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고장소를 자꾸 지하철 환풍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씁니다.
지하철 환풍구 위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심지어 차가 지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공합니다.
그리고 쓰레기(담배꽁초 등)를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쉽게 청소하려고 얕은 깊이에서 공기통로가 꺾이기 설계합니다.
즉, 추락해도 1~2미터 정도죠.
(물론 깊은 곳도 몇군데 있습니다. 대신 매우 튼튼하게 되어 있겠죠. 아마 내일부터 점검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오늘 사고가 난 곳은 지하철 환풍구가 아닙니다.
건물지하(주차장 등) 환풍구는 사람들이 올라올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시공합니다.
올라오더라도 매우 적은 사람이 올라온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오늘 사고가 난 곳처럼 깊이가 10미터 이상 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사고에서 생각해 볼 것은 몇가지 있습니다.
외국처럼 추락의 위험이 있는 모든 구멍은 웬만한 무게로는 덮개가 파손되지 않도록 시공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접근을 할 수 없도록 차단용 펜스를 설치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죠.
오늘 사고가 난 곳의 덮개철망은 연철로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덮개는 허용하중도 낮을 뿐더러 하중을 초과하면 급속히 찌그러지는 거죠.
덮개 재질상의 비용문제로 그랬다면 펜스라도 설치했어야죠.
제가 일하던 직장에는 환풍구 주변에 값싼 철조망을 설치했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올라가면 덮개붕괴의 위험이 있어서 그랬죠.
청소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높은 곳에 올라가서 공연이나 스포츠경기를 구경보려는 사람들의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도 무척 안타까운 부분이죠.
안전요원들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렸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죠.
사실 공연장 안전요원들의 임무라는게 관중이 앞으로 몰려서 압사를 당하는 사태를 예방하거나
관중이 무대에 뛰어 올라가서 공연자를 껴안는 등 추행하는 걸 막는데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안전요원들도 환풍구 덮개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도 못했을 것이구요.
사회자의 반복적인 방송을 무시한 피해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습니다.
명단을 보니 대부분 20~30대더군요.
하지 말라는 것을 듣지 않은 책임은 분명 피해보상 부분에서 감경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어쨋든 지금은 누구의 책임이냐, 혹은 누구 책임이 더 크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고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고, 한가지라도 제대로 되어 있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리고 고려요소에 들어있지도 않았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 건축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만에 하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시공을 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준공검사를 받았다면 이것은 부패의 문제로 처벌을 강구해야겠죠.)
지금은 우리가 운용하고 있는 안전규정을 재점검하고, 우리의 안전의식을 제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상의 안전기준이나 공연의 사고예방활동 적정성의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세월호에 대한 후속조치를 보면 전문가들의 사후처리에 대해 그다지 신뢰가 되지 않는 점은 저도 욱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