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우익이고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의 미화가 드러나는 작품은 정말 많죠.
지옥의 묵시록, 반딫불의 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등.
그러나 이런 작품들을 싫어할 때는 그 정당한 이유를 알고 싫어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을 겪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가 다 고통 받고 있다. 결국 모두가 다 피해자일 뿐이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논리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다 같은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 사고 방식은 사회진화론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자연계의 약육강식 논리를 인간사회에도 적용시킨 겁니다.
약한 자는 어쩔 수 없이 침략당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제국주의 전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강하지 못한 나라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약소국에서는 강하지 못한 우리들의 책임이다. 힘을 길러야 한다(다른 것은 일단 제쳐 두고, 다소 다른 부분들이 희생당하더라도)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힘이 강하면 침략해도 됩니까?
우리는 이미 공교육을 통해 우리도 모르게 머릿속에 이 사회진화론, 그리고 그 궤를 같이 하는 발전사관이 심겨져 있습니다.
발전사관이라는 것은 역사는 발전해 가는 것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익숙하고 당연해 보이지요?
그러나 이 말이 내포하는 것은, 지금은 발전해가는 과정이니 다소 억울하고 힘들겠지만, 미래를 위해서 참아라. 혹은 과거를 봐라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만큼이라도 잘살고 있지 않느냐.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이지요.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작가의 우익 발언이 아니고 이 사고방식들입니다.
우익은 나쁘다… 우익이라서 싫다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우익을 싫어하려면 우리 자체도 민족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윤봉길 의사를 의사라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이슬람에서는 빈라덴이 김원봉 선생 급이지만, 미국에서는 극렬테러분자의 거두일 뿐이지요.
우리는 우리 민족이니까 당연히 윤봉길 의사라고 부르는게 맞습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하지 마세요. 한국사람이니까 당연한겁니다.
당연한 건데 왜 일본 편을 드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일본편을 드는게 아닙니다. 당연한 것은 논할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최초에 이야기 한대로 우리 속에 제국주의적사고방식에 대해 이미 우리도 익숙해져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민족중심 사고라고 할지라도요. 허구적으로 존재하는 순혈순수대한민족주의로 등장하게 되는 '전체주의'와 배타성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전체주의적인 민족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다른 민족의 전체주의적 우익에 대해 비판 한다는게 맞습니까? 비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는 비판이죠. 한쪽에서 비판 함과 동시에 다른쪽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민족주의적 관점이지만 ‘평화’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
이것도 지극히 우익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민족은 평화적인 민족이고 평화를 말하는 훌륭한 인물들 밖에 없지 않은가? 저쪽은 무력으로 침략을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못한 항일 무력투쟁을 평가절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승만의 건국절 논란과 본질이 같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와 나라를 잘살게 하기 ‘위해’는 엄연히 다르다고 보십니까?
현실적으로 비난하고 안보는 것으로 무슨 현실적 변화나 해결이 있을 수 있을까요? 독립운동을 하신 선조들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 머리 속에 박힌 기타 다른 식민지적 사고 방식도 함께 걷어내야겠죠. 그리고 애초에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부터 없애야겠고요.
결국 핵심은 진격을 보니 마니를 가지고 힘을 소모하기 보다 진격이라는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작품은 너무도 직설적으로 현 시대를 사는 99프로 인류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오프닝 가사에 나오지요. 거짓된 번영, 가축이여 안녕.
이것을 봐야 합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이 작품은 판타지 중세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 우리의 이야기 입니다.
노란머리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데 그가 1화에서 말하지요. 사람들은 어째서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올꺼라 생각하지?
많은 분들이 보셨을 지도 모릅니다. 영국에선가 어디에서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전국민이 경제력을 기준으로 키를 재서 하루 24시간 동안 행진을 합니다.
처음 5분 동안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습니다. 마이너스 경제 상황이라 지하로 지나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점점 개미 크기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10센치 정도?를 전후해서 지나갑니다. 저녁에 다되어서야 점점 키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23시가 되자 50미터 100미터 급 사람이 점점 지나갑니다. 그런데 종료 1초 2초 직전 얼굴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지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이겁니다. 거인의 진격이란. 부채로 성장하는 자본주의와 현 법정화폐에 대해 조금만 기사를 보시면, 우리는 정말 거짓된 번영을 누리고 있고, 이 거인들의 먹이감으로 가축으로 길러지고 있다는게 맞다는 겁니다.
조금 경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금 어떤 상황이실지 아실 겁니다. 미국의 양적 완화, fed등등 조금만 관심을 갖으면 유투브에 동영상으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호소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월 마리아 속에서 100년 평화기간 동안 태어난 세대는 거인의 존재에 무감각합니다. 우리 역시 법정통화의 시대에 태어나 우리지갑 속 돈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영원히 발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인의 등장에 벽을 부수는 장면에서 과거로 따지면 한미fta같은 것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은 것이 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언급하기 그러한 것이 아무도 정확한 예측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로 여러 가지 주장을 하지만 모두가 다 이제까지의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 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언론은 두 가지 방법으로 권력자에 봉사합니다. 하나는 사건에 대해 권력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설명하고 접근합니다. 자연스럽게 그 시각을 국민들이 갖도록 합니다. 두번째는 그 사건에서 저 멀리 떨어져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도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관심도 없고 사건이 먼지도 모르게 됩니다. 우리나라 언론이 잘하는 것은 2번째지요. 사건이 일어났다고만 말하지, 그 사건이 국민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 안해줍니다.
불행히도 이 세계경제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은 2번째를 취합니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인이 쳐들어왔을 때로 돌아가봅시다. 예렌과 같은 훈련생이 있었지만, 그저 개척을 하러 간다는 명목으로 죽어 없어진 15만? 이 있습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부른 것 일까요. 지금은 우익이고 어쩌고를 떠나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 때입니다. 거인의 공격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