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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연결된 인도 세계와 동남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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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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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6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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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 2012/09/02 02:41:20

6. 교통의 요충지였던 동남아시아

(인도의 변경에서 교통의 요충지로. 1세기-)

 

. 생긴지 얼마 되지 않는 동남아라는 명칭

면적이 남한의 약 45배나 되는 동남아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다. 하지만 동남아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작전 용어로 사용한 사우스 이스트 아시아(South-east Asia)’를 번역한 것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세기에 이 땅에 진출한 유럽인은 인도차이나(Indochina:인도차이나(중국)의 중간에 위치한 땅)와 인도네시아(Indonesia:인도의 섬들) 등으로 불렀다. 즉 이곳을 힌두 세력의 변경지역으로 보았던 것이다.

확실히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Vietman) 북부를 제외하고, 13세가까지 동남아는 인도 문명의 영향 하에 있었다. 예를 들어 말레이(Malay) 반도와 자바(Java) , 수마트라(Sumatra) 섬 등의 지명과 미얀마(Mayanmar) 등의 국명, 싱가포르(Singapore), 자카르타(Jakarta) 등은 모두 인도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양한 환경의 동남아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업 발달이 늦고 인구가 적으며, 북에서 남쪽을 향해 파상적으로 민족 이동이 반복된 지역이었다. 19세기 초반에도 총인구가 1000만 명 정도였으며, 여기에 화교와 인교(인도인 이민자)가 이주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고대부터 바닷길의 요충지였던 말리카 해협

동남아는 말레이 반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있는 길이 800km에 폭 약 50km~320km의 마라카(Malacca: 멜라카라는 방향을 내는 나무에서 유래) 해협을 중심으로 인도양과 벵골 만, 남중국해가 교차하는 바닷길의 요충지에 위치해있다.

동쪽이 좁은 말라카 해협은 북쪽 인도양의 내해인 안다만(Andaman) 해와 남쪽의 남중국(South China)해를 연결하는 해협으로, 이곳에는 빈탄 섬(Pulau Bintan: 보크사이트의 산지, ‘이라는 뜻)과 바탐 섬 등이 리아우 제도(Riau Archipelago)가 있다.

이 두 개의 섬과 싱가포르 옆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조흐르 주(Johore: 카시아 계피 나무)는 싱가포르의 자본투자 덕분에 발전하는 삼각지대라고 불리고 있다.

말라카 해협은 양쪽 해안이 산맥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바람에 의지해 항해하는 범선이 나아가기에는 어려운 곳이었다. 또 종종 해적의 습격에다 얕은 곳이 많아 항해하기 힘든 곳이었으며, 남북으로 풍향이 다른 계절풍(몬순)을 기다려야만 했다.

영국이 구축한 피낭(Pinang: 빈랑나무) 섬의 조지타운(George Town:영국 국왕 조지 3세에서 유래)과 싱가포르(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마을’), 전통적인 무역항 말라카가 이 해협이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동남아는 열대산 향신료와 향목, 금 등의 특산품이 풍부해서 인도 상인과 이슬람 상인, 중국 상인이 동남아로 진출했고, 그 뒤를 이어 유럽 상인이 진출했기 때문에 다양한 문명이 섞인 국제성이 짙은 지역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하루에 평균 300척의 대형 유조선이 왕래하는 오일 로드가 되었다.

 

7. 힌두교와 불교옮겨가는 인도 문명

(다양한 종교가 뒤섞인 섬 세계. 1세기~9세기 초반)

 

. 거대 하천 메콩 강이 기른 동남아 문화

동남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는 메콩(Mekong) 강 하류에 건설된 부남인데, 이 나라는 인도인 이주자와 크메르인에 의해 1세기~2세기에 건국되었다.

부남의 외항 오케오(Oc.Ao:캄보디아어로 아름다운 수로’)에서는 로마의 금화와 중국의 청동 거울 파편도 발견되었는데, 이로써 이 나라가 넓은 교역권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메콩 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되어 중국과 라오스(Laos), 타이(Thaland),캄보디아(Cambodia), 베트남(Vietman) 5개국을 흐르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대하로 길이가 4180km이다.

동남아 최대 담수호인 캄보디아의 톤레사프(Tonle Sape)호는 우기부터 건기에 걸쳐 수량이 3분의 1로 감소하는 메콩 강 하류 델타 지역의 수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메콩 강은 오늘날의 프놈펜(Phnom Penh) 부근에서 크게 둘로 나뉘고,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다시 나뉘어 비옥한 델타 지역을 만들어냈다. 이 거대한 델타 지대에서 동남아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델타의 최대 도시는 사이공(크메르어의 도시의 숲에서 유래)으로 이곳은 외양선이 그대로 역행할 수 있는 항구이다. 오늘날에는 베트남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호치민의 이름을 따와 호치민(Ho Chi Minh)’이라고 부른다.

메콩은 타이어로 아주 큰 강이라는 뜻이다. 이 강을 중국에서는 타이어의 란상(100만 마리의 코끼리)’에서 따와 란탕(Lancang) 강이라고 부른다. 특히 메콩 강은 베트남에서 뱀처럼 구불구불 나아가면서 몇 갈래로 나뉘는데, 이 강을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용에 비유해 구룡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메콩 강 하류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은 크메르(Khmer)인과 참인이었다. 참인이 세운 베트남 남부의 참파(Chjampa)도 인도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오늘날 소수민족으로 전략한 참인은 어업과 교역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도가 많다.

 

. 수미산에 비유한 앙코르와트

6세기 크메르인(크메르인의 태조 독립한 캄푸 왕이라는 뜻으로 캄보디아라고 함ㅂ)은 메콩 델타에 앙크르(힌디어로 나가라(도시)가 변한 것)’를 수도로 하는 대 농업국을 건국했고, 전성기인 12세기에는 힌두교의 우주 중심에 있는 수메르(Sumer)산을 본떠 앙코르와트(Angkor Wat)를 건립했다.

수메르 산은 수미산, 마하메루(위대한 메루)라는 별칭이 있으며, ‘묘고산이라고도 번역한다. 이 말은 장대한 천극이라는 뜻이며, 시바신이 사는 곳이라는 해발 4560m의 티베트 남서부에 위치한 카일라스(Kailas)산을 가리킨다.

850m 1000m 사방 광대한 지역에 세워진 대규모 건조물인 앙코르와트는 대해를 상징하는 폭 190m와 길이 5.45km의 연못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곳은 왕의 영묘이기도 하기 때문에 서쪽의 사후 세계와 마주보는 형태로 지어졌다. 참고로 와트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캄보디아의 신전 건설 양식은 앙코를 왕조를 정복한 타이인 문명에도 영향을 주었다. 와트 프라케오, 와트 포 등으 사원이 드문드문 위치해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방콕도 캄보디아의 수메르 산을 본뜬 건축양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한편 자바 섬 동부에 위치한 최고봉(3376m)인 활화산은 세메루(Semeru) 이라고 명명했다.

 

.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과세로 번영한 두 왕조

7세기 되면서 여러 도시가 연합해, 말라카 해협을 지배하는 해양왕국 슈리비자야를 건국했다. 이들은 해협 동쪽 입구에 위치한 수마트라 섬의 무시(Musi) 강 하구에서 팔렘방(강이 모이는곳)을 수도로 13세기까지 번창했다.

이 왕국은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을 대상으로 세금을 징수해 거대한 부를 획득했다. 당나라 승려 의징은 파렘방에서 1000명 이상의 승려를 부양했다며 팔렘방의 번영을 기록했는데, 현재 이 부근은 대규모 유전지대다.

동남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자바 섬에서는 9세기에 사일랜드라 왕조(Sailendra dynasty)가 번영했고, 인도에서 전해진 대승불교를 믿었다.

이들은 8세기 말부터 9세기 초반에 걸쳐 중부 자바의 족자카르타(전 술탄 족자 가의 도시’) 북서 30km 지점에 한 변이 115m인 정방형태에다 6층 방형과 3층 단을 겹쳐 놓은 정상에 종 모양의 수투파(불탑)를 배치한 보로부두르(Bordbudur)를 건설했다. 보로부두르는 높이가 42m이며 정상에 이르는 회랑의 총 길이가 10km나 되는데, 보로부두르는 산스크리트어로 언덕 위의 불교 사원이라는 뜻이다.

 

8. 타이를 제외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간 메콩 강 유역

(열강이 진출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원형. 13세기~19세기)

 

. 타이 상업으로 번영한 아유타야 왕조

13세기 운남에 있던 대리국을 몽골인에게 뺏긴 타이인은 샴 만으로 흐르는 대하 메남 강(큰 강이라는 뜻, 타이인은 왕실이 관리하는 강이라는 뜻으로 차오프라야(Chao phraya) 강이라고 부름)을 따라 남하했으며, 메남 강 지류에 크메르인에게서 빼앗은 수코타이(Sukhothai:행복한 땅, 낙원)를 수도로 하는 수코타이 왕조(현재의 타이 문자를 만들었다)를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중류 지역의 아유타야(Ayutthaya)를 중심으로 한 데 교역국가인 아유타야 왕조가 번영했다.

수도 아유타야는 요새가 17개인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에는 550개의 건조물이 들어섰고 140km에 이르는 운하가 종횡으로 달렸으며 상업도시로 번영했다. 이들은 캄보디아를 공격해 앙코르돔(Angkor Thom)을 함락시키겼고, 포르투갈인 용병을 이용해 버마를 공격했다.

하지만 나주에 버마인은 1767년에 아유타야 왕조를 멸망시킨다. 아유타야라는 이름은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고대 도시 아토디야에서 유래한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타이인 장군 탁신(Thaksin)이 버마군을 격파했는데, 이 때 옛 수도 아유타야가 페허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메남 강 하구 서쪽에 위치한 톤부리(Thon Buri: 제물과 보석의 마을)에 왕조를 세웠다.

하지만 이 왕조는 일대에 끊겨버리렸고, 18세기말에는 맞은 편 강가에 위치한 방콕을 수도로 하는 차크리 왕조(현재의 타이)가 성립되었다.

방콕은 타이 만 하구에서 약 30km 거슬러온 메남 강 동쪽에 위치해 있다. ‘방콕이라는 명칭은 속칭이며, 정식 명칭은 신의 대도시에서 시작해 에메랄드 불타가 살며, 화신의 신이 통치하는 힌두교의 인드라신과 신과 비슈누신이 만든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초의 에머랄드는 왕실의 수호사원인 와트 프라케오의 본존이 에메랄드 빛의 벽옥 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방콕은 과거에 존재했던 아유타야 왕조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타이 정부는 폐허가 된 상류의 아유타야에서 많은 벽돌을 메남 강을 이용해 운반해서 왕궁과 사원을 건축했고, 왕궁 주변에 대운하를 팠으며 베트남인과 미얀마인 등의 거주 지역을 마련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화교가 대규모로 이주하기 시작해 현재는 전체 도시 주민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이다. 2차 세계대전 후 타이 경제가 성장하면서 방콕은 급격히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 미얀마…… 영국에 지배당한 버마

미얀마는 서부의 아라칸(Arakan: 아라칸족에서 유래) 산맥으로 인도반도와 구분되고, 동부의 중국 운남 고원과 연결되는 해발 900m의 산 고지대(타이인인 산족에서 유래)와 북부의 카틴산지(야만인)에 둘려싸여 있으며, 이라와디(Irrawaddy: 산스크리트어로 활동적인) 강이 흐르는 광대한 평야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미얀마는 콘바운 왕조(175-1885) 시대에 타이의 아유타야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대두했는데, 영국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1885년에 영국령 인도제국의 1개 주로 병합되었다. 영국 점령 하에서 버마는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이라와디 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만달레아(둥굴게 건축한 제단)는 옛 왕조의 수도이며, 인구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소승불교의 원추형 차고다(불탑)가 늘어선 종교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수도인 양곤(Yangon: 싸움의 끝이라는 뜻은 이라와디 강 하류지역에 위치한 항구로 미얀마 제1의 대도시이다.

 

. 베트남……프랑스의 보호국으로

베트남에서는 북부의 훈강(붉은 강이라는 뜻, 강물이 철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 델타에서 농경사회가 성장했고, 기원 전후에는 동선문화(Dong son Culture)라는 청동기 문화가 꽃을 피웠다.

베트남은 전한의 무제가 기원전 2세기 북베트남을 정복한 이후, 1000년 동안 중국 여러 왕조의 지배하에 놓였다. 이의 지배 거점이 된 곳이 오늘날의 하노이(Hanoi)였다. 하노이는 강과 강 사이에 위치한 땅이라는 뜻이며, 한때 승룡이라고도 불렸다. 그 수 찬파 왕조(1225-1400)시기에 베트남은 동남아이 강대국이 되었다.

북부의 베트남인은 1470년에 현재의 다낭(Da Nang:탁한 강) 남쪽에 수도를 두었던 찬파 왕국을 멸망시켰고, 17세기 말에는 과거의 대국 크메르에게서 메콩 강 델타 지대를 빼앗았다.

메콩 델타의 중심도시는 크메르인의 호칭인 숲의 도시를 베트남어로 번역하여 사이공이라고 불렸다. 이 지역은 본래는 크메르인과 참인이 거주했던 지역이었다. 이후 사이공은 베트남 전쟁으로 통일된 뒤 지도자인 호치민의 이름에서 따와 호치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02년에 성립된 구엔 왕조의 안남 왕국은 중부의 후에(순화)를 수도도 정하고,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해 왕궁을 지었다. 1884년에 프랑스가 안남 왕국을 보호국으로 삼자, 후에는 1946년까지 수도가 되었고 프랑스 식민지 정부의 관청과 프랑스인 거주지역이 만들어졌다.

 

9. 동남아 섬들이 이슬람권인 이유는 무엇인가?

(상인들이 확산시킨 이슬람 세계. 14세기-)

 

. 동남아가 불교에서 이슬람으로 바뀐 이유

14세기경 자바 섬 마지파히트(Majapahit) 군의 공격으로 수마트라 섬의 팔램방에서 쫓겨난 왕족 가운데 한 명이 말라카 해협이 가장 좁아지는 해역의 한 촌으로 이주해 개척한 항국하 바로 말라카다, 말라카는 명나라 정화 함대의 종계거점이 된 이후, 풍부한 중국 상품 교역과 명의 비호를 받아 급성장했으며 동남아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정화의 원정이 중단 이후로는 이슬람 상인이 말라카 항에 모이도록 만들기 위해 말라카 왕 스스로가 이람교에 귀의했다.

이런 사정으로 말라카는 교역과 더불어 동남아 도서지역에 이슬람교를 확산시켰다. 식량과 면직물을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도서지역 사람들은 이슬람 상인과 반드시 거래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511년에 19척의 군선과 1400명의 병사로 구성된 포르투갈 군이 말라카를 공격했고, 9일간의 공방 끝에 결국 말라카는 함락되고 말았다. 말라카 왕은 그 뒤 조호르바투(Johor Baharu:’새로운 조호르(카시아 계피나무)’라는 뜻)로 본거지를 옮겨 포르투갈과 싸웠지만 갈수록 힘이 약해졌다. 그렇지만 말라가 왕국의 왕 술탄의 후예는 오늘날에도 말레이시아(말레이인의 나라)의 술탄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진흙의 하구) 19세기 중반에 주석 광맥을 발견한 중국인이 건설한 도시로, 19세기 말에 영국령인 말라이 연합의 수도가 되었다.

 

. 다양한 섬들이 통합된 인도네시아

동남아 도시지역을 칼라만탄(Kalimantan:원주민이 불던 하얗고 긴 깃발에서 유래) 섬을 중심으로 서남쪽의 수마트라와 자바 섬, 티모르(Timor:동쪽) , 말루쿠 군도(‘원주민 마르코인에서 유래), 세계 제2위의 섬 뉴기니(New Guinea: 주민이 아프리카의 기니 주민과 비슷해서 스페인이 새로운 기니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 북쪽의 필리핀 군도, 남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펼쳐져 있어 아시아 다도해라고 불린다.

오늘날 동서 5100km에 이르는 이 광대하고 다양한 해역에 산재하는 크고 작은 1 3700여 개의 섬들은 세계 최대의 도시국가인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전체 면적은 남한의 19, 인구는 약 2 1500만 명으로 세계 4위이다. 이곳도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도인데, 경제의 실권은 약 650만 명의 화교들이 쥐고 있다. 수도는 인구의 60%가 집중된 자바 섬의 국제무역항 자카르트(Jakarta:산스크리트어로 승리의 마을)이다.

 

10. 동남아와 ASEAN의 성장

(1967년에 결성된 ASEAN 1999년에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20세기)

 

. 무역으로 번영했지만 19세기 식민지로 전락

인도차이나 반도는 19세기 후반 이후 세계적인 농경지대가 되었다. 몬순의 풍향이 바뀌는 말라카 해협은 유라시아 남연부 바닷길의 요충지이며, 이 지역은 열대산 향신료와 금을 산출해 해상무역으로 번영했다.

동남아의 역사는 ㉠ 인도 상인이 교역거점을 만들어 해상교역을 지배한 시대였으며 13세기까지는 동남아 국가들의 문자와 언어는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8세기 중반이후 이슬람 상인의 진출기 ㉢ 10세기 이후 중국 상인의 진출기 ㉣ 16세기 이후의 유럽인의 진출기로 나뉘는데, 19세기 전반의 인구는 10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지역의 인구가 급증한 것은 19세기 들어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를 확대해, 농원과 광산 노동력으로 다수의 인도인과 중국인을 이용하게 되면서부터다.

동티모를 식민지화한 포르투갈과 필리핀을 식민지화한 스페인,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한 네덜란드가 이곳을 지배한 옛 세력이었다. 19세기 들어 신흥 세력인 영국이 브루나이(Brunei)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버마(현재의 미얀마)를 식민지화 했고, 프랑스가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를 식민지화했으며, 1898년에 일어난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필리핀 지배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결국 독립을 유지했던 국가는 타이뿐이었다.

 

. 서울보다 조금 큰 면적을 가진 싱가포르의 번영

서쪽으로 넓어지며 동쪽으로는 좁아지는 말라카 해협의 동쪽 출구에 위치한 말레이 반도 남단부의 섬나라가 바로 싱가포르다. 이 나라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넓으며 인구는 400만 명이다.

싱가포르의 어원은 사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마을이라는 듯인데, 이 이름은 이 섬이 군사적인 요충지였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듯하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싱가포르였지만 이 섬은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1826년 영국이 중국에 이르는 항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싱가포르를 식민지로 삼았고, 이를 계기로 싱가포르는 발전하게 되었다. 이 때 싱가포르에는 중국인 노동자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인구가 두 배로 증가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에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전후 독립하여 1963년에 성립된 말레이시아 연방의 1개 주가 되었다.

하지만 인구의 75%가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1965년에 말레이시아에서 분리하는 길을 선택해, 영국 연방에 속하는 싱가포르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그 뒤 싱가포르는 다시 선적하는 화물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자유무역항이 되었고, 가공무역 산업이 진흥하면서 싱가포르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1981년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해, 하늘 네트워크의 일대 거점이 되었다.

 

. 5개국에서 10개국으로 늘어난 ASEAN

동남아의 식민지는 1945년부터 1954년에 걸쳐 각각 독립했고, 베트남 전쟁(2차 인도차이나 전쟁. 1960-1975), 베트남 군의 캄보디아 침공(3차 인도차이나 전쟁. 1979-1989), 말레이시아에서의 싱가포르 분리(1965),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병합(1976) 등을 거쳐 오늘날의 국경을 확정되었다.

1차 산업에 의존하는 동남아 경제는 식민지 시절의 경제 네트워크가 붕괴되면서 자본이 격감했고 생산이 정체되었으며, 급격히 인구가 증가해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독재적인 강권정치로 사회질서를 유지했고, 대량으로 외자를 도입해 수출산업을 진흥시키는 개발 독재로 이행했다.

1967년에는 각 국가들(타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상 5개국)이 연합해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동남아 국가 연합)을 결성하였다. ASEAN 국가들은 베트남 전쟁에 따른 원조와 외자 투입, 일본 자본 진출 등으로 기반을 굳혔고, 1970년대에는 석유가격 상승으로 1차 산업의 가격이 상승했으며, 저렴한 노동력을 찾는 외자 도입으로 두 자리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룩해 1990년대에는 세계 성장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1997년 타이 바트화 폭락을 계기로 통화위기 확산되면서 경제 성장에 급제동이 걸렸다.

1962년이래 네윈(Ne Win)의 군사독재 하에서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취해온 미얀마에서는 1988년 학생들이 민주혁명을 일으키지만 군이 쿠데타로 진압해, 결국 1당 독재 하에서 경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진하고 있다. 즉 옛 ASEAN 국가들이 했던 개발 독재를 그대로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 뒤 브루나이와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가 가입해 1999년에는 10개국의 동남아 국가가 모두 가입하면서 ASEAN 10이 성립되었다.


원글 - 호원님의 http://blog.daum.net/kp180/2374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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