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비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하고 싶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호기심에 바짝 긴장한 폼으로
첫선 보는 마음처럼 화장을 곱게 하고 부지런히 서둘러서
약속장소 한참 못 미처 서는 아주 천천히
일부러 바짓가랑이가 다 젖도록 걸어서 찻집에 가고 싶다
몰래 몰래 눈치 살피며 어렵사리 말문 열어
취미가 뭐냐 가족이 몇이냐 하며
통성명이라도 하는 촌스러움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진한 블루마운틴에 헤즐넛향이 소르르 피어나는 커피는
후루룩 한꺼번에 반 잔은 마실 수 있어도 꾹꾹 참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모양 하며
온갖 우아함 다 부려가며 아주 천천히 마시고 싶다
비가 오면 나는 데이트하고 싶다
정연옥님의 詩 '비가 오면 데이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