스러운 전통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박정희와 결혼을 한 김호남은 박재옥이라는 딸을 낳았다. 그러니 박정희의 큰딸은 지금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가 아니라 박재옥이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호남은 선량하고 성실한 여성이었고, 박정희가 돌보지 않는 집안일을 잘 보고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김호남을 시댁에 내버려 두고, 문경에서 혼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월급은 아내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어쩌다 방학이 되어 고향에 와도, 김호남과 함께 생활하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술집에서 막걸리만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고향에서 존경받는 지식인이었던 그의 형인 박상희가 화를 내며 강제로 박정희를 김호남의 방에 집어넣은 일도 있었다. 억지 결혼을 한 아내가 전혀 사랑스럽지도 않았고, 그녀에게 정을 주고도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박정희는 문경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만주군에 입대하러 만주로 떠난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남달리 권력욕이 강했던 박정희가 군대에 몸을 담고 출세를 하기 위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내 김호남이 머무르고 있던 집안이 보기 싫어서 멀리 떠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박정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실업자로 지내던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시절에 알고 지냈던 선배들의 도움을 받고 육군 소령이 되었는데, 이때 비로소 김호남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김호남은 끈질기게 버티면서 박정희의 요구를 거부했다. 부아가 치민 박정희는 집을 떠나서 혼자 부임지를 떠돌며 살았는데, 그러던 와중에 부하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왔던 어느 젊은 이화여대 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박정희의 진정한 사랑이었던 이현란이었다.
이현란을 본 박정희는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다했다.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이현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그토록 좋아했던 술(박정희는 5.16 쿠데타에 참가할 무렵에도 술을 마셨을 정도로 술을 즐겼다.)을 결코 마시지 않았다. 또한 자신보다 8살이나 어렸던 이현란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그야 시골 농가 출신인 촌스러운 아내 김호남보다는 세련된 엘리트 여성인 이현란이 더욱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박정희가 마음에 들었던지, 이현란은 박정희와 동거를 하다가 급기야 약혼식까지 올렸다.
하지만 사랑에 빠져 있던 박정희에게는 한 가지 골칫덩이가 있었다. 아내인 김호남이 끝내 이혼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약혼식까지 올렸지만, 이현란과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김호남이 반드시 이혼을 해 줘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김호남은 끝끝내 이혼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더구나 박정희는 이현란과 교제를 할 때, 자신이 이미 다른 여자인 김호남과 결혼을 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까지 낳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이 사실이 박정희에게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당시 국내 최고의 엘리트 학교인 이화여대를 다니던 이현란이 과연 박정희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때에도 박정희와 계속 교제를 할까?
박정희가 이현란의 사랑을 얻고자 그녀와 동거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조강지처인 김호남은 혼자서 슬픔을 억누르며 딸인 박재옥과 함께 여전히 시댁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박정희는 형인 박상희가 좌우익 투쟁에 관련되어 죽자, 존경하던 형의 복수를 하려는 마음에서 박상희가 있던 남로당에 가입하여 총책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순 반란 사건에 남로당이 관여했다가 정부군에게 진압당하면서 남로당 당원이었던 박정희도 그 관계가 들통나 헌병에게 체포당했던 것이다.
동거하던 박정희가 갑자기 헌병에 끌려가 행방이 묘연해지자, 영문을 알 수 없어 애가 탄 이현란은 이리저리 수소문을 한 끝에 드디어 그동안 숨겨진 전말을 모두 알고 말았다. 그리고 이현란은 박정희에 대한 배신감과 충격에 치를 떨었다. 왜냐하면 이현란은 원래 이북 출신인데, 공산주의가 싫어서 이남으로 피난을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와 약혼까지 했던 남자가 공산주의 정당인 남로당의 일원이었다니? 게다가 자기와 만나기 전에 이미 김호남이라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서 딸까지 낳았다?
이렇게 되자 이현란은 박정희에 대한 호의와 애정을 모두 접었다. 애초에 그녀는 박정희가 가진 육군 소령이라는 계급에 끌렸던 것이지, 여순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군대에서 쫓겨날 위기에다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 후에 박정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남로당 당원들의 정보를 고백한 대가로 풀려났지만, 이현란은 더 이상 박정희를 좋게 대하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자신을 멸시하고 멀리하는 이현란의 태도에 화가 난 박정희가 폭력까지 휘둘렀다고 한다. 결국 이현란은 편지 한 통을 써놓고 집을 나가 행방을 감춰 버렸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마음이 돌아서지 않으니 이만 떠나야겠어요. 절 찾지 마세요. 찾으면 자살하겠어요."
여순 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군대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마저 곁을 떠나자, 박정희는 무척이나 괴로워해서 한동안 매일 밤을 술과 눈물로 지새우며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와중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자 박정희는 군 내의 만주군 인맥의 도움을 얻어서 다시 군대에 복귀한다. 그 사이, 박정희에게 대구사범학교 후배인 송재천이 찾아왔다. 송재천은 학교 선배인 박정희(그런데 정작 박정희는 송재천을 처음 보고 그의 얼굴도 몰랐다고 한다.)가 이현란과 이별하고 쓸쓸하게 지내던 것을 무척이나 안쓰럽게 여겨, 자신의 먼 친척인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녀가 바로 육영수였다.
육영수는 육종관이라는 사람의 딸이었는데, 육종관은 부인을 다섯 명이나 두고 자녀도 스무 명이 넘게 낳을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다. 그래도 육영수는 정실 부인 소생이어서 육종관은 딸을 아꼈는데, 박정희가 육영수를 만나러 집에 왔을 때 그를 보고 못마땅했다. 마침 박정희는 술에 취해서 왔던 것이다. 5.16 와중에도 술을 잔뜩 마셨다는 일화를 보면 박정희는 긴장을 하면 술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경령은 박정희를 마음에 들어했다. 이경령은 자신의 친척인 송재천을 통해서 박정희가 이미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 사실이 중요한 변수였다. 그녀는 예전에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가 “육영수는 결혼한 사람과 재혼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기에, 그 말을 믿고 박정희가 육영수의 남편감으로 알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경령은 박정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육종관에게 알리지 않았다. 만일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크게 반대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박정희는 육영수를 두 번째 아내로 맞는 결혼을 대구에서 올렸다. 결혼식을 올리기 두 달 전, 박정희는 조강지처인 김호남을 찾아가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도장을 받아 내었다. 당시 김호남은 32세이고, 박재옥은 15세였다.
이혼을 당한 김호남은 이후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찰을 떠도는 등 괴로운 나날을 보냈고, 박재옥은 박정희의 부관인 한병기와 결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