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 "근데 어느 학교 다니세요?" K군 "네? 아. 저 H대요…. A양 "아! 그 학교 OO동에 있죠? K대 옆에?" K군 "(눈의 초점이 흔들린다)네? 아. 네…."
집으로 돌아오는 길, K군은 내면의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젠장. 오늘도 사기쳤다.' '아니지. 사기는 아니지. 나 H대생 맞잖어!.' '웃기시네. 너 OO동 본교생 아니잖아?' '그건! … 그렇지만….' '그럼 임마 너 오늘 그 여자한테 사기친 거야!' '아. 몰라. 짜증나! 나 오늘 정말 그 여자랑 잘 해보고 싶었는데!'
#2. 사기는 오늘만 쳤냐? 너 상습범이잖아
길거리를 가다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패션잡지 기자를 만났다.
기자 "패션 감각이 남다르시네요." K군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무슨 말씀을요. 아니에요." 기자 "사진 한 번 찍어도 괜찮죠?" K군 "하하. 네." 기자 "사진은 '스트리트 멋쟁이'코너에 실릴 거예요. 성함하고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그리고 어느 학교 다니시는지도 알려주시겠어요?" K군 "이름은 김OO이구요. 나이는 25살. (어쩌지?) 음…. 학교는 H대 다녀요." 기자 "H대 다녀요? 공부도 잘 하시나보네요? 인터뷰 고마워요." K군 "…네."
K군, 다시 내면의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급우울'해 진다.
'너 임마 다시는 사기 안 친다며?' '야. 이건 사기는 아니잖아.' '니가 H대생이라고 하면 당근 본교생이라고 생각하지 누가 캠퍼스 다닌다고 생각하냐?' '그럼 어쩌지? 잡지에 H대생 김OO이라고 나가면 사람들이 나보고 사기꾼이라고 할 텐데?' '당연하지. 임마. 너 저번에 사기 안 친다며? 하긴 니가 사기친 게 한두 번이냐?'
#3. 못난 놈, 엄마까지 사기치게 만드냐?
일요일, 엄마에게 끌려 오랜만에 교회를 갔다가 최 집사님을 만났다.
최 집사님 "아이구~ 이 집사님 오랜만이에요. OO가 이렇게 컸구나!" 엄마 "최 집사님. 어떻게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K군 "안녕하세요?" 최 집사님 "그래. 너 언제 이렇게 멋있어졌니? 몰라보겠다. 얘. 호호호." 엄마 "덩치만 컸지. 아직 애예요. 호호호." K군 (므흣) 최 집사님 "그래. 이 집사님. OO이 학교는 어디 다녀요?" 엄마 "아…. 네. H대요." K군 (엄마를 힐끗 바라본다) 최 집사님 "아이구~ 공부도 잘 했네!" 엄마 "(K군의 손을 잡아끌며 도망치듯) 잘 하긴요. 저흰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다시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시작한 K군.
'이그. 못난 놈. 오죽 못났으면 엄마까지 사기치게 만드냐?' '야! 내가 사기쳤냐? 그리고 우리 엄마가 무슨 사기를 쳐? 나 H대 다니는데….' '너 이제 양심도 없다. 니가 H대 다닌다고 하면 최 집사님이 잘도 알겠다.' '뭘?'
'분교생인거!!'
▲ 2007년 대학의 서자들은 학벌 때문에 운다. 학벌의 장벽이 높을 수록 입시경쟁도 치열해진다. 사진은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4. "야! 그 사람들한텐 우린 후배도 아냐"
오랜만에 학교 과동기 L양을 만났다.
K군 "이야~ 꼬맹이! 취직하더니 이뻐졌다?" L양 "원래 이뻤거든?" K군 "그래. 회사일은 재밌어? 너 취직 잘 했다고 과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한턱 쏴!" L양 "야. 언제는 내가 안 샀냐? 군대에서 까마귀 고기만 먹었나?" K군 "그나저나 니네 S사는 뭘 보고 뽑냐?" L양 "토익도 보고 학점도 보는데 아무래도 학벌을 제일 많이 보더라." K군 "그래? 우리 H대도 좀 알아주나보네? 하하하!" L양 "우리 H대? 알아주지, H대. 근데 저쪽 H대는 알아주는데 우리 H대는 무시당하지." K군 "야! H대면 H대지! 이쪽 저쪽이 어딨어?" L양 "순진한 거냐? 멍청한 거냐? 야! 저쪽 H대 선배들 우린 후배로도 안 봐!" K군 "……" L양 "왜? 우울해?"
#5. "복수전공하면 본교 졸업장 나온대!"
과사무실. 취업 고민에 한숨만 쉬는 예비역들이 모여 수다를 떤다.
P군 "이제 다음 학기만 다니면 이 짓도 끝이네!" J군 "이 짓 끝나면 뭐 특별한 거라도 있는 것처럼 말한다? 너 토익 점수는 있냐?" K군 "짜식들아. 학점부터 챙겨. 이 형을 봐. 얼마나 열심히 사냐?" J군 "너 아직도 군대로 착각하냐? 왜 삽질을 계속 하냐? 토익이 중요하다니까!" K군 "야. 그것도 아니더라. 내가 L 만났는데…." J군·P군 "만났는데?" K군 "학벌이 제일 중요하고 우리 학벌론 힘들다더라." P군 "그래서 말인데. 니들 들었냐? 복수전공 신청해서 1년 저쪽에서 더 다니면 저쪽 졸업장 준다더라. 그래서 난 하려고." K군 "진짜? 복수전공 뭐 할 건데?" P군 "신방!" J군·K군 "신방같은 소리하네. 니가 언제부터 신방에 관심 있었다고?" J군 "나도 들었는데. 그거 해도 우리 이쪽 학생인 거 기업에서 다 안다더라. 하지마."
갑자기 과사무실에 정적이 흐른다.
#6.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소인이 평생 설운 바는 대감의 혈육으로 남자가 되었사오나,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신 은혜가 깊거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함을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서자였던 홍길동을 통해 허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이 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21세기 조선, 아니 대한민국엔 아직 '길동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