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조선·중앙·동아일보 3사 중 한 곳에서 일하는 기자였다. MBC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갈 거냐고 물었더니, 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중에 정권 바뀌면 비제작부서로 발령 나고 밀려날까봐" 안 간다고 했다.
동아일보 기자는 요즘 MBC를 이렇게 평했다. "예전엔 MBC를 제일 먼저 봤는데, 지금은 SBS를 먼저 보고 그 다음 KBS를 본다. MBC는 안 봐도 그만이다. (파업 이후) 출입처에서 만나는 MBC기자들 보면 처음 보는 사람도 많고 취재능력도 떨어지더라." 과거 신뢰도 1위의 MBC 입장에서 볼 때 굴욕적인 평가다.
식사자리에서 예전의 MBC를 그리워하는 조선일보 기자도 만났다. "좌파성향이 강해서 문제였지만, 그래도 MBC에선 볼 게 많았다"고 했다. MBC는 성역 없는 보도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띄는 보도를 찾기 어렵다. 또 다른 조선일보 기자는 MBC 경영진을 걱정했다. "보수정권이 천년 만 년 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나중에 어쩌려고…."
▲ MBC 상암동 사옥. ⓒ언론노조기자가 만난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은 정권이 바뀌면 MBC에 '피바람'이 불거라 입을 모았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교체되고 사장이 바뀐 뒤 진보성향 인사들이 주요 보직을 잡아 이명박‧박근혜 정부 주요 보직자들을 '숙청'할 거라고 했다. MBC에 불어 닥칠 '또 다른 비극'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숙청'이 반복되면, MBC에는 사내정치만 남게 된다.
MBC는 미래에 직면할 위기를 지금부터 관리해야 살 수 있다. 경영진이 2012년 파업참가자들을 주요업무에서 배제하는 현재 전략은 장기적으로 전망이 없다. MBC사내에서 파업참가자가 파업불참자보다 다수이기 때문이다. 현 경영진은 파업 참여 여부에 따라 업무능력이 있는 사원은 최대한 배제하고 경력사원을 채용하며 인건비는 늘리고 노동생산성은 떨어트리는 비효율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MBC의 비극은 2012년 파업의 여파다. 그나마 파업의 여파가 덜한 드라마와 예능분야에서 채널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본래 MBC의 킬러콘텐츠는 보도와 시사교양이었다. 수신료 인상‧광고총량제‧자사미디어렙 등 콘텐츠 외적 요인으로 경영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점점 콘텐츠가 중요해지는 시대다. 좋은 콘텐츠는 애사심과 협동적 조직문화에서 탄생한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시사교양PD를 스케이트장 관리로 보내려했던 해프닝이 오늘날 MBC의 현 주소다.파업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능력과 경력에 따라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둘리는 사장선임 구조도 바꿔야한다. 징계와 배제에 의한 '공포 경영'은 170일을 넘는 장기파업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MBC에 대한 조중동 기자들의 평가에, MBC가 살 길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