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마음으로 사죄드린다…” 가위 대신 국화 들고 세월호 분향소 다시 찾은 서북청년단 집회 참가자
서북청년단 세월호 반대 집회에 참가했던 노병만씨가 8일 서울광장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엎드려 절하며 사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달 28일 보수단체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5명이 서울시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시청 옆 가로수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이 달렸다. 리본이 오래돼 너덜너덜해졌으니 가위로 정리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가위와 상자를 들고 서울광장 세월호 분향소 쪽으로 향하다 경찰과 서울시 직원들에게 저지당했다. 노병만씨(51)는 이날 모인 5명 중 한 사람이다.
노씨가 8일 다시 서울광장을 찾았다. 이날 그는 가위 대신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분향소로 향했다. 노씨는 세월호 희생자들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무릎을 꿇었다. 굳은 얼굴로 수차례 엎드려 절을 했다.
노씨는 전북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다. 2년 전부터는 ‘독도 지킴이’를 자처하며 활동하고 있다. 고추 농사, 콩 농사 한 돈으로 일본 도쿄도청과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부산 주한일본영사관을 오가며 ‘독도는 우리땅’ 1인 시위를 다녔다. 노씨는 “중학교 밖에 못나와 많이 배우지를 못했다. 독도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세월호 참사도 잘 몰랐고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서북청년단이 가위를 든 그날 오전, 노씨는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인은 그에게 “할 일이 있다”며 “오후 1시까지 서울시청 앞으로 오라”고 말했다. 노씨는 고향친구 자녀 결혼식에 가려고 남원에서 경기 안양으로 가던 중이었다. 지인의 부름에 결혼식 축의금만 내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노씨는 “연락도 왔으니 오랜만에 사람 얼굴이나 볼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시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지인은 노씨를 보자마자 ‘서북청년단’ 다섯 글자가 새겨진 조끼를 입혔다. 손에는 가위를 들렸다. 노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바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씨는 집회 후 남원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에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안양 결혼식에 참석한 고향 선배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서북청년단에 대해 설명했다. 노씨는 “선배가 크게 혼을 냈다. 나도 그제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서북청년단 세월호 반대 집회에 참가했던 노병만씨가 8일 서울광장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고개 숙여 사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email protected]
노씨는 “서울 광화문 청운동에서 그리고 진도 팽목항에서 지금도 많은 분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알았다. 너무나 죄송했다”고 말했다. 죄책감 때문에 남원의 한 절을 찾았다.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세월호 참사 가족 한 사람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로 사죄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노씨는 서북청년단 시위 이후 꼭 10일 만에 다시 서울로 향했다.
노씨는 분향소 조문 후 다시 남원으로 내려갔다. “아직은 참사 가족분들을 뵐 자신이 없다”고 했다. 대신 “앞으로 몇 번이라도 다시 이곳을 찾겠다. 가족들도 뵙겠다. 그분들께 도움이 된다면 심부름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노씨의 사죄 소식은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단원고 임경빈 군 어머니 전인숙씨는 이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농성장에서 “우리가 그분에게 잘못했다고 지적할 수는 없다. 다만 그분이 사죄를 하고 싶으시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그리고 “심부름을 하실 필요는 없다. 그저 기회가 될 때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아 달라. 한 번 더 우리 아이들과 희생자들 얼굴을 봐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