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은, 촌놈인데다 아는것 없이, 그냥 친했던 A와 B, 셋이서 매일 정신 없이 뛰어 놀았다.
나와 A는 부모님이 바빠서이 거의 신경을 써주지 않았지만, 그나마 B는 어머니가 항상 신경을 써 주었다.
B의 어머니는 약간 엄한편이기는 했으나, 항상 B를 위해주는 그런 어머니였다.
우리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B와 B의 어머니가 크게 싸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이유도 없이 배은망덕해지는 나이가 아닌가.
한창 반항기에 있었던 B가 어머니에게 반항하여 심한말을 내 뱉었고, 그러다 보니 아들로써 가장 해서는 안될 손찌검까지
해 버렸다고 했다.
엄하기는 했지만 항상 B를 생각했던 B의 어머니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B의 아버지가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보니 찢긴옷에 헝클어진 머리와 멍든 얼굴로 거실에서 앓아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B의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B에게 말했다.
"지 어미한테 이렇게 까지 하는걸 보니, 네놈은 짐승새끼냐!!
너는 네 엄마가 널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기나 하고 이러는것이냐!!!"
"몰라!! 계속잔소리 해 댈거면 아버지도 저모양으로 만들어줄테니까 닥쳐!!"
B는 맹목적으로 반항했다.
그러자 B의 아버지는 변해버린 아들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잠깐 멍한 표정을 짓고는
화난 표정을 싹 거두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오냐, 너는 지금 무서운게 아무것도 없나보구나."
"응, 없어. 있으면 보여줘봐."
"너는 내 아들이고, 네 엄마가 니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니가 니 어미한테 한 짓을 보면, 이제 나에게도 따로 생각이 있다."
B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것은 애비로서가 아니라, 한명의 인간, 타인으로서 말하는 것이니까 잘 들어라."
"아, 참고로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네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B는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눌려서 말문이 막혔다.
엄했던 어머니와 달리, 무심한듯 해도 자상했던 아버지였다.
"마을 뒷산에 보면 아무도 못 들어가게 되어있는 숲이 있는것은 너도 잘 알것이다.
거기에 들어가서 안쪽으로 들어가 봐라. 가보면 알게다.
거기서도 지금처럼 망나니짓을 해 봐라. 할 수 있으면 말이다."
B의 아버지가 말한 숲은 마을 뒷산의 산기슭에 있는 곳인데, 산도 그냥 들어갈 수 있고, 그 숲 자체도 그냥 보통 숲이다.
하지만, 짐승도 별로 없고, 나무가 마음데로 자라있어서 길이 거의 없다.
그 길 하나 제대로 없는 숲의 안쪽으로 가면 도중에 출입금지 구역이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곳이 있었고, 마을사람 아무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실제로 가보면 위에 철조망을 조잡하게 얽어놓은 2미터정도 되는 녹슨 철책이 가로막고 있고,
그 얽혀있는 철조망에는 시데紙垂(사진 참고)를 끊임없이 붙여 놓았고, 그 시데 옆에 크고작은 방울들이 매달려 있어,
아무튼 기분나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라고 한다.
시데 : 주술적 의미를 지닌 종이
가끔 무당이 몇몇 사람과 함께 그곳에 간다는 말은 있었으나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곳에관한 소문은 많았지만, 어떤 사이비 종교의 세뇌 수용소가 있다는 소문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길도 없는 숲속인데다 거리도 꽤 멀어서 그곳까지 가는것이 쉽지 않았기때문에
호기심 많은 남자 아이들 마저도 거의 가지 않는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 들어가 보았다는 소문은 거의 들어본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가면 사이비 종교에 세뇌당한다는 소문으로 대충 납득해 버리는 정도의, 별로 관심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B의 아버지는 그곳에 가보라는 말만 남기고, B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채, 어머니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B는 그길로 집을 나와, 나와 A를 불러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야, 거기 무슨 사이비 종교 세뇌 하는곳이라든데... 갈꺼냐?"
이야기를 다 듣고 내가 B에게 물었다.
"당연히 가야지. 안가면 아버지한테 지는것 같잖냐. 난 갈꺼다. 그리고 아버지도 화나서 그냥 겁준것일 뿐이야."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B때문에 나와 A도 별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심심했던 차에 B와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는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숲의 입구까지 걸었다. 뒷산으로 가는길은 어릴적때부터 뛰어 놀았던 곳이라서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었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친한 친구끼리 하는 모험이 즐겁다고 까지 느껴졌다.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한참을 걸었고, 이윽고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짐승길조차 없는 숲이라서 직접 풀과 나무를 헤치고 가야 했다.
심지어 칠흑같은 어둠을 손전등 빛 하나에만 의지해야 했다.
이런 조건이라면 어른들이라도 그 문제의 장소까지 가는데에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가 없을것이다.
하지만, B의 말대로 무서울게 없는 나이였던 우리는 달리 못할것도 없겠다는 기분에 숲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우리가 숲에 들어간지 5분도 되지 않아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숲에 들어갔을 때 쯤 부터인가?
멀리서 부터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았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지만, 밤의 정적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에는 여과없이 들려왔고,
그것을 가장먼저 눈치 챈 것은 B 였다.
"야, 무슨 소리 안들려?"
B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자 낙옆위로 무언가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멀리서부터 들려온 소리라서 그랬는지, 우리는 대충 산짐승이려니 하고 무섭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고,
우리는 가던길을 계속 나아갔다.
나는 소리는 더이상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20분정도 지나고 나서 B가 다시한번 발을 멈추고는 A에게 말했다.
"야, 너 혼자만 한번 걸어봐."
"응? 왜?"
"얼른!!"
단호한 B의 태도에 A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도 앞으로 걸었다가 다시 우리쪽으로 돌아왔다.
그것을 보고 B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A는 빨리 설명을 하라고 B를 다그쳤고, B는 우리에게 잘 들어보라고 말하고는 혼자서 앞으로 몇발짝 걸어갔다가
다시 우리쪽으로 돌아왔다.
나와 A는 B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B가 그것을 두어번 반복하자 결국 우리도 깨달았다.
아까 그 소리는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들려왔다.
우리가 걷기 시작하면, 낙엽위에 질질 끌리는 소리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가 멈추면 몇초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처럼.
뒷통수가 싸늘해 지는것을 느꼈다.
주위에 우리의 손전등 불빛 말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달이 떠 있긴 하지만, 마음대로 자란 나무에 가려 숲속은 암흑 그 자체였다.
우리 손전등 불빛이 보여서 우리 위치를 아는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전등을 비추고 걷고있는 우리도 집중해서 걷지 않으면
한치앞도 안보이는 어둠이었다.
저것은 빛도 없이 이 어둠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것일까.
왜 우리를 따라오는 것일까.
"뭐야!! 누가 우릴 쫒아오고 있는거야??"
B가 말했다.
"근데 아까랑 비교해서 소리가 가까워진 것 같지는 않은데.. 아까도 이만큼 멀리서 들렸잖아."
A가 대답했다.
A의 말대로 숲에 들어온지 20분정도가 흘렀지만, 처음에 들린 소리와 비교해 보면, 그때와 지금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 진 것 같지는 않았다.
"가까이 오는게 아니라면... 뭐지? 감시하는건가?"
내가 말하자 A도 곧 맞장구를 쳤다.
"큰일났다 사이비 종교 사람들이 우릴 감시하나보다..."
하지만 우리를 따라오는 소리는, 여러명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 명이 계속 우리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쫒아오고 있는 것 뿐.
우리는 어설프게 그것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는거라면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하고, 다시 철책을 향해 걸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라 그런지, 별로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 그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걸었지만, 소문에 듣던 철책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고 부터는
그런 소리따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는 셋 다 철책을 보는것은 처음이었고, 철책은 우리가 상상했던것을 훨씬 뛰어 넘었다.
동시에 그때까지는 없었던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귀신같은 것은 애초에 믿지도 않았던 우리였지만, 눈앞에 서있는 자신의 키의 두배만한 녹슨 철책과 철조망,
거기에 매여있는 변색된 시데, 시데옆에 매달린 철조망만큼 녹슨 방울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기분나쁜 소리까지 더해지자,
우리의 머리속에서 '현실감'을 모조리 앗아갔다.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사이비종교의 건물 따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것이 있다는 것을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숲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있어서는 안될 곳에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정말 이 안으로 들어간다고...??"
겁에질린 A가 B에게 물었다.
"시끄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꺼냐!? 여기까지 와서 그럴거면 애초에 왜 왔냐!?"
철책을 보고 겁을먹은 나와 A에게 B는 화를 내면서 가져온 도구를 가지고 철책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도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곧 B를 도왔다.
우리가 철책에 손을 대자, 철책이 흔들리면서 밤의 정적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방울소리가 우리의 귀를 후벼팠다.
우리는 막상 철책을 끊을 생각은 그다지 심각하게 하질 못해서, 준비해 온 도구가 너무 형편없었다.
라기보다는 철책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단단했다.
녹슨 철사가 이렇게 단단할리가 없었다.
한참을 끙끙대다가, A가 우연히 철책 위의 철조망이 끊겨있는곳을 발견했고, 우리는 철책을 끊기보다는 기어 올라서 넘어가기로 했다.
왜 이생각을 더 먼저 못했을까 라고 투덜거리면서 쉽사리 기어올라서 반대쪽으로 뛰어 넘었다.
하지만 철책을 넘자마자 나는 격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갇힌 듯한 기분과, 매우 좁고 폐쇄된 공간에 들어온 듯이 숨이 턱턱 막히면서 등줄기가 싸 해졌다.
옆을 보니 A와 B의 창백한 얼굴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런 기분이 든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철책을 넘어버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걷기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를 따라오던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혹시... 처음부터 이 안에 있었던거 아닐까? 우리 뒤를 따른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실은 앞에서 들렸던거 아니야? 이 안에 갇혀 있어서 우리쪽으로 더 가까이 못 와서 거리가 똑같았던거고..."
A의 한마디에 우리 사이에는 더욱더 기분나쁜 공기가 흘렀다.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마라. 여기서 숲 입구가 보이냐? 그것도 이밤에!?
소리는 우리가 숲에 들어오자마자부터 났잖아 임마!!"
B가 대답했고, 나는 B가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숲 입구와 여기는 꽤 떨어져 있었고 우리도 꽤 오래 걸은데다,
여기선 어떤 술수를 부려도 수풀에 가려서 숲 입구는 볼 방법이 없으니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철책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때부터 생긴 위화감은 나에게서 '현실성' 이라는 것을 완전히 빼앗아 가 버렸고
두려움만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커지고 있었다.
A도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있었는데, B만 유독 세게 나왔다.
"귀신이든 뭐든 모르겠는데, 니들 말대로 하면 그놈은 이 안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놈이잖아?
그 정도 귀신이면 별것도 아닐거다!!"
라고 하고는 휘적휘적 안으로 걸어가 버렸다.
B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지 2~30분정도 지났을까, 멀리에 반대쪽 철책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을때
우리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여섯그루의 나무가 둥글게 서 있었고, 나무끼리 시메나와注連縄((사진참조)로 둘러 매여 있었다.
시메나와 : 주술적의미를 지닌 밧줄로 주로 시데를 매달아 함께 사용
그 밧줄에는 철책에 붙어있던 시데보다 더 크고 깨끗해 보이는 시데가 셀수없이 매여 있었고,
그 여섯그루의 나무 한가운데에 나무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상자를 본 순간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철없는 우리도 시메나와가 언제 어떤곳에 쓰이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곳이 출입금지가 된것도, 높고 단단한 철책이 세워진것도, 철조망이 둘려있는것도, 틀림없이 우리 눈앞에 있는
이 시메나와로 묶여있는 상자 때문이라는것을 부들부들 떨리는 몸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니 아버지가 말한거... 이거 같은데?"
내가 B에게 말했다.
"너, 니네 아버지가 말한 '망나니짓' 절대 하지마라... 이건 잘못 건드리면 큰일날거 같다..."
하지만 B는 끝까지 반항적인 태도를 풀지 않았다.
"꼭 나쁜게 아닐수도 있잖아. 일단 상자 열어보자. 보물이라도 들었을줄 누가 아냐?"
B는 허리를 굽혀 밧줄밑을 지나서 상자에 다가갔다.
나와 A는 B가 무슨짓을 할지 매우 불안했지만, 일단 B의 뒤를 따랐다.
상자는 곰팡이 투성이였다.
산속에서 보낸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상자는 윗부분이 뚜껑이고, 그 뚜껑의 가운데가 뚫려있어서 안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뚜껑 바로 밑에 다른 판자가 깔려있어서 실제로 안을 볼 수는 없었다.
그것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상자의 전후좌우 세로 4면에 흰색으로 이상한 모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옛날 가문家紋과 같은 것 같았다.
문양은 네가지 모두 다른 종류로, 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었다.
나와 A는 될수있으면 상자를 만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아무렇게나 만지고 있는 B에게 망가트리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면서
상자를 둘러 보았다.
우리의 충고를 무시하고 B가 상자를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B가 난폭하게 만져대는데도 꿈쩍도 안하는게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안에 있는것을 어떻게 볼까... 하면서 구석구석 살펴보니, 상자의 뒷면이 떼어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것을 발견했다.
"어!! 여긴 떨어지네!!"
B가 그쪽을 떼어냈고, 우리는 상자 뒤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상자의 네 구석에는 페트병같이 생긴 도자기 병 네개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무슨 액체가 들어 있었다.
상자의 중앙에 끝을 빨갛게 칠한, 5센티 정도의 이쑤시개 같은 것이 이상한 형태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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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 놓여 있는데, 이쑤시개 끼리 맞물리는 부분이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이게 뭐냐? 이쑤시개??"
내가 어이없다는듯이 물었다.
"야, 페트병같은거 안에 뭐 들어있어. 더러워..."
도자기 병의 안을 보고 A도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페트병에 이쑤시개.. 말했잖아. 아버지가 겁준거 뿐이라고."
B도 맥빠진듯이 말했다.
나와 A는 그것들을 만질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B가 도자기 병을 들더니 냄새를 맡아 보았다.
별 냄새는 나지 않았는지, 다시 돌려놓고는, 이쑤시개에 손을 뻗으려 했다.
그때 쭈그리고 앉아있었던 B가 약간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지려 하다가 손이 미끌어 졌고,
그 손에 이쑤시개 같은것들에 닿아서 모양이 흐트러져 버렸다.
그순간.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우리가 온 방향과 반대쪽에 있는, 희미하게 보이던 철책 쪽에서 방울소리가 미친듯이 울려댔다.
정적에 익숙해져 있던 청각을 찢는듯이 후벼파는 소리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고함을 치며 놀랐다.
"누구야!!!!"
잔뜩 흥분한 B는 소리가 나는쪽으로 달렸다.
"가지마!!!!"
"야, 안돼!!!!"
나와 A는 당황해서 B를 쫒으려 일어났는데, 기세좋게 달려가던 B가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앞쪽에 손전등을 비춘채로 그대로 굳었다.
'멈출거면 왜 뛴거야..' 라고 생각하고 A와 함께 B에게 다가가 보았더니, B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B의 손전등이 비추고 있는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앞에 서 있는 나무 밑둥에서 그것을 보았다.
입을 양쪽으로 쭉 벌려서 더러운 이빨을 내보이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푸르스름한 여자얼굴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공포심이 몸을 지배해서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몸이 시키는대로 달렸다.
우리가 넘어왔던 철책을 부여잡고 B와 나는 정신없이 기어올라서 바깥으로 뛰어 내렸다.
하지만 A가 긴장 때문인지 혼란해서인지 철책을 붙잡기만하고 기어오르지를 못하고 있었다.
"뭐해!!! 빨리 넘어와!!!!!"
철책 너머에서 A를 보며 우리는 미친듯이 외쳤다.
"저게 뭐야!!!!!! 너도 봤지!!!!!!!"
"망할, 내가 어떻게 알아!!!! A뭐해!!! 빨리 넘어오란 말이야!!!!!!"
그때..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딸랑딸랑
먼곳에서 시작된 방울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철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곳까지 전해지는 흔들림이 점점 커지면서 우리가 있는쪽의 철책에 달린 방울도 울리기 시작해,
사방에서 울려대는 방울소리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뭔가 온다!!!!"
내가 외치자 B도 A를 향해 외쳤다.
"빨리!!!!!!!!"
패닉상태에 빠졌던 A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무아무중이 되어 철책을 기어올랐다.
A가 철책 꼭대기까지 다 기어 올랐고, 남은건 뛰어내리기만 하면 됐지만
우리의 시선은 더이상 A에게 있지 않았다.
몸이 벌벌 떨리면서 온몸에서 차가운 땀이 줄줄 흘렀고, 목 안에 주먹이라도 들어간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A는 철책 위에서 우리의 시선을 쫒았다.
어둠속까지 쭉 이어져 있는 철책...
그것도 우리가 있는 쪽에 그것이 붙어 있었다.
얼굴밖에 없는줄 알았던 그것에는 나체의 상반신이 붙어 있었다.
그 상반신에 오른팔과 왼팔이 세개씩 나 있었다.
여섯개의 팔로 철책을 휘어잡고 아까와 똑같은 얼굴로 하면서
그물을 왕래하는 거미처럼 우리에게 기어오고 있었다.
(해당사진은 웹에서 팬아트로 퍼왔습니다)
공포.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A가 우리 위로 뛰어 내렸고, 우리 셋은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A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숲의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는 돌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렸지만, 신들렸는지, 길도 없는 산속을 어둠속에 달려도 누구하나 넘어지지 않았다.
실제로는 십분 남짓밖에 뛰지 않았겠지만, 몇시간을 달린 기분이었다.
이윽고 숲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무와 수풀 사이로 불빛이 보였다.
다음화에 계속.
로즈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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