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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하늘은 왜 주유를 낳고, 또 제갈량을 낳았단 말인가?!
게시물ID : history_55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교묘한이야기
추천 : 12
조회수 : 11963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2/09/05 14:31:41

[BGM]http://pds22.egloos.com/pds/201208/21/36/1.swf

 

왠지 사람들의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내용만 진실로 믿고,

주유를 별 대접 안하는 거 같아서 조금 안타깝네요. 그래서 주유공근에 대한 글을 올립니다.

 

주유는 삼국지연의 최대의 피해자 중 한명이다.

 

 

周瑜 公瑾
생몰년도 175~210

손오의 장군이자 전략가. 자는 공근

 

여강(지금의 안휘성 부근) 사람으로 어려서 손책과 친구로 손씨 가문에 인연이 있었다.

이후 손책이 강동을 평정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그에게 귀순하여 강동 지방에 창업하는 것을 크게 도왔으며,

외모가 말끔하고 성격도 좋아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주랑(周郞) 이라고도 불렸다.(손책은 손랑)

또한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어도 악사들이 연주하는 곡조가 틀린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봤는데,

강동에서는 '곡조가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라는 말도 있었다.

게다가 부인은 당대의 절세미녀인 이교 자매 중 동생인 '소교'이다.

 

 

손책이 죽음을 앞두고 손권에게 "안의 일은 장소(張昭)에게 묻고, 밖의 일은 주유에게 물으라."고 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 받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말년에 제갈량에 대한 질투심이 불러일으킨 홧병으로 죽는, 소위 찌질이로 표현된다.

결국 연의에서 주유는 '기생유 하생량(旣生瑜 何生亮)'으로 한껏 비하되었다.

 

하지만 사서에서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주유가 도독이 되자, 정보 등 오의 명장들이 애송이라고 업신여기고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주유가 깍듯이 대하여 앙금을 풀고 대의를 위해 뜻을 함께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의에서 보여주는 깐깐한 모습의 주유와는 사뭇 다르다.

 

 

 

 

208년, 원소를 무찌르고 화북을 평정한 조조는

형주목을 지키고 있는 유표를 정복하고 형주땅을 차지하기 위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 하였다.

 

유표의 급사 이후, 유비는 강릉으로 도망치게되고 조조는 유비를 추격하였다.

조조군은 장강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적벽에서 손권군과 대치하였다.

 

 

(연의에서 주유가 그토록 경멸한 인물인 제갈량)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짚을 가득 실은 배를 띄워보내 조조군의 10만개 화살을 꽁득(?)한 것은

상당히 유명한 일화이다.

하지만, 이 계책을 낸 것은 바로 '주유'이다.

 

영화 "적벽대전"에서 나타나듯이,

적벽대전에서의 거의 대부분의 전략전술은 주유의 머리에서 나왔으며,

전투에서도 직접 병사를 이끌며, 문무를 겸비한 맹장임을 입증하였다.

 

적벽에서의 대승 이후,

연의에서는 주유가 유비 대신 촉 공격할테니 길을 내달라는 핑계로 쳐들어 오는 것을

제갈량은 간단히 파악하고 그를 물러가게 해버린 후, 주유는 제갈량의 조롱 편지를 받고 분사했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도 사실이 아니다.

 

 

 

(조인은 정사에서 조씨 문중의 최고의 장수로 묘사된다. 심지어 장료보다도 높이 평가받는다.

실제로 조인이 전투에서 진적은 주유 이외에 관우밖에 없다.)

 

연의에서와 달리 주유는 親유비파 였다.

물론 막강한 조조군을 손권군 혼자서 대항하기 없었기 때문이였기에 그랬다곤 해도,

주유는 유비에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주유가 손권에게 진언하길,

"유비에게 금은보화와 호화로운 장난감을 주어 오에 붙잡아 둬야한다."

라고 하여 천하이분지계를 노렸으나, 손권은 "유비는 잡아 둘 수 있을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며 거절하였다.

 

유비에 대한 계획이 실행되지 않자, 주유는 곧장 강릉의 남군을 공격하게 된다.

연의에서 주유는 제갈량의 계략에 속아 남군을 빼앗긴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주유가 조인을 무찌르고 남군을 얻고나서

남군을 쪼개 동맹강화를 위해 유비에게 준다.

하지만, 주유는 이때 조인, 서황과의 혈투에서 입은 화살로 인한 부상이 심각하였으나 무리하게 전투를 감행한 탓이 병이 들었다.

 

강동으로 돌아온 주유는 다시 병마를 조련하여 서천 정벌을 준비하지만 병이 도져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주유는 자신의 후임으로 노숙을 지목하고 얼마 안가서 병사하였다.

 

 

 

"여읍오동주씨종보"에 기록된 주유는 '영달하고 조숙하며 문무를 겸비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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