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무 화가 나서 횡설수설합니다. 두서없는 글이라도 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간 없으신 분을 위해 댓글로 세줄요약 쓰겠습니다
저희 학교는 저번에 교학사 역사교과서 선정사건으로 크게 화제가 되었던 학교입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저희 학교는 정상적으로 7교시까지 수업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간 오전시간에 대강당으로 모여 학교 역사 선생님들이 하시는 역사 특강을 듣게 되었구요. 반에서 25명이 의무적으로 가서 들어야 했습니다. 학교 재단 설립자가 주최한 것이고, 본인이 직접 와서 참관한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강의 내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부터 시작해서 6.25 전쟁까지의 내용을 총 5번의 강의로 진행하였는데, 처음에는 그냥 따분하게만 듣다가 6.25전쟁에 관한 내용에서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6.25가 남침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건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진 선생님의 강의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주요 골자는 이랬습니다.
"민족애로 북한을 통일해야 한다. 그러나 썩은 귤이 주위의 다른 귤을 썩게 만들듯이 우리 내부와 북한에도 썩은 귤이 있다. 썩은 귤은 골라서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 안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력이 바로 그렇다. 반공 의식을 더 키워야 한다."
저와 제 친구들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반공 의식이라구요? 지금이 1970년인가?
선생님은 강의를 끝마치며 반공을 몇번이나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마지막 강의를 들으니 더욱 어이가 없더군요. 마지막 강의는 어떤 역사적 내용이나 교훈같은 것이 담긴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남한에 대한 북한의 도발'을 주루룩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선생님도 강의를 끝마치며 반공 의식과 안보 의식을 강조했습니다.
저 또한 북한이 남한에 대해 계속 도발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반인류적인 폭력행위인가도 잘 숙지하고 있구요. 그런데 반공의식을 강조하는 강의에 이어 그런 내용도 뭣도 없는 강의를 들으니 삐딱하게밖에 들리지 않더라구요.
제일 가관은 설립자의 강연이었습니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올라와 역사특강을 한 소감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처음에는 횡설수설하면서 요점도 없는 이야기를 해서 전혀 집중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더군요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를 만나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위대한 민족의 영도자다. 박정희 대통령 덕에 우리나라는 이만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야당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김영삼은 고속도로 건설하면 안된다고 데모했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거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인권을 제한했기 때문에 국민이 한목소리 한뜻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모순적인 것은 이 얘기 다음에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북한을 신명나게 까더라구요. 그 잘나신 박정희 대통령이나, 본인이 열심히 까고 있는 북한이나 '권력과 체제 유지를 위한 인권 탄압'을 똑같이 자행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지 말입니다. 강당에 있던 학생들 전부가 표정이 썩어가는 게 보이더군요. 질의응답 시간에 제 친구가 설립자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설립자님이 말씀하신 발전의 자금을 위해 일본과 한일국교정상화를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을 일괄 처리해버렸다. 그 때문에 현재 정작 피해자들은 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당당하게 질문했을 때, 강당 전체가 떠나갈 정도의 박수소리가 울렸습니다. 설립자는 "그런 건 역사 선생님에게나 물어 보라"면서 전혀 관계 없는 '악수 하는 방법'이나 '성교 시 필요한 마음가짐' 같은 쓰잘데기 없는 말로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이 잘난 '역사 특강'과 박정희 찬양론을 들으며 얼마나 분노했는지, 몇 번이나 강당을 뛰쳐나가고 싶었는지, 설립자와 대면하고 그 잘나신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희생되어야 했는지 100분토론을 벌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올해가 이 '역사 특강'을 처음 한 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강의가 이번 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후배들이 이따위 헛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감해 주세요. 비난해 주세요. 저는 비록 제 대학 진학에 불이익이 올까 두려워하며 제 친구와 같이 설립자에게 질문하지도 못했고, 교육청에 이 사건을 신고하지도 못한 비겁자에 위선자이지만, 이 사건이 인터넷으로라도 퍼트려져 저희 학교의 학생들이 다시는 제가 들은 헛소리들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루하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