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구름~~
작성일: 2011-01-17 (월) 14:09
한국좌파에 대한 소고-16
호남사람에게 가장 끔찍했던 것은 호남혐오증이 특정 지역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호남박해에는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6, 70년대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군에서 전라도를 가장 미워하고 괴롭힌 지역은 경상도가 아니라 충청도였습니다. 정말 상극이었습니다. 충청도 고참하고 전라도 졸병은 최악의 조합이었습니다. 여기에도 이유는 있지만 그것은 잠시 뒤로 돌립니다.
전라도를 동정하고 두둔해주는 지역은 없었고, 전라도사람들은 전국 어디를 가도 눈칫밥을 먹고 괄세를 받았습니다. 취직에도 제약이 가해졌고 진급도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타지방 사람과는 결혼도 힘들었습니다. 전라도 사위라면 펄쩍 뛰며 반대하는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일제시대 조선사람들도 겪어보지 못한 식민지 생활이었습니다.
호남은 고립되었고 사방이 적이었습니다. 호남사람들은 이런 고립을 이념적인 대립으로 대치치시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호남 대 비호남, 전라도근성 대 전라도혐오의 구도를 민주 대 독재라는 구도로 바꾸게 됩니다. 소외세력이었던 호남은 기득권 세력의 약점인 친일을 잊지 않습니다. 기득권세력을 친일매국세력으로 매도하면서 스스로를 항일독립세력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영남정권을 친미사대정권으로 정의하고 자기들은 반미자주세력으로 자부하게 됩니다.
영남정권이 4억달러의 보상금을 받고 한일협정을 맺게 되자 이것은 친일파에 대한 성토의 기회가 됐습니다.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데모대가 전국의 거리를 휩쓸었습니다. 이때의 시위 주동자들이 지금 좌파 정치인으로서 한국 국회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는 영남을 친일세력으로 호남을 항일세력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때를 같이해서 이 땅에는 종속이론이 붐을 일으키고 종속이론가들의 저서가 서점가의 매대를 뒤덮다시피 합니다. 친일이 매국이었던 것처럼 친미도 매국이 됩니다. 친미는 사대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영남정권의 친미사대주의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선명한 자주이념으로 착시현상을 일으킵니다. 김일성집단의 항일유격 경력과 주체사상은 호남의 항일정신과 반미자주이념과 그대로 맞아떨어집니다.
문제는 북한이 독재정권이었는데 호남은 민주화세력으로 자처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어떤 시각으로도 북한의 김일성 정권과 민주화세력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내재적 접근론을 비롯해서 주체사상의 해석이 다양하게 이루어집니다. 북한과 호남을 항일세력의 동지로, 자주세력인 우군으로, 민주세력인 동맹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이론이 개발되는데 크게 보아 세 그룹이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의 통일전선본부이고, 또 하나는 남한의 대학 내 친북서클들입니다. 주체사상은 이들의 교과서이고 바이블이었습니다. 내재적 접근론은 이때 탄생한 친북이론입니다. 마지막 그룹은 김대중과 그 씽크탱크들입니다.
호남이 급격하게 좌경화된 것은 항일, 자주, 민주라는 가치가 북한과 맞아떨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북한정권만큼 비자주, 반민주한 집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일이라면 또 모르지만 자주와 민주라는 가치는 북한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호남은 북한에게 자주와 민주라는 옷을 뒤집어씌워 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남한 내에서 호남이 고립되었기 때문입니다. 호남혐오증이라는 지독한 반호남정서에 포위되었던 전라도 사람들은 이 숨막히는 포위망을 벗어나야 했습니다. 남한 내에서는 반호남정서에 같이 맞서줄 우호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호남은 북한과의 연대를 통해서 고립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호남의 친북은 이념적인 친북이 아닙니다. 호남사람들이 좌익이라서 친북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남에 가서 아무나 만나보십시오. 전라도 사람 중에 빨갱이가 있는가? 영남사람이나 똑 같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수십 년을 살았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북한 가서 살 수 있겠습니까? 북한 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고방식은 전부 우파적이고 생활 방식은 자본주의자들입니다. 좌파는 무슨. 아나꽁꽁이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친북적입니다. 사람이 홱 달라집니다. 타지방 사람들이 보기에 이건 딱 돌아가실 일입니다. 왜 이러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힙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북한사람들이 친북하는 것은 조선 말기에 있었던 황사영 백서나 마찬가집니다. 천주교 박해가 심해져서 천주교 신자들을 전부 다 잡아죽이니까 이 사람들이 프랑스 황제한테 밀서를 보내서 군함을 파견해서 조선을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사건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있을 수 없는 매국이요, 역적입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만 당사자들인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절박한 일이었습니다. 저거가 죽고 사는 일입니다. 자기 나라가, 자기 동족이 자기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애국심이 생기겠습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조선왕과 자기들을 살려주는 프랑스 황제하고 누가 고맙겠습니까? 천주교를 믿으면 죽이는 조선하고 천주교를 마음대로 믿으며 살 수 있는 프랑스하고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천주교 신자들은 자기가 천주를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았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천주교인들이 프랑스와 손을 잡은 이유나 호남이 북한과 연대하는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종교가 같기 때문이 아니고 이념이 같아서가 아닙니다. 둘 다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당시 호남은 영남이라는 옆집하고 싸우게 됐습니다. 그런데 온 동네가 다 영남 편을 들고 호남 편을 들어주는 집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호남 집 아이들은 아버지한테 울먹거립니다. “아버지 집 밖에 나가기가 겁난당께요. 나가기만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보고 욕을 한당께요.”
“그러냐. 이 시러베 잡놈들, 무슨 수를 쓰야 되겠어라. 내가 가서 너거 삼촌을 데려와 부러?”
아버지는 어디론가 가더니 험상궂은 얼굴을 한 조폭을 하나 데려옵니다. 먼 동네 사는 삼촌이라고 아버지가 데려온 조폭은 인상을 기리면서 동네에서 공포분위기를 잡습니다. 김대중 아버지가 데려온 삼촌이 바로 김일성입니다. 그때부터 동네사람들이 약간 기가 죽어 보입니다. 호남 아이들은 이 삼촌을 자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삼촌이 저거 동네에서 저거 아이들 앵벌이 시키는 양아치라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 아버지 죽고나면 자기들도 앵벌이하게 된다는 것은 꿈에도 모릅니다. 우선 겁먹지 않고 집밖에 나가게 된 것이 반가울 뿐입니다. 저거보고 욕해대던 동네사람들이 겁먹는 것이 통쾌할 뿐이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버지도 죽고 이 조폭도 죽고 그 아들은 더 형편이 없습니다. 완전 꺼러지가 되어 여기 저기 말썽이나 일으키고 구걸하고 다닙니다. 저거 아버지는 그래도 조폭같았는데 아들은 완전 3류 양아칩니다. 이제 호남 아이들은 자라서 잘삽니다. 그래도 이 조폭 삼촌과 그 아들인 양아치를 미워할 수만은 없어서 한사코 감싸고돕니다.
지금 호남사람들이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 이유는 우파에 의해서 북한이 흡수 통일되었을 경우 다시 호남이 고립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호남박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북한이라는 조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용돈주고 술값 찔러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