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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역사 이야기들.
게시물ID : history_55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일런트힐
추천 : 4
조회수 : 10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9/04 01:58:04



출처 : http://cafe.naver.com/historygall/2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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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성(洪允成)은 용모가 웅위(雄偉)하고, 체력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젊어서는 가난하였는데 힘써 배워서 급제하니, 사람들이 재능이 있는 웅걸로 기대하였다.세조(世祖)를 만나게 되자, 총애하여 돌봄이 매우 융숭하였고, 홍윤성이 본시 빈궁하였음을 알고 많은 양전(良田)을 내려 주었다. 홍윤성이 재화를 늘리는 데 힘써 홍산 농장(鴻山農莊)에 쌓인 곡식은 거만(鋸萬)5572) 이었고, 노복(奴僕)은 세도를 믿고 함부로 방자하여서 조금이라도 어기고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혹 장살(杖殺)하기도 하였다. 세조(世祖)가 온양(溫陽)에 거둥하여 목욕(沐浴)할 제, 사족(士族)의 부인 윤씨(尹氏)가 상언(上言)하여, 그 지아비[夫]가 홍윤성의 노복에게 살해되었음을 호소하니, 명하여 유사(有司)에 국문하게 하여, 그 노복을 환형(轘刑)하고 홍윤성은 국문하지 않았다. 사헌부(司憲府)에서 탄핵하여 아뢰기를,
홍윤성(洪允成)의 거칠고 광망(狂妄)한 태도와 교만하고 제 마음대로 날뛰는 형상을 성감(聖鑑)은 통조(洞照)하소서.”
하니, 당시에 이르기를,
“그의 잘못을 똑바로 맞추었다.”
고 하였다. 시첩(侍妾)·노복(奴僕)이 조금이라도 어기고 거슬리면 문득 용서하지 않고, 궁검(弓劍)을 쓰기까지 하였으며, 아내[妻] 남씨(南氏)에게 자식이 없어서 같은 고을의 사족(士族)김자모(金自謀)의 딸을 강제로 취하여 장가들었다.

[註 5572]거만(鋸萬) : 아주 많은 것. ☞

참고로 홍윤성의 졸기인데...실록에 이정도로 개망나니 였다는 기록이 있고

실제 그의 생전에 사헌부의 탄핵과 상소에도 공신이란 이유로 세조는 끝까지 그를 감싸고 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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