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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상시(相視)
게시물ID : readers_80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브리엘라
추천 : 6
조회수 : 28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6/30 14:34:14

그녀의 시선이 사진 한장에 멈췄다.

표정의 변화는 없다. 


세상 만물을 내려다보는 듯한 세종대왕의 인자한 미소와펄럭이는 태극기밑에서 붉은 장미와 함께 웃고 있는 17세의 소녀들.


잘 웃노.”


아직 화장기가 가시지 않은 다소곳한 어머니의 말이 그녀의 귀를 파고든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바닥만 보며 묵묵히 저린 다리를 주무르고만 있었다.

밤이슬이 찬 것인가, 어머니의 말이 찬 것인가. 담담하게 어머니는 다시 한번 더 말한다.


니 웃는거 보이, 내사마, 속이 뒤집어질라 카네.”


어머니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한시도 떼지 않은 채, 혼잣말을 읊조리기시작했다.


니가 공부 못하는거 안다. 이쁘지도않은거 안다. 내 그래 니 낳아가 미안하긴 한데, 니가 어데 그래도, 못된 아였나엄마아빠한테 싹싹하제, 친구들하고 잘 놀제, , 못생기면 어떻노. 니 패션에 관심 많잖아옷 잘 입고 자기관리 잘하는게 여자아한테 최곤기라. 맞나 아이가. 근데 뭔 바람이 불어가, 니 이래 되뿌딴 말이고.”


어머니.. 죄송합니더…”


어머니의 한 서린 목소리를 들으며 끝내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 눈물 속에서 참회와 반성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나, 어머니는 가식만을 느낀 듯 하다.


야야, 니 성적 안오른다고느네 선생이 니 무시했지, 나는 니 무시한적 없데이니 그래도 새벽같이 일나가 생선장사하는 내랑 느그 아부지 보고 공부하겠다 마음 다잡은거 아이가. 3이라꼬 숨도 안쉬고 공부하는 니 보면서 내랑 느그 아부지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줄 아나그저 이대로만 커줘도 되는데. 윤정이 아인나. 윤정이 니랑 그래 8년동안 친한 단짝이라 케도, 저 봐라니 안하던 짓 하이깐 저래 싹 돌아서뿌는거 봐라.”


어머니….”


내 느그 선생도 참 마음에 안든다 아이가. 니 갑자기 공부한다고 피땀흘려 노력하는거 알면서도, 저번맹키로 말장난이나 슬슬 쳐싸코. 내 시장통에서 생선 팔아가 없는 돈으로, 그래도 배우는게 갑인지라,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따라댕기고 맨날천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싸도 머하노. 니 그래 맨날 쳐맞고 다니는거 싹 무시해뿌고, 성적 쫌 안오른다꼬 니는 뭘 해도 안된다미 그 가시내들 편 들더라 아이가. 우째 그걸 고래 싹 모른체 할 수가 있노? 내 돈없어가 그래, 촌지 한번 제대로 못준게 미안하긴 합디다. 우째 생활기록부에 좋은 말 하나 안적어주노?”


어머니는 기어이 당신의 옥구슬을 떨어뜨렸다. 아니, 이때만큼은 피비린내 나는 생선의 눈물과도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저린 다리를 주무르지 못했다.


윤정이, 고 가시내, 진짜 대단한기라. 니랑 8년친구 아이가. 니 공부한다고 지랑 안놀아 주이깐 단단히 쌤통이 난 게지. 근데 그게, 느그 8년우정 뛰어넘을 만큼 속상했던갑다. 언제였노? 니 그래 괴롭히고댕긴게. 도시락 엎지르고, 책 다 갖다 버리고. , 머리 짤려가 집에 왔던날 생각나나? 니 끝까지 윤정이가 그켔다 말 안하데. 참 대단한 우정이다 그쟈? 내는 진짜 가 생각하면 찢어죽이고 싶다. 지금 바로 내 옆에 있으면, 내 그냥 다리몽댕이 분질러가 저쭈 어디 어, 저승길에 던져뿌고 싶다 아이가.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감자 얻어먹고 가고, 집에서 자고 가고 이카던 아가…. 하이고이게 진짜 무슨 일이고…윤정이 그래도 좋은 아였잖아. 우리 다 알잖아. 고 가시내 이쁘장하이 눈도 참 크고 선해가, 시집 잘갈꺼라고, 우리동네에서 소문 자자하던 아 아이가.”


어머니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피식 하고 웃었다.


엄마, 고마해라. 잠좀 자라. 이래 뭐 누나만 신경쓰다가 죽을끼가.”


그녀의 남동생이 어른들과 술 한잔을 하고 온 모양이다. 빨개진 눈을다시 부여잡으며 어머니를 일으키려 하였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반짝거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할말이 없는듯, 체념한 듯한 어머니의 표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리라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살포시 올라간 그녀의 입꼬리는 어머니와 같은 쓴 웃음인 것인가. 아니면, 영혼없는 그저 한 근육일 뿐인가.


찬 기운도 찬 기운이지만, 괴기스런 기운이 10평짜리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그녀와 어머니 뿐이었다.

적막하고도 썰렁한 공기가 30여분을 노닐고서야, 그녀는 마른 입술을 축이지도 않은 채 한번 깨물어 보이고선, 뗐다.

짭조름한 무언가가 자꾸 그녀의 입술 안쪽으로 흘러들어와 도저히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다.


제가.. 죽일년이제. 내 빼고 공부하는 아 보이, 괜히투도 나고, 내보다 더 잘될거같아가… 얄미워가 내한순간에어흐, 못된 짓 좀 했는데어머니진짜죄송합니다내 이래될줄 모르고내가 미쳤는 갑다… ”


그녀는 울고 있었다.

8년 친구이자, 가해자였으며, 참회자였다.  

영정사진 속의 그녀는 그런 친구를 흑백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윤정아내 니 용서못한데이. 알제. 고마 오늘은 가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주섬주섬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고, 치맛단을 정리하며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선이 찢어진 사진 한장에 멈췄다.

그녀들의 시선도 찢어진 사진 한장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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