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밥티스트 베시에르Jean-Baptiste Bessieres (1768~1813)
원수베시에르는 나폴레옹의 가장 유능한 장수들 중 하나였으며, 그로부터 '친구'라고 불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베시에르는 1768년에 남부 프랑스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786년에 루이 16세 시절 프랑스군에 입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한다.
그는 대혁명기 때 혁명군에 남았고, 혁명 전쟁 기간 동안은 동 피레네 방면군과 모젤군에서 복무하면서 늘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경력을 쌓아 1796년에는 대위로 승진하였다.
바로 이 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이 모젤 군의 지휘를 맡아 이탈리아 원정을 감행하였다. 로베르토 전투에서 베시에르의 용감함은 보나파르트 중장의 눈길을 끌었고, 나폴레옹의 대승리로 끝난 리볼리 전투에서 베시에르가 이끈 중대의 활약으로 인해 베시에르는 소령으로 승진했다.
베시에르의 군사적 재능을 눈여겨 본 나폴레옹은 이후 이어진 전역들과 전투들에서 모두 베시에르를 부관으로 대동하고 갔다.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 당시에는 아크레 전투와 아부키르 전투(아부키르 해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 아부키르 전투는 육지에서의 전투를 의미하며, 보통 아부키르 해전이라 불리는 전투는 나일 강 전투로 분류된다.)에서 군의 선두에 서 전과를 올렸고, 이로 인해 준장이 된다.
이집트 원정이 실패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후 베시에르는 1800년의 마렝고 전투에서 통령 근위대(이후 나폴레옹의 '친위대'가 되는)를 지휘했으며 전투 후반에 기병 1개 연대를 이끌고 돌격하는 용맹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그의 성과는 1802년에 그를 중장이자 사단장의 직위에 올려놓았으며, 나폴레옹이 1804년에 황제의 관을 썼을 때 임명한 원수들 중 하나가 된다.
1805년부터 1807년까지 그는 프랑스 제국군 소속의 근위 기병대 전체의 지휘를 맡았고, 소위 '반도 전쟁' 이라 불리우는 스페인 전역에서도 다른 장군들과 함께 스페인 원정에 파견된다.
이 때 그는 최초로 개별 지휘(다시 말해,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서가 아닌, 독자적 작전 수행)를 맡았고, 1808년 메디나 델 리오 세코 전투에서 숫적으로 그의 1만 4천 프랑스군을 압도하는 2만 천 명의 스페인 정규군을 완벽하게 격파해낸다.
스페인 전역에서 다른 장수들이 연달아 패배하거나 게릴라 전에 병력을 소모하고 있을 때 그의 부대는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여, 이어진 소모시에라 전투나 코루나 전투 등에서 스페인군과 영국군을 패주시켰으며 나폴레옹 본인이 직접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는 그 참모로 소임을 다 했다.
1809년의 에슬링 전투에서는 전 기병대를 몰아 몇 번이고 끊임 없이 오스트리아군 본대에 돌격을 가해 오스트리아 군의 총 공세를 막아내었고, 이후 바그람 전투에서는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날아온 포탄에 말을 잃기도 했다. 낙마한 그는 금새 다시 일어나 새로운 말을 찾아 타고 전투를 속행했다고 한다.
베시에르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여러 전역에서 임무를 수행했는데, 나폴레옹은 베시에르를 먼 곳에 오랬동안 보내기를 싫어했으며 베시에르가 옆에서 자신을 보좌해주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베시에르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 1812년의 러시아 원정에서도 나폴레옹을 따라갔다. 보로디노 전투에서도 그는 기병 돌격을 감행하며 러시아군 전열을 무너뜨렸고, 모스크바 소개 때는 후퇴하는 본대가 공격 받지 않도록 기병대로 신중히 엄호했다.
1813년에 대불 동맹군을 상대로 한 전역에서 나폴레옹은 베시에르를 프랑스의 모든 기병대의 총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베시에르는 이 직위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뤼벡 인근 지방에서 전선을 시찰하던 그는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에 의해 흉부 전체가 짓뭉개져 즉사했다.
베시에르는 오랜 세월 나폴레옹을 보좌했으며, 그가 참전한 모든 전투와 작전들에서 성과를 올린 성공적 군인이었다.
무엇보다도 기병대 지휘에 특출난 지휘관이였고, 용맹무쌍하기 짝이 없었으나 동시에 냉정한 판단력을 갖춘 장군으로써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명장이였다.
또한, 그는 휘하 병사들을 자상히 대했으며 포로들에 대해서도 인도적으로 처우해준 장수였다.
특히 스페인 전역 때 그의 지휘는 스페인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 최소화와 포로가 된 스페인군에 대한 관대함으로 환호받았다.
이로 인해 그가 전사했을 때 스페인 (화가 고야의 유명한 그림이 말해주듯, 프랑스인이라면 이를 갈았을) 의 성당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미사를 집전했을 정도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개인에 대해서는...그만큼 충성스럽고, 유능하고, 정의롭고 신의있는 신하도 많지 않았다.나폴레옹 본인이 베시에르의 죽음을 비통해 한 것은 물론이다.
베시에르의 죽음은 튀렌 원수의 삶과 죽음에 비견되곤 한다..제국의 26원수들 중, 란 원수와 함께, 베시에르는 전장에서 전사한 유일한 장수다.
아까운 죽음이다. 만약 그가 더 살아 라이프치히나 워털루에서 싸웠더라면....
장란느와 더불어 전사한 한명입니다... 베시에르는 관대함과 능력을 갖춘 명장이었죠..
개인적으로 마세나와 란느와 더불어 나폴레옹의 명장중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성과 군인으로서의 재능도 뛰어났던 베시에르 나폴레옹이 잃어서는 안됐던 그래서 안타까운 사람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