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생리학적 고찰.
코페르니쿠스, 다윈과 함께 학문에 있어 3대 전환점으로 꼽히는 것이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아동성욕론으로 대표되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현재까지 계속 연구되고 있고 프로이트 이후 칼 융, 자크 라깡 등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학문이자 사회학, 신경이상에 대한 임상적 접근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은 여러 학파로 나누어지는데 현대 사회에서 정신분석학의 약 70%정도는 라깡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
신경 생리학자인 프로이트는 정신병에 대한 에너지적 접근을 보였다. 또한 이드, 자아, 초자아의 대립적 관계를 통해서 인간 의식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프로이트 학문의 명성과는 달리 프로이트가 실제로 행했던 상담의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다.
자크 라깡은 프로이트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대변되는 욕망 이론으로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라깡은 기존의 생리적 혹은 병리 생리적 현상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기호학적 관점을 덧붙여 재해석 하였다.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라깡의 재해석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임상적 효용성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시니피앙 - 시니피에 관계를 통해 은유와 환유의 개념을 통해 인간 정신에 대한 해석을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근이 중요한 이유는 정신분석학의 이론과 생리 기전 사이의 교차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라깡의 이론을 통해 정신병에 대한 여러 임상적 진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어디까지나 생리 혹은 병리 현상에 대한 접근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은 논리적 타당성이나 정당성의 확보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생리학과의 관계는 분리되어있다. 정신분석학이 신경 생리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될 수 있을 때, 실제로 관찰되는 신경 생리학적 현상과 라깡으로 대표되는 정신분석학은 어떤 연관성을 보이는가?
프로이트는 신경증, 특히 초기의 히스테리를 설명하면서 유아기 때 성적 경험들이 히스테리의 기원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이후 이러한 입장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통해 유아가 성정체성을 형성할 때 자기의 어렸을 때 기억을 거꾸로 대입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를 라깡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앙의 관계에서 은유와 환유를 통해 언어학적으로 접근하였다. 이러한 점은 생리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생리학이 신경증이나 우울증 등을 포함한 정신병에 있어 가지는 입장은 신경이상이나 신경 전달물질의 과다 혹은 부족이다. 이러한 점에서 접근할 때,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하나의 경험이 다른 경험에 대한 지속적 영향과 상관 없는 사건들 사이의 은유와 환유이며 그것의 영향이 프로이트에서는 유아 성욕으로, 라깡은 거울단계에서 설명했다는 점이다.
우리의 인식은 하나의 행위에 대한 순수 인식으로 남지 않는다. 예컨데 배고픈 상태에서 눈앞에 라면이 있다면 우리는 뇌상의 자극에 의해 식욕을 느끼고 소화물질의 분비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인식은 '저것은 라면이다' 라는 순수 인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절한 향에 의한 자극은 식욕을 더 돋구며, 만약 파란색 라면이라면 오히려 식욕이 감퇴될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인식은 순수 인식이 아닌 여러 감각들의 조합이다.
우리의 생각, 행동, 감정 등이 하나의 신경에 대한 생리적 결과일 때, A라는 경험 이후에 B라는 경험에 있어 A사건에 대한 은유나 환유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은 추론컨데 A사건과 B사건 간에 작용하는 신경들의 교집합으로 은유나 환유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즉 어떤 신경은 A에만 작용하고 어떤 신경은 B에만 작용하겠지만, A와 B에 모두 작용하는 신경이 있고 그에 따라 우리는 A사건과 B사건 간의 부분적 동일시나 은유 혹은 환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신경 전달은 하나의 신경과 다른 신경의 연접사이에 이루어지며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한다. 이러한 분비는 글라이어 셀에 의해 조절될 수 있고, 신경 전달은 axon말단부의 가지변화를 가지고 온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들뢰즈가 베르그손의 이론을 해석했듯 하나의 사건이 이후 다른 사건들을 경험할 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유아기, 혹은 거울단계 즈음의 경험이 우리의 의식에 형성에 있어 중요한가? 태어난 직후의 실험용 쥐에게 바이러스를 주입하면 초기 항원으로 인식되지만 이후에는 더이상 항체 생산이 없다. 또한 마약의 중독성은 마약에 의해 계속 생성되는 물질을 생리로서 받아들이고 그러한 물질의 부재가 중독현상을 가지고 온다. 우리의 신경도 이러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면 왜 유아기에 신경증이나 도착증 등이 결정되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라깡에 의하면 거울단계와 아버지의 이름은 최초의 금지를 의미한다. 즉, 이전의 단계에 있어서 인간은 금지에 의한 신경 생리적 반응이 일어난 적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금지는 억압에 대한 최초의 신경 대사일 수 있고 이러한 금지는 인간에게 평생 지속된다. 즉, 몸은 이러한 금지를 하나의 생리로서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최초의 금지에 대한 신경 형성이라는 점에서 axon 말단의 구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 않을까 생각된다.
위에서 언급했듯 유아기의 금지를 통해 형성 또는 변화된 신경계는 하나의 생리로서 자리잡고 이후로 신경세포 등의 형태가 변화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평생 혹은 장기간 영향을 끼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금지된 것을 욕망할 수 밖에 없는가?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금지를 겪기 전 우리는 한없는 충족 속에 있다. 하지만 금지를 통해 우리는 '나'라는 시니피앙을 세상속에 하나의 시니피앙으로 자리잡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위에서 말했듯 하나의 신경반응과 그로 인한 반응을 생리로 인식하는 단계를 거치지만 이것은 동시에 금지된 행위에 대한 상황이 억제되고, 억제된 행위가 이루어졌을 때의 신경반응 또한 억제된다. 이것은 기존의 생리로 인식되던 전달 물질의 지속적 분비가 억제되는 결과를 낳는데 금지에 대한 욕망은 이러한 생리적 결핍에 대한 욕망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위와 같은 고찰은 프로이트가 실패했던 여러 상담에도 적용된다. 프로이트의 상담에서 여러 접근을 통해 신경증을 치료하려고 했다. 그 중 첫번째로 한시적 효과를 보인 방법이 신경증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재현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담자는 결국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신경증이나 도착증 등을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 또한 상황을 재현함으로 인해 신경계가 흥분 되어 '금지에 의해 획득한 생리' 의 충족이 이루어졌지 않을까 생각된다. 재현을 통한 충족은 신경계가 다시 안정화되면서 신경증이나 도착증의 치료는 불가능했을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