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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엄마는 울지 않는다
게시물ID : panic_517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22
조회수 : 1817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3/07/01 15:28:24
 
 
 
 <엄마는 울지 않는다>
 
 
 
 
 "제가 정말 웬만하면 이런 소릴 안하려고 하는데요. 어머님."
 
 경찰은 말을 끊고 엄마를 쳐다봤다. 굳이 시선을 내려서 엄마와 눈을 맞추곤 독설을 퍼붓는 것이다.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키신 겁니까?"
 
 "네?"
 
 "이 놈 중학생때부터 시작해서...전적이 화려하다 못해서 꽃이 피었습니다, 어머님."
 
 엄마는 당혹감을 숨기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소리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 놈 저대로 내버려두면 정말 감빵가는 거예요. 이제 성인이니까 법의 보호도 못 받는다구요."
 
 단 한마디도 되받아치치 않았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내 자식 교육 시키는데 보태준거 있냐, 등등 악에 받쳐서라도 가만히 있기 힘들었을 건데.
 엄마는 단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경찰서를 빠져나갔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 의자에 앉아서 거울을 통해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따라가지 않고 뭘 뻣대고 앉았어?? 너는 인마, 사내자식이 어머니 속을 그렇게, 응? 지금이야 철이 없어 그렇지만 나중에 가서 후회 안하겠냐?"
 "아저씨가 뭘 안다고 훈계에요?"
 
 경찰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금세 내 목을 졸라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건 다 내 부모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비뚤어진 것도, 경찰새끼 말대로 내가 방황할때 붙잡아주지 않은 엄마 잘못이라고!
 엄마는 내가 어릴때부터 직장생활을 해야했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도 넘쳐나는 빚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스스로 집을 찾아올 나이가 됐을 즈음부터, 나를 돌봐주는 이는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느라 바빠서. 사는게 힘들어서. 나를 키울 돈을 벌기 위해서.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이 성장하는 과정조차 보지 못한채 새벽 하늘을 보며 출근해, 밤이슬을 맞으며 퇴근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아버지 대신 떠안은 빚덕분에 이곳 저곳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잦은 전학 때문에 자연스레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화사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몰라도 나는 우중충하고 우울한 녀석이었다.
 
 그러다보니 방황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질나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샌가부터 경찰서를 드나들게 되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저 멀리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버스가 오는 쪽을 보고 있던 엄마가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물이 고일 정도로 깊게 패인 미간 사이의 주름이 낯설었다. 엄마는 오열하는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에 눈물이 고였더라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무시하지 못했을 텐데, 엄마는 울지도 않고 괴상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야차나 귀신같은 무서운 얼굴이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는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지만 비겁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그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엄마가 이상하게 변했다.
 자식 학교 행사가 있어도, 자기 몸에서 열이 펄펄 끓어도 악착같이 일어나 출근하던 사람이 이틀째 누워 있었다.
 두통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겁이 났다. 저러다가 엄마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엄마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엄마는 고개를 저으면서 괜찮다고만 했다.
 응급실에 들어가서 접수를 하면서도 그저 가벼운 병이겠거니, 혈압이 좀 높은건가? 하는 안일한 생각만 했다.
 
 정밀검사를 끝낸 뒤 결과가 나오자 의사는 우리를 진료실로 호출했다.
 그는 엄마의 머릿속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거, 심각한데요....상태가 안좋아도, 이렇게 안좋을수가...."
 "어떻게 안좋은데요? 암이나 종양같은 건가요?"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긴장하고 앉아있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암'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다행이구나 싶었을 거다.
 의사가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상체를 수그렸다. 그는 우리 모자를 유심히 응시했다.
 
 "여기 이거 보이시죠? 머릿속 가득 찰랑거리는 거."
 "물....물인가요?"
 "눈물입니다."
 "눈물이요??? 그게 왜..."
 
 그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엄마를 쳐다봤다.
 
 "환자분, 마지막으로 울어본게 언제였죠?"
 "울었던 건........남편이 실종되고.....아니, 사업이 부도가 났을때가...."
 "그게 몇년전이죠?"
 "10년. 10년도 더 된 일이에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죠? 울만한 일들 말입니다."
 "............"
 "환자분?"
 "그게.......너무 많아서."
 
 엄마가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많아서 꼽을 수가 없어요. 왜, 나한텐 그렇게 많은 시련들이 찾아온 걸까요."
 
 엄마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곧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며 어깨가 들썩거렸다. 의사는 엄마가 고개를 들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한참 뒤에 엄마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얼굴을 보였다. 눈물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빨갛게 충혈된 두 눈과 종이처럼 구겨진 얼굴의 주름 말고는.
 
 "환자분은 어떻게든 울어야 됩니다. 머릿속은 지금 포화상태예요. 밖으로 눈물을 배출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편이 저를 떠났을때 제 눈물은 말라붙어버렸어요. 십수년을, 울면 이 세상한테 지는 거다....울지 말자....그렇게 독하게 마음먹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선생님은 지금 제가 울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다고 하시는 건가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은 그것 뿐이군요. 죄송합니다."
 
 아빠를 잃고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한 엄마였다. 오열하는 친척들 사이에 앉아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온 엄마는 말없이 앞을 보고 걸었다. 엄마의 무서운 표정에, 마주 걸어오던 사람들이 놀라서 걸음을 멈추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와서부터 엄마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일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도 몰랐다.
 밤새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지만 엄마의 베갯잇은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는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보험서류를 꺼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험을 들어놔서 다행이구나. 하도 오래전에 들어놓은 거라서 금액은 확인을 해봐야 되겠지만 사망보험이니까 병원 검사비는 몰라도 사망했을 때는 확실히 나올 거야. 네가 수령할 수 있게 해놨으니까 꼭 찾으러 가야된다. 밥도 챙겨먹고. 친구들하고만 어울리지 말고 검정고시도 준비해야지. 전세 계약은 내년 4월에 끝나니까 재계약을 하던지...아니, 보험금이 나올 테니까 그걸로 작은평수라도 네 앞으로 집을 사거라. 그리고 고모가 가까운데 사시니까 자주 찾아뵙고. 명절에 제사같은건."
 
 "엄마 미쳤어?!!!"
 
 "왜 그래? 중요한 얘기야. 화내지 말고 들어."
 
 "포기하지 말고 노력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그렇게 죽을 거야?! 방구석에 쳐박혀선, 지금 보험이 뭐?! 제사가 뭐?! 그게 자식한테 할 소리야??"
 
 엄마는 내가 갑자기 버럭 소리지르는 일에 내성이 생긴 사람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끌어 당겼다. 뼈가 앙상한 손가락이 내 손에 얽혀들었다. 뜨거운 눈물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엄마는 눈물 범벅이 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가 내 눈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널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 오래오래 네 곁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엄마의 손길이 닿은 자리에 또다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는 귀신처럼 무서운 얼굴로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엄마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 지금쯤 방이 잠길 정도로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테지. 엄마의 눈물이 말라붙어버린데는 내 책임도 컸다. 내가 그렇게 사고를 치고 속썩이지 않았다면...
 
 나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서 옥상까지 향했다. 잠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밑에서 불어온 바람이 옷이며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휘날리게 했다.
 나는 난간을 힘주어 잡았다. 까마득한 세상이 보였다. 발 아래는 허공이었다. 오그라붙은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난간을 잡은 손이 겁쟁이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겁쟁이, 그래, 나는 겁쟁이다. 늘 비겁하게 현실에서 도망만 다니던 겁쟁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울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해야 엄마를 살릴 수 있는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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