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Archaeology Special (3)-the Contemporary British Archaeology-The Two Axis Supporting Great Britain, Oxford and Cambridge Archaeology
"당신의 이름은 뭐지요?" "제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입니다.(My name is Bond , James Bond.)"
낯익은 어투로 시작하는 이 대사는 현대 영국이 문화 수출 상품 1호로 생각하는 영화 영국 해외 정보국(MI6; Secret Intelligence Service) 요원 007시리즈의 주인공 이름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40년 동안 5대(代)까지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으로, 같은 음악, 같은 조연들이 나온 이 영화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영국 옥스포드 대학 출신이란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영국에 관계된 영화, 소설 등에서 상류 엘리트 출신들이 등장하고 특히 19C∼20C 초 중반까지에 대다수의 상류 엘리트들은 옥스포드 대학 출신으로 나온다. 그리고 조금 유명하다 싶은 고고학자들도 옥스포드 대학 출신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대표적인 모험 영화(Adventure Film)인 인디애너 존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인디애너 존스는 시카고 대학 인류학과(고고학 전공)를 나온 옥스포드 대학 유학파이다. 실제 고고학자들도 둔황 석굴을 파헤친 오렐 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발굴한 에드워드 로렌스, 유럽 선사 문명 연구의 선구자 고든 차일드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 고고학을 이끌고 있는 배리 컨리프(Barry Cunliffe)가 유명하다.
옥스포드 대학교는 1096년에 이미 학습 형식이 있었으며 1167년 헨리 2세가 학생들이 파리 대학으로 가는 것을 금지하면서 급격히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후 1249년 밸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 1264년 머튼 칼리지(Merton College)가 생겼고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13C 옥스포드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학문 성향에 반발한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케임브리지 시(市)로 옮기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옥스포드와 달리 케임브리지는 자연 과학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과학 혁명이라고 불리는 17C∼18C무렵에 뉴톤을 비롯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면서 큰 성장을 이루었다. 물론 이것은 귀족들의 기부 문화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 영국에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케임브리지가 대학 평가도 및 인지도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옥스포드는 전체 평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옥스포드 고고학의 역사는 공식적으로는 1961년 10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이전인 1946년 크리스토퍼 혹스(Christopher Hawkes)가 첫 번째 유럽 선사학 교수로 임명받고 얼마 후 새로 생긴 로마 제국 고고학 교수로 임명된 이안 리치몬드와 협력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유럽, 로마, 에개 해(海) 고고학에 참가하는 조사단이 구성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케임브리지의 고고학은 1885년 해부학과에 형질 인류학 강좌가 개설되면서 선사 고고학 내용이 일부 포함되었고 고전 고고학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후 선사 고고학을 주축으로 1910년 A. 폰 휘겔(Anatole von Hugel) 남작이 기증한 대학 부속 고고학·인류학 박물관이 건립되면서 1915∼1916년 독립적인 선사 고고학 강좌가 진행되었다. 이후 1920년 고고학·인류학 학부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고고학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이 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케냐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 발굴의 주역 루이스 리키(Louis Leakey), 그레이험 클라크, 글린 다니엘(고고학 발달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옥스포드의 고고학은 19C∼20C 초·중반이 그 절정기였다고 말할 정도로 이 때에 왕성한 야외 발굴 조사가 행해졌다. 대표적인 곳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님로드, 니네베 등이 있으며 근년의 발굴로는 햄프셔의 데인베리(1994∼1998), 브리타니의 르 요데(1991∼2002 <예정>), 리지웨이의 힐포츠(1996∼2000) 등을 꼽을 수 있다.
1960년대 과학계의 제2의 혁명이라고 지칭되는 패러다임 변화를 겪으면서 고고학계에도 단순한 유물의 수집이나 분류를 넘어 체계적으로 사회 변동을 설명하려는 신(新) 고고학이 등장하게 된다.(이것이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고고학의 우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미국에서는 루이스 빈포드의 인류학적 또는 인류학 속에 포함되는 고고학적 시각이, 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의 데이비드 클라크의 독립 단위의 고고학적 시각이 나타나게 된다. 특히 데이비드 클라크는 컴퓨터와 통계학을 이용해 자료를 계량화하는, 분석학파의 관점을 도입하여 1968년 분석 고고학(Analytical Archaeology)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 후 1970년대에 신(新)고고학이 과정 고고학(processual archaeology)이라 불리면서 고전 고고학을 대체하였고 1980년대 과정 고고학과 후기 과정 고고학(post-processual archaeology)이 격론을 벌였고 1980년대 후반 후기 과정 고고학과 인지 과정 고고학(cognitive processual archaeology)이 논란을 벌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후기 과정 고고학을 이끌고 있는 선두 주자는 케임브리지의 이안 호더(Ian Hodder, 1948∼)이고 인지 과정 고고학을 이끄는 인물은 역시 같은 대학에 재직중인 콜린 렌프루(Colin Renfrew, 1937∼)이다.(후기 과정 고고학은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끌어들였는데 후기 실증주의, 구조주의, 구조화 이론, 해석학적 접근, 비판 이론,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그것이다. 인지 과정 고고학은 1989년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의 발달과 궤적을 같이 하는데 물질 증거를 바탕으로 과거인들의 사유 방식 내지는 사고를 규명하고자 하는 고고학 사조(思潮)이다.)
1980년대 이후 현대 영국 고고학은 많은 연구 성과와 고고학 사조, 방법론 등을 내면서 발전해 왔다. 특히 오늘날에는 과학·기술 방법론과 결합하면서 과학적 고고학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영국 케임브리지의 고고학이다. 이에 반해 옥스포드 고고학은 그 흐름을 따라가며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고 정리하고 있다.
과학 기술에 집착하게 되면 고고학이라는 인문학의 목적이 전도되는 결과가 올 수가 있다. 과학적 방법론을 개척하는 케임브리지와 그에 맞서 인문학적 균형을 맞추어 주는 옥스포드가 있기에 현대 영국 고고학은 미국 고고학과는 다른 고고학다운 고고학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및 참고 사이트]
1. 추연식著, 『고고학 이론과 방법론-최근 연구 방법론과 연구사조』, 학연문화사, 1997.
2. 최몽룡·최성락 편, 『인물로 보는 고고학사』, 한울 아카데미, 1997.
원글 - Miecky님의 http://blog.daum.net/mickywoo/3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